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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Nov 14. 2021

싸움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집안일을 돕지 않는 것도,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강제로 시켜서 얻는 이득이 내가 이해하는 편에 비해서 크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움은 기본적으로 외롭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나 홀로 싸움은 물론이거니와 여럿이 한 편이 되어 싸우는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긴 싸움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 느낌이 싫어서 나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다.  싸움은 정신을 모으는 일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놓치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정신을 꼿꼿이 모을수록 홀로 광야에 서 있는 나 자신이 크게 다가온다. 그만큼 외로움은 커지지만, 불어오는 광풍에 몸을 의지하지는 말아야 한다.  오로지 나의 정신과 신념만을 믿고 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격려, 응원, 걱정이 오히려 나를 더욱 외롭게 하기도 한다.


  개인은 하나의 우주다. 수많은 은하들로 가득한 무한의 공간인 우주처럼 수많은 의식과 무의식들이 켜켜이 쌓인 나의 내면도 하나의 우주다. 나의 우주가 또 다른 우주를 만나 충돌하는 것이 싸움이다.  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독 최근에  몇 개의 싸움을 겪었다.  가까운 가족부터 직장 동료, 그리고 학부모까지 소소히 충돌하였다. 충돌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성향상 우발적인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고민과 고민을 거친 의도적 충돌이었다. 그가 나의 궤도에 들어오는 느낌이 들면 나는 한참 고민한다.  나의 진로를 바꾸어 충돌을 피할 것인가, 그대로 진행하여 충돌을 받아들일 것인가.  충돌의 필요성, 승률, 목적성, 타당성 등을 고민한 후 충돌을 결심한다. 그리고 직진한다. 그리고 그 충격파를 기꺼이 견뎌낸다. 그 후 다가오는 적막과 외로움이 사실 가장 힘들고 두렵지만  그 순간을 견뎌내면 변화된 우주가 보인다.  충격 속에 상처 입은 두 우주가 제 궤적을 찾아가면 이 싸움의 외로움은 비로소 해소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원래 충돌이란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므로 서로 상처뿐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런 충돌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싸운다.  


  나는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싸워야   싸우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쉬운 싸움보다 어려운 싸움을 하는 편이다.  그리고 게릴라전보다 전면전을 선택한다. 누군가를 뒤에서 흉보며 나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보다, 홀로 고민한  직접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모두가 거대한 바위를 보이지 않는  슬쩍 피해 가거나 남들처럼 계란 한 번 던지는 것으로 만족할 때 삽을 가져와  바위를 파내는 쪽을 선택한다. 너무 단단히 박혀서 결국 옮기지 못한다 해도 내가  자리가 언젠가 바위를 흔드는 순간이 오리라 믿고서 후퇴할지언정.


  나를 믿어주는 내가 있기에 나의 싸움은 대체로 외롭지 않다. 그래서 나는 또 싸울 일이 있으면 열심히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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