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서

무엇이든 꿈꾸어라, 직업으로 규정짓지 말고, 그저 느끼는 대로.

by 연구하는 실천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택한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기를 누구나 바란다. 하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일보다는 현실적인 상황에서 적절히 타협하는 선에서 적당한 직업을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가 하다 보니 어떤 목표가 생겨 열심히 매진하기도 하니까, 이렇게 전후가 바뀌어도 일단 일을 좋아하면 좋은 일이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내가 교대를 가는 것에 대해서 주변에서는 좀 의아해했던 것 같다. 그때는 그저 여자로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등록금의 부담도 없는 그런 선택지만이 내 앞에 있었던 상황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부끄럽게도 교사가 되겠다는 사명감은 딱히 없었다. 또 막연히 기자를 하면 멋진 삶일 것 같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꼭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지금까지 때로는 열정적이고 신념 강한 교사로, 때로는 삶에 지친 평범한 직장인으로 건강과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며 이중, 또는 삼중의 얼굴로 살지 않았나 한다. 어떨 때는 사소한 소신에 목숨을 걸고, 어떨 때는 감정에 휘둘리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말이다. 40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나는 '교사라는 일'에 대해서 어떤 정의를 내릴까 말까를 고민한다. 정의가 필요할까 아닐까도 고민한다. 어떤 직업인이나 이 나이쯤 되면 어떤 허무함과 어떤 성취감 사이에서 헤매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진로와 동아리'라는 학교에서의 내 업무분장에 대해서 과하게(?) 열심히 한다는 주변의 칭찬 같은 걱정을 듣는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라며 웃어넘기는 내 표정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 학급의 일이 아닌 학교 전체와 관련된 업무를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이렇게 열심히 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 눈에는 조금 색달라 보이는 것일 수 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젊은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학교의 모습을 내가 조금은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는 데서 오는 짜릿한 행복이라고 할까? 학생들이 주도하여 학교 행사나 학급 행사를 준비하고 이끌어 가는 그런 이상적인 모습 말이다. 그것을 내 업무인 '진로와 동아리 활동 기획'을 통해서 조금 실현해 보고 있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통해서 창의적인 것이고 열정적인 것이 나와 맞는 일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규칙적이고 안정된 것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교직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며 지내온 나에게 이렇게 나와 맞는 업무를 맡아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내 업무상 아이들에게 직업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일이 많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도 어렴풋이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에 맞는 직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알기 어렵다는 것을. 그래서 어떤 직업을 갖든지 자유롭게 창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개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해 준다면 그 개인들의 다양한 소질과 역량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고 사회도 개인도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는 질문보다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먼저 알아가는 것이 먼저 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좀 더 천천히 알아가도 좋을 것이다. 나 또한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조금 알게 되었으니까.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열심히 살아가보자. 아이들도, 어른들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자신의 일 속에서 찾아도 되길. 그래서 자신의 일 속에서 허무함이 아닌 각자의 가치와 의미를 느끼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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