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산책로를 걸으면 온갖 꽃들이 나를 반겨준다. 가느다랗고 긴 허리를 하늘거리며 곱고 가녀린 꽃망울에 나는 매혹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하늘로 뻗은 풍성한 잎들 사이에서 환한 빛을 뿜는 아름다움에 시선을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행정기관에서 봄부터 심고 가꾸어 만든 산책로 미화 사업의 결과물들이다. 덕분에 나는 사시사철 곱고 고운 각종 꽃길을 걸으며 산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답고 고운 꽃들의 이름을 몇 개만 알고 있다. 긴 산책로의 봄을 책임져 주는 개나리와 벚꽃, 초록이 우거진 여름 산책로 중간중간 즐거움을 선물하는 장미와 배롱나무 꽃, 가을이 오면 간간이 보이는 코스모스, 겨울의 끝자락을 책임지는 동백나무 꽃 정도를 나는 알아본다. 하지만 이 꽃들 말고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수많은 꽃들이 있다. 올망졸망 예쁜 모습에 한참을 들여다 보고 사진도 찍고 그 이름이 궁금해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그렇게 이름을 한참 외우면서 걸어보지만, 다음번에 그곳을 찾았을 때 그 꽃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 뒤다.
하지만 이 꽃은 다르다. 아무도 심지 않았고, 아무도 가꾸지 않았다. 누구도 이름을 알려주려 팻말을 달지 않았고,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꽃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다. 내가 걷는 산책길 내내 내 곁을 따라 걷듯 내 발 곁에서 수없이 피어나며,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한다.
그 이름은 바로 ‘민들레’이다.
누가 지었는지 어쩌면 이름도 민. 들. 레.인 걸까?
‘장미, 백합, 제비꽃, 수선화, 수국, 목련... ‘
곱고 고운 꽃 이름을 다 가져와 봐도 민들레가 주는 이름의 맛이 없다. 짙고 샛노란 빛깔과 길게 갈라진 꽃잎의 조화가 독특하고 예쁘지만, 대개의 풀꽃들이 그렇듯이 누구에게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를 받지 못한다.
'민'이라는 첫소리가 주는 맛은 우리네 민초들처럼 소박하면서도, 왠지 지조나 기개가 서려있는 느낌이 좋다
'들'이라고 말할 때 주는 느낌은 민초들이 사는 너른 들판이 연상되면서 따뜻한 봄 햇살이 느껴진다.
'레'라고 끝말을 소리 내면 촌스러우면서도 예쁜 어감이다.
그래서, '민들레'라고 소리 내면 산골의 눈빛 선한 아이가 떠오르기도 하고, 정다운 옛동무가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들꽃보다도 땅에 가까이 자라기에 땅바닥의 작은 벌레나 강아지똥마저도 친구 삼고 품어줄 것 같은 꽃이다.
세상의 화려한 꽃들이 사람의 눈요기에 맞추어 곱고 예민하게 길러져 나와 그 귀함과 고고함으로 자신을 뽐내지만, 그 이름은 대개 알 수 없다. 하지만 모든 들꽃의 대표 주자인 민들레는 누구의 손길에 길들여지기보다 스스로 이 들판, 저 들판에 자유롭게 내려앉아 누구의 눈길에도 구애되지 않고 자기만의 꽃을 잘도 피워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길을 걷다 다른 꽃들을 만나면 그 예쁜 모습에 사진을 찍지만, 민들레를 만나면 그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다. 하지만, 대개 다정한 눈빛으로만 다음과 같이 살짝 부르며 지나간다.
'들레야, 민들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