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아들의 하숙집을 구하기 위해 대학교 근처 한 건물을 방문했다. 주인은 반지하 방을 보여주며 이런 가격의 방은 이 근처 어디에도 없다고 자랑을 했다. 겨우 사람 둘 누우면 가득 찰 그 방의 낮은 창문은 건물 뒤쪽을 향해 있어서 다행히 사람이 오가지 않아 사생활이 노출되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유일한 창문인 그곳에 설치된 방범창이었다. 단단히 고정된 방범창은 밖에서 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절대 열 수 없는 것이었다. 화재가 나거나 침수 상황에서 탈출로는 오직 방문뿐인 것이다. 하지만 몇 집을 전전해도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지쳐있던 우리는 깔끔해 보이는 그 방을 계약하였다. 짐을 챙겨 이사를 하는 날 나는 찜찜한 마음을 거두지 못하고, 아이의 방구석에 작은 소화기를 놓아두며 말했다. ‘화재나 침수가 발생하면 이 소화기로 방범창을 부수고 나오라고’
나와 같은 문외한도 느낄 수 있었다. 밖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방법창이 어떤 순간에는 나를 가두는 쇠창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결국 반지하방의 방범창은 이번 수해에서 사람의 목숨을 거두어 갔다.
자연재해는 인간 역시 거대한 자연의 일부분임일 뿐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우주로 비행체를 쏘아 올리고, 기계도 인간처럼 지능을 가지게 만드는 인간의 위대한 과학 기술이 어찌 안에서 열 수 있는 방범창 따위를 만들어 내지 못할까? 그것은 인간의 과학과 기술마저도 자본과 시장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의 힘을 불러들이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나 서민을 위한 투자와 기술 개발은 그것이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 해도 그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빗물로 하수가 넘치면 맨홀이 튕겨나갈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연구로 예견된 일이지만, 수많은 맨홀 뚜껑을 안전하게 바꾸는데 필요한 투자는 미루어질 뿐이다. 이는 희귀병 치료제나 노동자의 작업장 안전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권력 구도와 재벌들의 이윤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에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기본적인 사회 안전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또 누군가가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각종 법이 통과되어도 소중한 생명 지기키는 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효율성과 경제성만 따지는 성과주의 문화에서 벗어나고 생명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지 않는 한, 언제든 맨홀 뚜껑은 튀어 오르고, 서민들은 쓰러져 갈 것이다.
결국 자본과 기술이 인간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움직이는 이상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사람의 목숨이 정치나 경제적 목적보다 낮게 놓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