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읊조리다

by 연구하는 실천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주-세-요."


퇴근길 차 안, 라디오에서 남자 가수의 낮은 목소리가 느리고 나직하게 울리고 있었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그저 목소리였다. 리듬도, 멜로디도 거의 없는 중얼거림.

반주도 마지못해 거들듯 피아노 건반음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높고 고운 목소리로 불리던 이 흔한 노래를 이렇게 낮게 읊조리니 노래 사이의 여백은 한없이 넓어 지고, 그 여백은 어느새 나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나는 요즘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다. 요즘의 트렌드를 알고 싶기도 하고, 가끔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아내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데 그 음의 변화무쌍함과 현란함, 빠른 비트에 도저히 따라 부를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뮤직비디오나 텔레비전 화면에는 가사가 나오니 그걸 보며 이해한다. 요즘은 그 파트를 부르는 가수 이름까지도 표시된다. (이러한 디테일은 노래의 낭만을 깨어버린다. ) 그렇게 가사를 정신없이 따라가고, 화려한 영상과 댄스, 감각적인 언어유희에 빠져들다 보면, 노래의 여백과 나의 감정은 끼어들 곳이 없다.

요즘 노래는 그렇게 매일같이 쏟아지는 음원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각종 음표들과 꾸밈음들을 동원해 파도가 춤을 추듯 너울대고 그 속에서 가사는 뭉개지고 감정은 표류하는 느낌이다.


음악의 태생은 읊조림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웅얼, 웅얼 중얼거리는 것. 그래서 음의 길이도 높이도 의미가 없어서 가창력을 따질 필요 없는 것. 오히려 기교를 넣으면 노래의 여백은 여지없이 쪼개지고, 듣기는 아름다우나 가슴은 울리지 않는 노래가 되어 버린다.


나는 사근 사근 내리는 빗소리 같은 읊조림 한 곡을 저녁 내내 입술에 물고서야 피곤한 하루의 안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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