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를 방문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두르는 한 여성과 아이가 있다. 아이는 집 앞 놀이터를 지나며 놀이터에서 놀고 싶다고 말한다. 여성이 안된다고 팔을 끌자, 아이는 "왜 명절인데 내 마음대로 놀지도 못하는 거야." 하고 투덜거린다. 아이의 엄마는 속으로 '그건 할머니에게 가서 직접 말해 줄래?'라고 말한다.
위 내용은 sns에서 우연히 본 글이다. 이 글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사회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느리게 가던 과거에는 한 세대가 평생을 살면서 느끼는 그 시대의 가치는 변함이 없었다. 따라서 어른의 권위는 그만큼 컸고 사회적 가치는 절대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 구조의 변화도 빨라지면서 가치 혼재의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2030 세대와 5060 세대들이 느끼는 각종 삶의 양식에 대한 가치의 차이는 사뭇 크다. 심지어 50대인 나와 60대들이 가지는 가치의 차이도 적지 않게 느껴지니 말이다. 이처럼 절대적이던 가치들이 빠르게 무너지며 새로운 가치도 정착할 여유를 갖지 못하며 기존 가치에 대한 냉소와 비난, 새 가치에 대한 불만과 걱정으로 가치 갈등이 곧 사회적 갈등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가치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기존의 가치를 더욱 교조적으로 강화하려는 반동 현상까지 보이며 갈등은 극에 달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결국 놓치게 되는 것은 그 가치를 세우게 된 본질이 아닐까 한다.
명절의 가치도 그러하다. 가족 일원 모두가 아닌 며느리의 노동만으로 명절 음식을 산더미같이 하며 집안의 권위를 세우던 가부장적 유교의 폐습이 이제는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명절이 되면 곳곳에 남아 그로 인해 고통받는 며느리들의 한탄이 들려온다. 또 이에 답하듯 멋지고 쿨한 어른이 되려는 시부모들이 자식과 며느리에게 각자 연휴를 즐기자며 굳이 오지 말 것을 주문하며 시대에 앞선 모습으로 박수갈채를 받기도 한다. 여기에 내가 감히 이런 폐습은 걷어내고 오랜만에 모든 가족이 함께 모여 같이 음식이나 나눠 먹자고 말한다면 기어코 꼰대 소리를 듣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말을 해 보려 한다.
“이번엔 그냥 '명절 차례 세트'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는 건 어때?”
나는 아직 시부모가 되지는 않았고, 한 집의 제사를 남편과 함께 맡고 있는 며느리이다.
나보다 제사를 더 귀찮아하는 남편의 이 말에 나는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냥 우리 먹는 거에 나물 조금 추가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처럼 우리가 직접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차례상에다 밖에서 산 음식만 올린다는 건 아직 난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
평소 반찬을 사 먹는 경우가 많은 나지만 가족 생일만큼은 내가 한 미역국과 팥밥을 짓는 것과 같은 마음이 차례상에도 드는 것이다. 생일밥을 할 필요 없다는 가족들에게 굳이 직접 해 먹이고 싶은 내 마음의 원천과 비슷한 본질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모든 게 바뀌는 새 시대에 굳이 이 본질을 고집하고 싶은 나의 꼰대력이 자꾸만 울컥울컥 올라오는 것이다.
사실, 집집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고 정답은 없음을 안다. 나 또한 내년의 내 모습이 올해와 다를 수도 있다. 우리 집은 원래 제사 음식을 많이 하지 않고, 손님도 많이 오지 않는다. 나와 남편 둘이서 오전에 두세 시간 뚝딱 만들어서 오후에 시누이들이 오면 - 안 올 때도 있다 - 같이 밥 먹고 제사 지내면 끝이다. 솜씨 없는 우리 내외가 정말 대충하고 종류도 몇 가지 없는데도 모두 맛있다며 잘 먹어주니까 큰 스트레스는 없다. 그러니 모든 집의 제사와 명절의 양식은 다를 수 있고 다름을 인정하자. 중요한 것은 그 본질이다.
명절이 가지는 본질은 무엇일까? 그건 가족에 대한 감사이다. 서로가 곁에 있어 주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기쁨을 나누는 그 마음의 시간이다. 이것이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처럼 가족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이유가 될 필요도 없다. 명절은 그저 휴가일 뿐이라고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만이 꼭 과거의 폐습을 떨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휴가는 명절이 아닌 다른 날을 잡아서 가면 된다. 부모님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속과 다른 말을 굳이 믿으면서 홀랑 휴가지로 떠나기보다 일 년 중 그 며칠이라도 같이 먹고 같이 뒹굴며 손 잡아주는 그런 가족의 날이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꼰대스러운 생각을 굳이 해 보는 이 시대의 추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