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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03. 2018

장자, 21세기 인간의 마음을 열다

장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는 시간, [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

                                                                                                                                                                                                                                                                                                                                                                                                                                         

  


작가 안희진 출판 시그마북스 발매 2009.08.13


  얼마간 책과 거리를 쌓고 살다, 도서관에 들렀다.  베르베르의 <나무>와 이 책을 저울질하다,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얼마 전 읽은, 고전 혁명이란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이런 고리타분한 책을 고르다니,,  나도 늙은 것인가..


<장자의 재발견, 그리고 동양 고전의 재발견>

  학창 시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노장사상의 한 문장이 내 지식의 전부였던 장자가 이 책을 통해서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동양 고전은 시대에 맞지 않는 고루한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깨는 뜨거운 책이 되었다.

첫 장부터 가히 나의 선입견을 부수어 버린다. 교과서에서 그렇게 찬양하던, '숙이 백제'와 같은 지조와 절개의 상징 즉,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외부에서 주어져 만들어진 관념에 빠져 자신의 자연적인 삶을 던져버린 어리석은 행위라고 보다니... 그리고, 우리가 책을 통해 우러러 왔던 모든 것들이 사회가 만들어낸 관습의 틀에 얽매인 것이라고 대접받다니..  내심, 불편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하지만, 점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내면의 것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진짜라는 것을.

나 스스로도 세상에서 배운 도덕적 잣대로 나 자신의 명분을 쌓고, 남을 평가하고,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대립적인 관점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이란 대개 그렇게 인식된 것일 뿐인 허상이라는 것'이다. 나 스스로 그런 굴레에 갇혀서 스스로를, 또 다른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했던가. 내 마음의 소리를 정확히 들어야 하겠다. 어쩌면 이것은 칸트의 철학과 연결되는 느낌도 있다. 동서양 철학자의 공통된 통찰이라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인가?

  유학은 조선의 통치이념이었고, 현시대에도 가정과 각 조직 사회에 유령처럼 작동되며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고려말 신진 유학자들은 유학적 이상 국가 실현의 꿈을 안고 이성계와 의기투합하여 조선을 세웠다. 그리고 붕당정치, 관념적 논쟁. 그래서, 조선은 관념이 지배하고 실질은 없는 한없이 약한 나라, 고상한 껍데기와 달리 부패한 기득권이 지배하는 나라, 그 결과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제강점기를 겪게 된 나라, 바로 유학의 나라 조선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글 속에서 유학이 현실 정치의 제도권 안에 들어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점을 장자는 수천 년 전에 미리 예언하고 있었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주창한 관념들은 사실 지혜가 아닌 우물 안의 분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 진정한 겸손, 진정한 이익이란 관념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 내내 일어났던 붕당과 사화들은 정말 사소한 격식과 예를 차리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그렇게 인,의, 예, 충, 효를 목소리 높이며 강조하고 목놓아 부르며 관념에 사로잡혀 스스로  거짓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정말 강조할수록 거짓이 되는 것은 분명한듯하다.

장자가 공자와 그 제자들에게 제발 관념의 우물에서 나오라고 하는 것은 우리 현대인에게도 헛된 욕망과 성공담, 정보의 허울 속에서 나와 자신의 내면을 보라고 하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2주에 걸친 책 읽기가 지금 끝났다.

전반부를 읽으면서, 착함 콤플렉스, 완벽 콤플렉스가 나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융통성 없음이 가져온 문제를 장자가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었다.

중반을 넘어가면서, 나의 집착과 노력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남들의 인정, 칭찬, 성취욕이었다면, 그것은 정말 나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걸까? 그걸 이룰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이룰 수 있다면 그 후에는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걸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의 본질, 내 본연의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외부에서 주어진 보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그것을 얻는 과정의 스트레스, 얻고 난 후의 또 그 이상의 욕망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에서 다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겠지.  사회가 정해준 기준이 아닌 나의 본연의 기준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군가 보아주는 내가 아닌, 내가 원하는 나여야겠지.

후반부를 읽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은 대자연이 아닌 자연과 하나 된, 나를 찾자는 것이라고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가 아닌, 무언가에 집중해서 숙달되어, 그 무언가와 하나 되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나인 것.

흑, 어렵다.

이 책을 덮으며...  이 책을 출발할 때 내가 겪은 혼란으로 다시 돌아가겠지.

하지만, 그 혼란은 분명, 처음의 혼란과 조금 다를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난 여전히 속되고, 세상의 기준에 연연해하겠지. 그래도, 조금씩 그것에 매몰되지 않고, 나의 중심, 본연의 나를 계속 두드릴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의 지식과 나의 감정에 흔들리겠지만, 나는 그 전환점을 돌고, 혼란 속에 감춰진 나의 자연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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