찌질이의 서울 소동 3부작: 3부. 달리는 노래방

by 연구하는 실천가

스피커에서 울리는 격앙된 남편의 목소리가 차 안을 뒤흔들었다.

" 니. 애랑 이야기된 거 아니었어? 지금 학원 앞인데 안 들어간단다."

몸과 마음이 지쳐 겨우 입성한 서울 강남 한 복판 면접 준비 학원 앞에서 아이는 갑자기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헉. 이건 무슨 소리인가? 온 식구가 총출동해서 아침부터 이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데,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인가?'

" 바꿔봐. 내가 말할게."


"너 지금 무슨 말이야. 가기로 했잖아."

흥분한 나의 목소리와 달리 아이의 목소리는 담담하기만 하였다.

"응. 그랬지. 근데 지금 마음이 바뀌었어. 안 갈래."

" 서울 오는 길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거니? 그건 내가 잘못했어."

" 아냐. 그런 거. 그냥 이건 아닌 거 같아서. 수능 끝난 지 이틀 된 지금 이걸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고,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건 나를 속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 이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의 오늘 하루가 이토록 버라이어티하단 말인가?'


한 시간 뒤 내가 도착하자 그들은 학원 앞 커피숖에서 패잔병처럼 축 늘어진 모습으로 나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는 날 선 침묵이 감돌았고 한참 뒤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물었다.

"그 학원 비싼데 아니야. 한 시간에 2만 원 정도, 이틀에 10만 원 조금 넘는 돈이야. 그냥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강의 듣고 면접 깐 연습해 보는 곳이라구. 내일이라도 조금 듣고 내려 가자."

"싫어. 돈으로 면접을 준비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 돼."

나는 목소리가 올라갔다.

" 야, 너 이때까지 공부 학원은 안 다녔냐? 그건 돈으로 공부한 거 아냐?"

" 그냥 둬. 저 녀석 수능 치고 지친 데다 그냥 준비하기 싫어서 핑계대는 거야."

남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우리의 대화를 끊었다.


아이의 주장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돈을 들여 인위적으로 면접 준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능 끝난 첫 주말은 쉬고 싶은데 벌써부터 면접 준비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의 조언에 홀려 음으로 떨어본 나의 유난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내년에 학교 이동과 관련해서 내가 더 이상 이 학교에 남고 싶지 않을 만큼 번아웃이 온 것처럼 아이의 심정도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결국 아이를 이해해 주기로 했지만, 순한 아이가 한 번씩 터뜨리는 이런 돌발행동 때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호텔에 아이와 엄마를 들여보내고, 남편과 나는 호텔 앞 낙지집에서 매운 낙지볶음을 시켰다. 벌건 낙지볶음 국물을 밥에 비벼 심란한 내 속을 달래려 숟가락을 드는 순간 남편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내가 애랑 인연 끊고 살겠다고 하면 어쩔 거야? 같이 끊을 수 있겠어?"

" 뭐 그런 일로 이렇게까지 말해. 무섭게."

" 말도 마. 네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냉정하게 나에게 말하는지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졌어. 내가 마치 극성 부모가 된 것 같았고."

" 뭐, 대학은 졸업시키고 끊으면 안 될까?"

" 안돼. 등록금만 대주고 아예 안 볼 수도 있어."

순간 남편의 슬픔 한 모금과 벌건 낙지볶음 한 숟갈이 운 뜨거움으로 목구멍을 꿀꺽 넘어왔다.

다음날 우리는 호텔 앞 분식점에서 해장라면 한 그릇으로 아침을 대충 때웠다. 그리고 서울에 이 라면 한 그릇을 먹으러 온 사람들처럼 부산으로의 출발을 서둘렀다.

남편이 차를 빼러 호텔 주차장에 간 사이, 아들은 멋쩍은 듯이 작은 목소리로 게 말했다.

" 엄마, 어제는 내 말이 좀 심했어. 내가 힘들어서 예민했나 봐."

" 그 말은 내가 아닌 아빠한테 해야 할 거 같은데?"

" 아빠한테는 아까 했어."

생각해 보니 라면을 먹던 남편의 표정이 어제처럼 어둡지는 않았다. 연을 끊겠다는 남편의 분노가 아이의 짧은 사과 한 마디에 반 이상 풀려버린 것이다.


차가 고속도로에 오르자, 아이는 살짝 눈치를 보며 말했다.

" 음악 들어도 돼?"

"그럼, 좋지. 우리 아들 좋아하는 최신 가요 틀어줄게."

나는 차 안의 분위기가 어색해지지 않도록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태연의 <불티>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끝날 무렵 나는 다시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잡아보고자 말했다.

"야, <불티>는 역시 전영록이지!"

나는 전영록의 <불티>를 선곡했다.

남편은 묵묵히 노래를 듣더니, 불쑥 말했다.

" 전영록은 <저녁놀>이지."

" 아, 그래? 알았어. 자 신청곡 받습니다. 먼저 전영록의 <저녁놀>부터"

남편이 반응을 보인 것에 나는 안도하며 더 밝게 말했다.

" 자 다음 신청곡은?"

그때부터 남편의 취향 공략용 8090 노래를 틀기 위해 나 휴대폰을 바쁘게 움직였다.

" 왜 너희들 노래만 듣냐? 나도 좀 신청하자. <한 많은 대동강>!"

몇곡의 노래가 흥겹게 흐르자 자다 깬 뒷좌석 엄마의 외침에 나는 얼른 엄마의 애창곡인 <한 많은 대동강>을 틀었다. 하지만 1절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우리의 달리는 노래방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평소 같으면 내가 사랑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로 가득 채워졌을 차 안 선곡 목록이 오늘은 오로지 남편의 취향에 맞추어 준비되었다. 그렇게 8090 가요에서 시작된 달리는 노래방은 군가를 거쳐 민중가요 메들리를 목놓아 부르는 것으로 부산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마무리되었다. 그날 두 부자의 화해의 시작을 알린 노래 [불티]와 다함께 부르며 마무리한 노래 [그날이 오면]에 특히 감사한 마음 전하며 짧은 1박 2일의 서울 소동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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