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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07. 2018

J의 커피믹스, J의 태풍

"선생님, 이거 드세요."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나에게 달려온 J의 손바닥에는 꼬질꼬질 구겨진 커피믹스 한 개가 놓여 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 커피믹스를 받아 들었다.

"어, 고마워. 선생님 잘 먹을게."

J를 꼭 안아 주었다.

J가 그걸 나에게 주는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제 J는 나를 때렸다. 그것도 2대나.  처음 누군가 뒤에서 내 등을 툭 쳤을 때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J였다. 다른 아이와 이야기하느라 바빴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 좀 있다 한 번 더 J가 내 등을 쳤다. 나는 기분도 안 좋고 놀라서 물었다.  

 " 너 왜 선생님 때리니."

 " 선생님이 화나면 선생님 때려라고 했잖아요."

나는 일순간 당황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아, 그랬다. 1학기 때 J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아이들과 부딪칠 때마다 다른 아이를 때리는 J에게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누구를 때리고 싶거든 차라리 나를 때려라고 했었다. 그날 J는 내 등을 여러 차례 때렸었다.


 J와 K는 앙숙이다. J는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 같아 두려운 아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친구들에게 잘 대해주고 도와주며 마음을 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이다가 누군가 자기를 무시하는 듯하면 폭발해 버린다.  반면 K는 자신감 넘치고 지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간섭이나 충고 듣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아이다. 특히 운동을 좋아하고 잘 해서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J도 운동을 좋아하고 잘해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체육이나 놀이시간에 둘은 자주  충돌한다.  같은 편이 되면 J의 실수로 팀이 불리해지는 경우  K의 아쉬워하는 표정, 행동, 말투에 대해 J는 무시당했다고 느끼고 폭발한다. 다른 편일 경우  J의 팀이 이겨 J가 환호하면 K는 자기 바로 앞에서 좋아해서 기분 나쁘다고 화를 내고, J는 또 폭발한다. J는 가슴에 뜨거운 태풍을 가진 아이다. 자신에게 하는 조그마한 비난이나 실수도 뜨거운 태풍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어제 J와 K가 급식실을 가기 위해 앞뒤 붙어서 줄을 섰는데, 서로 먼저 건드렸다고 싸움이 났다. 언제나 그렇듯, K는 침착하게 목소리를 낮춰 자신감있게 또박또박 말로 J를 공격하고, J는 항상 그렇듯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나는 상황을 알고자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그때 J가 내 등을 때린 것이다. 급식실은 정신없었고, 나도 정신이 없어서 그다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항상 그렇듯 어떻게 해서 J를 다독여 들어가 앉아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J는 집에서 챙겨 온 듯한 커피믹스 1개를 내게 내밀었다. J의 태풍은 조금씩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고 있는 걸까? 그럴 것이다. 2학기 들어 J의 행동은 좋아지고 있다. 뜨겁게 요동치던 자신의 에너지를 조금씩 분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전히 J의 태풍은 발생하겠지만, 그 횟수는 줄어들 것이고 세기는 약해질 것이다. 나는 내일 J에게 말할 것이다.

 " 이제 네 예쁜 손으로 친구들도 때리지 말고, 선생님도 때리지 말고, 네 마음도 때리지 말자. 네 예쁜 손으로 선생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리고 지금처럼 잘 참는 너의 노력이 합쳐지면  K의 마음과 너의 마음을 맞출 수 있는 비밀 열쇠도 찾게 될 거야. 더 행복한 J가 될 거야. "

태풍이 지나간 어제 오후 산책로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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