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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Aug 09. 2018

페미니즘의 품위

1970년생인 나의 어릴 적 꿈은 현모양처였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몰랐지만,  텔레비전 방송에서 너무나 예쁜 미스코리아 언니들이 인터뷰 때 너도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현모양처'가 되면 저렇게 예쁘고 멋져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현모양처였고, 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처음 깨어진 것이 중학교 3학년 때 국어 시간이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이'의 선택에 대해서 물었을 때 나를 비롯한 다수의 학생들이 '그런 지조를 지키는 것이 훌륭하다'라고 이야기하는데, 한 학생이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도령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관습적 사고에 머물러 있던 나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답변이었고, 나는 그 아이가  무척 멋있어 보였다. 그 날 이후로 나의 꿈 '현모양처'는 끝이 났다. '현모양처'라고 말하는 것이 구태의연하고 부끄러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두 번째 껍질이 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 당시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 것을 무슨 기록 세우는 것인 양 집착하던 내가 읽었던 책 중 하나를 읽으면서다. 아쉽게도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남녀 차별의 역사에 대해  쓴 어느 페미니즘 작가의 책이었던 것 같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의식하지 못하며 살아온 남녀차별 의식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차별의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거의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만 가능하다는 문구가 내 심장을 두드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남자 선후배나 동기를 만나거나, 심지어 소개팅을 하면서 이런 주제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남녀차별적 언행을 할 때면 참지 못하고 나의 의견을 흥분하며 내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내 말을 듣는 남자들은 나름의 논리로 흥분하는 나를 향해 냉정하게 반박했고, 여자들은 그저 어리둥절해하며 듣고만 있었다. (심지어 그 남자들 중 상당수는 학생운동을 하던 진보적 인물들이었다.) 그러한 논쟁을 한 날 저녁은  불연소된 내 감정의 찌꺼기를 쓸어담느라 평소 쓰지도 않는 일기장에다 아무렇게나 감정의 파편들을 쏟아내곤 했다. 그렇게 자의식 과잉의 모습으로  하루하루 논쟁을 벌이는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 조금씩 이 문제를 주제로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쁜 사회 초년생의 시절을 보내며 20대 후반에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이 있다. 바로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이다. 현실 남녀의 역할을 바꾼 상상의 세상, '이갈리아'의 이야기. 요즘 말하는 일종의 '미러링'과 같은 논리로 나온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잡다하게 읽은 책은 많지만 그 제목과 내용을 잊지 않은 몇 안되는 책인걸 보면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후련함과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현재 나는 결혼해서 남편과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그리고 나의  남편은 가사 분담을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상도의 남자라서 함께 맞벌이를 하지만 집안일의 대부분은 내가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남편은 미안해하며 앞으로 잘 하겠다고 말하고는 며칠 하고는 하지 않는 게 반복되었다. 나는 성격상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말없이 내가 하는 쪽을 택했다. 가끔 힘들면 짜증을 내면서 말이다. 페미니즘이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었던 시기에 어설픈 페미니즘의 목소리를 내었던 그때의 나는 페미니즘이 시대적 흐름이 된 지금에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는 이율배반의 모습을 선택다.  일종의 타협이나 포기일 수도 있지만 나만의 이유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나의 남편은 나보다 먼 거리의 출퇴근을 하고 근무 시간이 조금 더 길다. 무엇보다 자발적인 남녀평등의 사고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생각보다 적고 지금 나에게 받는 돌봄에 대해 남편이 느끼는 감사와 행복의 만족도가 너무 높아 차마 그 기대를 거스르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함에도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만둬 버렸던 '현모양처'의 꿈을 지금 이룬 건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나는 현모양처보다는 남편이 좀 더 가사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는 멋진 가정의 모습을 꿈꾸지만 내가 강요해서 마지못해 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저 순간순간 내가 시키면 해 주는 것에 어느 정도 만족하며 견디는 편을 택했다. 이건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던 나의 과거에서 보면 비겁한 모습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제 페미니즘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넘어섰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돈다'라고 말하는 것을 모두가 비웃던 것처럼 20년 전 내가 남녀평등을 이야기할 때 남녀 할 것 없이 뚱해 있던 모습 속에 혼자 흥분하던 그런 시절은 아니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모두가 함께 행복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과제로 공론화되었다. 사실상 가정과 사회에서 터져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결혼 후 친족 간 호칭 문제, 제사 문제 등-이 여론화되고 있다. 내 아들이 사회 생활을 하고 가정을 가지는 10 여 년 뒤면 더욱 평등해진 세상에서 여성을 존중하며 서로 공존해 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요즘의 남성들의 여성 혐오나 피해의식, 워마드의 과격한 언행을 보며 한 극단은 다른 극단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남성들의 여성 혐오라는 극단이 워마드라는 남성 혐오의 극단을 불러왔고, 더욱 큰 극단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과거 내가 읽었던 페미니즘 책들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초기 페미니즘 여성들의 인간애와 자기희생, 품위 있는 반대, 폭력적이지 않은 미러링들이 많은 울림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하면 또 다른 반동이 올 수 있다. 지금 뿌리내리려는 페미니즘의 힘을 다시 여성 혐오로 무너지게 하지 않으려면 페미니즘의 품위를 다시 찾고 대다수 남성들의 이성의 힘을 믿고 함께 손 잡고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남성의 힘과 권위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니고 여성에게도 같은 기회와 존중이 주어져야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 모두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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