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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Nov 06. 2021

나는 시끄러운 게 좋아

"혹시 예전에 과학실무원과 싸운 적 있으세요?"

교육과정 부장은 과학실 시간표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는 내게 이상하게도 이것부터 묻는 것이다.

"아뇨. 방금 싸우긴 했지만 예전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과학실 수업 시간표를 부장님이 짠 거라 자신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

"허참, 그렇게 말하던가요? 그럼 선생님은 저한테 화가 많이 나셨겠네요."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전화를 걸자마자 내가 과학실무원과 싸운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나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났겠다는 표현에서 왠지 내가 시끄럽게 만드는 게 거북하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코로나로 인해 2년 가까이 과학실은 무용지물이었고, 과학실무원은 하는 일 없이 1년간 자리만 지켰고, 또 1년간은 준비물만 챙겨서 교실로 보내주었다.  교실의 칸막이로 인해 제대로 된 과학실험수업을 못하는 상황에 교장선생님과의 대화 시간에 과학실 사용을 나와 여러 선생님들이 요청하였다. 그렇게 재개된 과학실 사용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갑자기 과학실에서 실험할 수업 차시를 요구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요청대로 학년별로 리스트를 작성해 보냈다.  그러더니 그 실험 목록들로 요일별 실험 수업 차시로 고정시켜서, 그 시간에 그 실험을 하도록 정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과학실로 실험하러 오라는 과학실무원의 전화를 받고야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였다. 나는 오늘은 그 실험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미 준비해 놓았다고 실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 실험을 할 수 없다며, 그렇게 과학실무원과 전화로 대판 싸우게 된 것이다.


"시간표를 이렇게 짠 취지를 생각해 주세요."

"무슨 취지요? 과학실무원의 편의를 봐주자는 취지라면 모를까? 무슨 취지가 있는지요? "

나의 말에 부장은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로 말한다.

"아, 사실 그분이 워낙 강성 노조원인 것도 있어서 교장선생님도 조심하는 사람이고...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과학실 사용을 최소화하자는... 그런..."

"아니, 그게 노조랑 무슨 상관인가요? 과학실 수업 내용을 통일하는 게 코로나와 무슨 상관이고요.  "

 " 노조원과 시끄러워지면 학교에도 좋을 거 없고, 일단 교장선생님께서 이런 식으로 짜라는 의도로 말씀하셔서...."

순간, 나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어차피 나는 3학년이라 과학실을 사용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없다. 그냥 내가 사용 안 하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시죠."

나는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퇴근시간에 가까워져서 교육과정 부장이 교실로 찾아왔다. 다른 교사는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을 꺼냈다.  나는 과연 그들이 이 시스템이 힘들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냐고 말했다. 그렇게 또 뻔한 대화를 30분 넘게 하느라, 엄마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늦고 말았다.

  

  노조가 무서워 그렇게 편의를 봐주었다는 말을 과학실무원이 들으면 그녀는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학교가 비상체제로 모두가 추가된 업무에 지쳐갈 때 선생님들이 여러번 도움을 과학실무원에게 요청했고 그녀는 단호히 뿌리쳤다. 아무도 오지 않는 학교 과학실을 고고히 지키는 그녀를 모두가 뒤에서 너무하다며 쑥떡 거릴 때 나도 한편으로는 너무하다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 입장에서는 자신의 일이 아닌 업무를 거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교사들은 학교에서 일이 주어지면 불평을 해도 결국 다 하지만, 실무원들은 노조가 있어서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막아주기도 한다.  나는 오히려 이번 일을 겪으며 조용히 살자는 학교 시스템과 몸을 사리는 학교 운영진에 대해서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화를 내어야 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학교 시스템인가? 주어진 대로 묵묵히 따르는 일반 교사들인가? 조용히 넘어가자는 운영자들인가?


  시끄러워지면, 실무원과 교사가 모여 어느 정도까지 맞출 수 있는 부분도 있을 텐데 그저 서로 냉소와 불신의 눈빛을 보낼 뿐이다.  그렇게 실무원들은 '너희들이 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겠다'로, 교사들도 '너는 정말 너밖에 모르는구나. 너랑 시끄럽게 상종하느니 조용히 뒤에서 욕하고 말겠다'로 학교 안의 또 다른 벽이 된다. 학교 안의 소속감과 신뢰는 머쓱한 침묵 속에 잠겨버리고.


   나는 거절도 잘 못한다. 부탁도 잘 못한다. 심지어 물건값도 못 깎아서 바가지도 잘 쓴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도 못한다.  그렇게 무색 무취향의 사람이지만, 싸울 때는 싸우자는 생각이다.  애매한 영역 싸움이 생길라치면 그저 내가 한 발 물러서는 편이다.  '그만 한 이유가 있겠지'와 '내가 또 잘못했나 보다'하며 내 탓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백번 생각해도 아닌 일은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대신 뒤에서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정으로 싸우지 않는다.  감정을 완전히 녹여낸다음 담담히 말한다.

 

 “이런 식의 과학실 사용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나의 메시지에 처음에 과학실무원은 전화를 걸어 다따부따 소리부터 높였다. 나는 화가 풀리면 다시 전화하라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3번을 끊고 4번째에 그녀는 수그러든 말투로 대화를 하자며 다시 전화를 했고 우리는 다소 격앙되게 대화를 시작해서 부드럽게 마무리 지었다.  그 후 그녀는 나의 실험 준비 요청에 엄청 상냥하고 친절히 응대한다. 더 추가해서 과학실 비는 시간을 알려주며 와서 하라고 한다.  갑자기 친절해진 그녀의 태도에 내가 다 쑥스러울 지경이다. 교장선생님도 벌벌 떤다는 그녀가 소리까지 지르며 싸운 아무 힘도 없는 한 늙은 평교사를 이렇게 대해주다니.  


  우린 그냥 싸웠다. 서로 일과 입장 차이에 대해서. 그리고 결국 그녀가 바란 일이 아니라는 사실로 우리는 오해가 풀렸다. 그녀도 어쩌면 나처럼 싸워주길 바란  아닐까?  마음의 벽을 치며 동료인  아닌  대하는 것보다는 말이다.  시끄럽게 따지다 보면 결국 답이 나오지 않을까? 뭐가 무섭나? 일을  하게 될까 무섭나?  까짓것 필요하면  하자고요. 트집 잡힐까 두렵나? 잡힐 트집이면 한번 드러내 보자고요. ‘그래요,  빈구석 많은 인간이라고요, 그래서 어쩌라고요? ‘하면서. 그래서,   나은 방향으로 나가면 되지, 우리 모두 완벽한 사람 으니까.


  학교야, 제발 조용히 있지 마라고, 그냥 좀 떠들어. 와글와글. 완벽한 척하지 말자고.  그리고 세상아, 시끄러운 건 나쁜 게 아니야. 어쩜 조용한 게 더 문제일 수도 있어. 학교가 시끄럽다고 선생님들이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 말아 줘. 교육청과 싸울 수도, 교장과 싸울 수도, 학부모와 싸울 수도 있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런 싸움도 해 보자고.  언젠가 네가 싸울 때 나도 믿어줄게. 네가 싸울 이유가 있다면,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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