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구하는 실천가 Oct 01. 2018

평화는 전쟁의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영화 [영웅]을 보고 나서



오늘 문득 tv를 틀다 보니 [영웅]이라는 중국 영화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봤을 때는 화려한 풍광과 색감, 유려한 검술 실력에 빠져서 보다 보니 내용이 정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오늘 새삼스럽게 다시 보니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진시황제의 중국 통일 전쟁의 정당성에 대한 감독의 해석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전쟁으로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 백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러 국가로 나뉜채 끊임없이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는 것이 백성을 위한 것인가 '하문제로, 감독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사실 고대 국가들이 서로 전쟁을 통해서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는 것 생존의 문제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삼국통일도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평화를 가져왔다고 볼 때 감독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진시황제가 백성을 위해 온갖 음해를 이겨내는 위대한 인물로 그려진 점은 불만이다. 진시황은  통일 이후 분서갱유나 만리장성 및 아방궁 축조에서 알 수 있듯이 백성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하는 성군이 아니었다.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그의 명분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영화 [영웅] 속의 온화한 모습의 진시황제

 그가 정말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을 죽이며 천하통일을 한 것이란 말인가? 이것은 아주 위험한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전쟁을 해야만 하는 고대국가가 아닌 현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  그것은 일본이 아시아대공영이란 명분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침략한 일이나 국민의 안위와 질서유지를 내세운 516 군사정변, 현재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한 행동의 논리로 이용되었다. 


   [영웅]의 장예모 감독 의도처럼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 세계를 정복하면 세계는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가 찾아올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명분일 뿐이다.  그들이 얻고자 한 것은 평화가 아니라 권력이다. 설사 그들이 만에 하나 평화를 바랐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가짜 평화일 뿐이다. 그것은 진시황의 사후 통일중국이 얼마 가지 못하고 분열한데서도 알 수 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길,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모두의 입을 막고 조용한 것은 멀리서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두가 잠자고 있거나 억눌려 있는 거짓된 평화일 뿐이다.  강력한 힘으로 억누른 평화는 그 권력자가 사라지는 순간 거짓 평화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또다시 강력한 지배자가 평화의 가면을 쓰고 더욱 누르는 것으로 유지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천하를 통일하면 당분간 백성들이 전쟁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이라 불리는 진시황제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다. 진시황제를 비롯한 지배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백성의 평화를 수단으로 삼고 그 결과 따라온 부수적인 결과물이지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다. 그것을 영화 [영웅]에서는 마치 진시황이 고귀한 선택을 한 희생자인 것처럼 미화해 놓은 것이다. 차라리 다른 나라와 힘의 균형을 이루거나 국력 경쟁을 하는 것이 어쩌면 더 평화에 가깝다.  완벽한 평화란 어차피 없다. 평화를 향해 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다. 강력한 평화를 요구하는 순간 누군가의 검은 권력욕이 숨어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넷의 선한 영향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