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남북문제와 교사•학부모 문제의 공통점
어제 출장이 있는데도 긴급회의가 있다 하여 마음은 급하지만 회의에 참석하였다. 회의 주제는 현장체험학습에서 아이들 김밥이나 과자를 뺏어먹지 말라는 것이다. 학부모 민원이 들어왔다는것이다. 마침 다음날이 현장체험학습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1학기때 아이들이 건네주는 김밥이나 과자를 냉큼 받아먹었던 것 같다. 그 민원은 어쩌면 우리 반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늦은 출장을 서둘렀다.
내가 초임 시절 교직사회는 청렴하지 못한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소신 있게 거절하는 선생님들도 적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학부모가 상담이 끝나고 교실문을 나가면 그 즉시 학부모가 두고간 책이나 빵 속에 혹시 봉투가 있는 건 아닌지 바로 확인하였다.(그 시절 책이나 빵같은 작은 선물을 받는 것까지는 거절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청렴 감수성이 지금보다는 많이 떨어졌다.) 왜냐하면 그 학부모가 교문을 나가기 전에 쫓아나가서 그 봉투를 손에 쥐어주고 돌아오지 않으면, 다음날 장문의 편지와 함께 아이 편에 돌려보내야 하는 난감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당연히 환영했다. 이미 교직사회는 깨끗한 편이었으나, 몇몇 학부모들의 혹시나하는 염려를 알고 있기에, 그들이 자녀의 담임을 찾아올 때 겪는 작은 갈등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이제 그들이 당당하게 교실문을 들어오게 될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현장체험학습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소소한 정마저 앗아갈 줄은 몰랐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하고 방금 흙 만지고 논 손으로 쥐어주는 빨간 방울토마토를 내가 꿀꺽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는 아이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아이들의 손바닥 위 비스킷을 거절해야 할까?
다음의 보기에서 가장 적절한 정답을 무엇일까?
1번. "음. 우리 00 먹어. 선생님이 지금 배가 부르네."
2번. "음, 괜찮아. 친구들과 나눠먹어. 선생님은 안 먹어도 돼."
3번. "음. 선생님이 너희들 거 먹으면 안 되는 법이 생겼어. 그러니까 이제 주면 안돼."
4번. "음. 선생님이 지금 배가 아파서 못 먹겠네. 미안해."
누가 좀 정답을 알려주시길.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 현장체험학습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먹을 것을 권하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도 그러하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요즘 분위기를 아는 건가?, 아니면 우리가 그동안 의식하지 않아서 몰랐던 것일뿐 요즘 아이들이 이제 자기들 먹기 바빠서 선생님께 주지 않았던 건가?' 하며 웃었다.
현장체험학습을 다녀온 오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그 소식을 뉴스로 들으며 기쁨과 감동에 전율하면서도 결국 또 허무하게 무산되거나 뒤통수 맞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인터넷 뉴스나 댓글을 봐도 비슷한 우려가 기쁨만큼이나 넘쳤다. 문득 교사와 학부모의 오래된 불신과 남북관계의 불신이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은 내가 교사가 되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 누나. 누나는 공평한 교사가 돼라. 우리가 얼마나 학교에서 차별받았노."
나도 교사가 되지 않았으면 남동생처럼 어린 시절 공정하지 못한 교사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학교에 대한 불신이 남달랐을 것이다. 지금의 교단은 정말 깨끗해졌고, 선생님들의 열정도 감동적일 때가 많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교사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교사들의 신뢰가 회복되려면 더 많은 시간과 진정성이 필요할 듯하다. 오늘 옆반 초임 교사에게 나는 애매한 사과를 했다.
" 예전 선생님들의 잘못으로 선생님 같은 후배들이 고생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