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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pr 24. 2022

밥만 하소

 퇴근해서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 앞에 작은 비닐 꾸러미가 하나 놓여있다. 내가 30분 전에  <밥만 하소>라는 인터넷 앱으로 주문한 국과 반찬이 배달되어 온 것이다. 그 비닐 꾸러미를 가뿐히 들고 들어와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저녁밥을 시작한다. 잠시 후 밥통 위로 뽀얀 김이 솔솔 올라오면, 그제야 나는 비닐봉지를 풀어 국은 냄비에 담아 간단히 데우고, 반찬은 그릇에 옮겨 담는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김을 꺼내고, 계란 정도를 구우면 저녁 식사 준비가 완벽히 끝난다.


   예전 같으면 퇴근  마트를 돌며 장을 한가득 보고 몸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것을 다시 냉장고에 정리하고 나면 아직 저녁 준비는 시작도 않았는데 몸은 물먹은 스펀지마냥  늘어져 무겁기만 했다. 그러면 역설적이게도 장을   날은 반찬거리를 쌓아놓고도 그냥 밥을 시켜먹게 되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우리의 의식주에서 옷이나 집은 근대화와 함께 바로 한국적인 것을 버렸지만 오로지 음식만은 거의 그대로인 이유가 궁금했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옷이나 집과 달리 우리의 입맛을 바꾼다는 것은 그 어떤 편리함과 효율성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오랜 시간 각인된 우리 뇌의 dna때문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3년 전 서울의 대학가에 갔을 때 나는 밥을 사 먹으러 돌아다니다가 당황하고 말았다. 식당의 메뉴들이 내게는 너무나 낯선 것들로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마라탕을 주축으로 외국의 음식 메뉴들과 각종 퓨전 음식점들이 대학가를 지배하고 있었다. 가벼운 한식을 찾던 내가 겨우 찾아 들어간 곳이 김밥과 칼국수를 팔던 작은 분식집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덮쳤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차 바뀌어 가던 우리의 식생활은 일반 가정으로까지 큰 변화를 만나게 되었다. 외식과 장보기가 어려워지면서 배달음식 문화가 확산되어 집에서 꼭 밥을 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 것이다. 아울러 갖은양념으로 여러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한식의 수고로움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작년 가을 나는 매년 당연스레 하던 김장도 계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했고 제사가 닥치면 당연히 하던 음식들도 이제 어느 정도까지 만들고, 어느 음식은 가볍게 주문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않던 일이었다. 주말에 한 번씩, 또는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때 하던 외식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오히려 오늘은 집밥을 특별히 해 먹어 보자는 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매일 먹다시피 하던 배달음식에도 지쳐가던 내가 현재 타협한 것이 배달 반찬 가게의 이용이다. 작년까지 나는 반찬 가게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왠지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나에겐 낯설었다. 하지만 이제 반찬 가게를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통으로 된 날것의 채소와 고기를 사서 필요한 만큼 덜어내고 또 남은 것을 싸서 보관하고 꺼낸 것은 재차 손질하고 씻고 자르던 수고와 갖은 재료를 또 잘게 다지고 섞어 양념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주변물을 치우고 닦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집밥을 차려 먹게 되었다. 손질, 세척, 절단을 이미 거친 재료와 딱 필요한 만큼의 양념장이 들어 있어 바로 냄비에 한꺼번에 넣고 익히기만 하면 되는 밀키트를 내 입맛대로 구입하는 것도 쉬워졌다.  24시간 밥이 떨어지지 않던 밥통은 이제 가끔 밥을 해 먹는 도구가 되어 비어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전형적인 한식 메뉴도 줄어들고 있다. 아침은 가벼운 빵 혹은 그냥 과일 한 조각이 대체하기도 하고, 점심은 뜨거운 물만 부어 먹는 쌀국수 같은 다양한 인스턴트 음식, 저녁은 밀키트나 반찬가게에서 집 앞까지 매일 다른 메뉴로 갖다 주는 걸로 가볍게 차린다.  여전히 나의 dna는 묵직한 국과 찌개가 강하게 당기지만, 그런 음식을 파는 가게는 줄고 가족들은 굳이 그런 음식을 원하지 않는다. 나도 자연히 가볍게 준비하고 혀가 맛있어 하는 음식을 쫓아갈 수밖에 없다. 힘들게 만든 나물 한 접시와 시래깃국 한 대접보다 밀키트에서 나온 닭갈비 한 접시 볶아 내는 것이 더 편하고 가족들도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음식문화도 경제적 여유와 함께 양극화가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씁쓸하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배달과 포장으로 간편하게 나오는 한 끼를 때우는 일이 곧 식사라면, 또 다른 한 편은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정돈된 주방에서 취미로서의 요리를 즐기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식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밥이 일회용기 속 삶의 투쟁이고, 누군가에게는 여유로운 삶의 느낌표로 자리매김하는,  우리의 삶은 그렇게 밥의 의미도 한 번 더 나누어 놓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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