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29. 2018

인터넷의 선한 영향력

내가 자주 다니는 길에는 조금 애매한 신호등이 몇 군데 있다. 여기서 '애매한 신호등'이란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말한다.  그 중 하나는 아파트와 학교의 후면 도로인데, 차량은 적당히 오가나 사람은 건널 일이 잘 없는 한적한 곳이다. 또 하나는 짧은 2차 일방도로에서 양방의 넓은 8차대로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고 차량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어도 대다수의 차량은 지나가기 일쑤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 도로에 가까워지면  신호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속도를 조금 올리기도 한다. 나의 어정쩡한 준법심과 도덕성이 시험대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자주 오가는 우리 동네의 후면도로이거나 출근길이라 자주 신호에 걸리는 편이다. 그러면 나는 짜증이 목구멍에 살짝 올라오지만 고민하는 걸 싫어하는 내 성향상 대부분 멈춰 서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 나와 함께 달리거나 따라오던 차들은 보란 듯이 내 차를 지나쳐 횡단보도를 통과한다. 하지만 내가 멈춰 선 후 오는 차들은 확연히 다르다. 그냥 지나가는 차들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반 이상이 나를 따라 멈춰 선다.
 아마 내가 그냥 지나갔다면 그것이 따라오는 다음 운전자에게 관성처럼 작용하여 별 고민하지 않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앞사람의 행동에 따라 다음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을 부정적인 의미의 군중심리와 대비하여 선한 영향력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누군가의 작은 신념으로 선택한 행동 규범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니까.

 아이들의 세계도 이와 비슷하다. 학급의 분위기가 어떠냐에 따라 대다수 아이들의 선택이 달라진다. 나쁜 말과 행동을 쉽게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군중심리로 그렇게 행동한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이 바르고 선하게 행동하면 그것이 선한 영향력으로 작동하여 주변 아이들의 행동이 스스로 조절되고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럼 이런 선한 영향력의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과거 양심냉장고라는 예능프로그램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였으나 한 때의 바람으로 끝났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이슈가 떠오르면 인터넷이 하나의 커다란 광장이 되어 뜨거운 토론이 일어나고 그것이 때로는 과격해지거나 앞뒤 재지도 않고 누군가를 비난으로 몰아가 고통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진실의 문이 열리거나 다수가 수긍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경우가 많다. 도덕적 딜레마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다양한 사례들을 통하여 학습하고 토론을 거쳐 스스로 점검하게 되고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앰뷸런스가 지나가면 예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도로가 열린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우리가 겪는 부당함이나 부조리가 공유되지 못하고 잊혀졌지만,  이제는 인터넷의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선한 의지들이 모여 결국은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아무도 건너지 않는 신호등에 홀로 멈추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남들이 융통성 없다고 손가락질할 것 같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별 것 아닌 실천이 조금씩 번져서 큰 사고를 막는 방파제가 될 수 있다는, 아니 그렇게 거창할 거야 없다고 치면, 나의 작은 소신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조금씩 퍼져갈 것이라는 기대로 행복한 기다림이 될 것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선한 행위로 마음 따뜻한 적이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 선한 힘을 내가 모르는 누군가에게 다시 연결함으로써 갚아야 의미가 있을 것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려는 찰나에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문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주는 처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시대에서 통일 시대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