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글에 관심 있던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이, 나 또한 시를 끄적이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나의 시 쓰기는 고등학교 때 시작되고 대학 초년생때 끝났는데, 주로 짝사랑했던 음악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혼란스러운 나의 미래에 대한 암울함 등이 주제가 아니었나 싶다. 주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나의 시들은 곧바로 나의 흑역사가 될 운명이었다. 그 글들이 지금 남아있다면 말이다. 다행히 지금은 온데간데없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혼연히 사라졌다. 감사하게도.
그러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한참이나 먹고 50살을 앞두고 그러니까 오춘기가 시작될 즈음,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 글은 당연하게도 시가 아니라 산문이었다. 그럴 수밖에, 이 나이에 시는 읽는 것이지, 쓰는 것이 아니었다. 내 감정의 부산물을 맨 정신으로 내려다볼 비위 따위는 이미 지난 세월과 함께 장렬히 산화하였으므로. 처음에는 인터넷 블로그에 책이나 영화의 리뷰를 남기는 것으로 글에 대한 목마름을 대신하였다. 그리고 우연히 브런치 앱을 알게 되면서 온갖 잡동사니 글들을 이렇게 소소히 써 내려왔다.
여전히 나는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여름 휴일날 기다란 소파, 또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시를 읽는 기쁨이란, 늘어진 산문을 읽는 따분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겨울에는 두껍고 깊숙한 동굴 같은 산문이 따뜻한 이불처럼 나의 이성을 품어주지만, 여름에는 그런 산문은 좀 거추장스럽다. 새콤달콤하거나 물렁 울컥한 시는 산바람처럼 내 감정을 솔솔 흔들어주니, 여름은 시의 계절이다. 유독 여름에 시를 많이 읽다 보니, 요즘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고 문득 생각이 떠오르지만, 엉감생심이다.
물론 고백하자면,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브런치앱을 열고 시를 써 본 적이 있다. 그러나 한 줄 쓰고 행을 바꿔 두 번째 줄을 쓰려는 순간, '아이코 이런 걸 어디다 펼치려고' 하는 마음이 훅 올라오며 후다닥 치우기 바쁘다. 솔직히, 4년 전 용감하게도 브런치에 시를 올린 적이 있다. (정확히는 타령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쿵, 저러쿵하며 줄 바꿈만 열심히 해서 시인 척했으니.) 기필코 찾아서 삭제를 해야 하는데, 찾아볼 엄두가 안 난다. 찾는 순간 삭제하기도 전에 쥐구멍을 찾다가 몸이 쪼그라들 것 같기에.
또 한 편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순간 나의 감정은 분명 그 어설픈 어휘들 속에서 진심의 여백만은 존재했으니, 그렇게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 나의 자아가 그 속에 숨어 지낼 수 있게 해 주고 싶기도 하다. 왜 슬픈 감정을 어루만지는 데는 시만 한 것이 없는 걸까. 하물며 시를 잘 쓰건, 못 쓰건 말이다. 택도 없는 시 한 편 갈겨놓고도 그때의 나는 그 시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어쨌든, 시를 쓴다는 것은 딱딱해져 버린 지금의 나, 갱년기 아지매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인 건 분명하다. 어떤 글을 써도 이렇게 부사어가 넘쳐나는데, 어찌 시가 제대로 나오겠는가. 이제는 시인 척하는 타령도 힘들고, 여름의 늘어진 잡초 잎사귀처럼 어지럽게 흔들리는 감정 조각들을 겨우 겨우 기워서 늘어진 산문들로 주렁주렁 매다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