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책을 정리했다. 오래전 유아책을 정리했을 때는 용돈벌이가 제법 쏠쏠했었다. 십 년 전쯤 아동용 도서를 정리할 때는 푼돈이나마 받으며 정리할 수 있었다. 몇 달 전 아들의 중고용 도서를 정리하게 되었다. 대부분 청소년용 문학책 혹은 인문학 책, 몇 권은 학습용 도서였다. 적은 돈이나마 받을까 했지만 너무 구차하게 느껴져 무료 나눔으로 중고장터에 내놓았다. 글을 올리는 순간에도 적은 돈이나마 붙이지 않은 것이 못내 아깝다 여겼지만, 웬걸 한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책을 중고장터에 올린 지 한 달쯤 되던 어느 날 드디어 책을 가져가겠다고 연락이 왔고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하루 만에 취소 댓글이 왔다. 결국 나는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이 책들을 이제 버려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책을 아끼며 읽고 물려주던 시절, 중고책이 귀하게 팔리던 시대는 지나간 지 오래였다. 이제는 천지에 책이 흔하고 중고책은 돈으로 사지 않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어떤 중고물품보다 천덕꾸러기인 품목인 것이다.
폐지가 될 운명의 책들을 생각하니 누군가에게는 유익하게 읽힐 책의 내용과 상태에 마음이 조금은 착잡했다. 휴지나 연습장으로 재탄생되기보다 촘촘한 문장너머 의미를 짚어가며 읽을 어딘가의 소년, 소녀의 마음을 자꾸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폐지수거일에 버릴 요량으로 현관문 앞에 잔뜩 쌓아놓은 책들을 또 두어달째 방치하였다. 며칠마다 찾아오는 폐지수거일이 되면 책들을 들고나갈까 문 앞에서 멈칫거렸다. 그러다 ‘이번 주는 기어코 좁은 전실을 차지하고 있는 저 책 무더기들을 치워야지’하고 마음먹은 그날 아침에 놀랍게도 누군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그 누군가는 무려 서너 달 전에 올려서 이미 최신 목록 뒤로 훌쩍 넘어가버린 내 글을 어떻게 찾아 읽은 걸까? 나는 그런 신기한 마음과 다행인 마음이 교차하며 약속 시간을 잡았다. 그 시간이 직접 만나서 전달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었고 책들은 너무 무거웠기 때문에 나는 그 책을 직접 전달하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 미리 내놓았다. 다음날 아침 나가보니 수년간 우리 집에서 함께 해 온 책들은 그 자리를 떠난 뒤였다. 드디어 누군가의 집에서 어느 소년 또는 소녀의 손에서 읽히게 되었다. 그러길 바란다.
책의 시대는 끝났고, 책을 보는 계층은 이제 독서마니아로 불리며 일부층의 문화로 몰리고 있다. 더구나 인기 없기로 유명한 중고생용 책이라니. 그저 주인을 만난 것만 해도 감지덕지이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을 시간이나 읽을 만한 장르가 충분히 있기는 할까. 그들의 손에 휴대폰이 아닌 책을 놓는다는 사실 자체가 도전이 된 시대이다. 그렇게 희귀해진 문학 소년, 소녀의 시대에 중고생용 책은 겨우 겨우 주인을 찾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