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다 보면 상쾌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머리를 누르고 있던 상념들을 사뿐히 날려준다.
그러다 미처 날아가지 못한 상념 한 조각이 벌레처럼 내 머릿속을 갉아먹고는 잡념의 분비물을 쭈욱 내뱉는다.
'어제 그가 내게 한 말은 무슨 뜻이지?'
'아침에 그녀가 나를 흘끗 본 것은 무슨 의미지?'
'점심때 그 사람은 왜 냉랭해 보였지?'
그렇게 분비물은 잡념의 나무를 키우고, 어느새 불안의 바람이 수근 수근 말을 보탠다.
순간 의심의 돌부리가 내 발을 걸려고 한다.
나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더 이상 하늘은 맑지 않고 바람은 멈춰 선다.
문득 강 건너를 보니, 목이 긴 흰 새가 내 쪽을 한 번 보고 제 갈 길을 훨훨 날아가고 있다.
맞다. 그 새는 제 갈 길을 날 뿐이다. 이미 놓친 물고기를 찾아 텅 빈 강물에 고개를 담그지 않는다.
설혹, 그 의심이 사실이라도, 그 편견이 나를 향한 것이라도 그것은 그것을 만든 자들의 몫이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그것들을 들어 올려 내 머리에 이고 이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 나는 나의 길을 갈 뿐.
나는 다시 가벼운 걸음으로 내 앞의 돌부리를 건너뛰고 속도 높여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흰 새는 어느새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었는지 강 너머 산을 보고 고고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