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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26. 2018

낭만시대에서 통일 시대로

신채호 선생을 생각하며

10여 년 전 수업시간에 통일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다가 몇몇 아이들과 논쟁이 붙고 그 아이들을 설득하려다 서로 어색해진 씁쓸한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 아이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 너희들은 통일을 이루어 통일한국의 시대를 열어갈 역사적 주인공이 될 기회를 가진 행운아들이야. 얼마나 멋진 일이냐. 더 이상 역사적으로 이룰 것 없는 평범한 나라의 청소년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의 이러한 낭만적 통일 인식이 분단과 반공의 역사 교육을 받지 않은 아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을 것임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통일에 대한 나의 과도한 열정을 굳이 변명하자면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에서 출발했는데, 그 예로 고등학교 때 국사교과서에 단 한 줄 나오는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이 그것이다. 국사책 속에 [조선상고사]를 쓴 역사가이며 독립운동가라는 짧은 문구와 작은 인물사진 한 장만으로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그를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로 정했는데 그 이후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그의 발자취를 통해 더욱 역사적인 매력을 느꼈다. 그것은 그의 심지가 강철같이 곧고 단단하며 그의 지성이 칼날같이 날카롭고 정교하다는 사실에, 그의 필력이 불꽃처럼 뜨겁고 빛난다는 사실에 감탄하였기 때문인데 그러한 그의 삶이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지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그의 대단함에 대해 좀더 써본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역사에 문외한으로 주관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1.  먼저 우리의 역사를 중국 사대주의 아래에 놓여 있는 힘없는 약소국이라는 일제의 식민사관의 논리를 저지시킨 그의 날카로운 지성이다. 일제강점기가 시퍼렇던 1920~1930대에 맨 손으로 고대 조선의 역사를 살려내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유구한지와 고조선과 고구려가 우리 역사의 본류라는 사실을 명확히 알렸다.


2. 일제의 회유에 굴하지 않는 그의 강철 같은 심지이다. 친일파의 도움을 받아 보석으로 나오느니 차라리 일제의 감옥에서 죽음을 택한 그의 삶은 나 같은 인간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다. 또한 쉽고 편한 길, 외세에 기대는 방법을 택한 독립운동가와는  단호하게 그 사람이나 그 단체를 멀리하며 홀로 가는 독립운동을 택하였다.


3. 그가 쓴 의열단의 [조선혁명 선언]이나 몇 편의 글을 보면 그의 뜨거운 독립정신이나 자주성에 감동받게 되며  그의 펜은 어떤 총칼보다도 강하고 단호했다.


 그의 이런 삶에서 우리의 역사에 대한 위대함, 유구성, 만주 벌판 저 너머까지 이어지는 우리 영토에 대한 아쉬움으로 범벅이 된 나의 낭만성은 반쪽이 되어 버린 우리 땅에 대한 미래 세대들의 무관심과 무절실함을 참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단 세대에게 교육받은(어쩌면 세뇌받은) 나의 세대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성인 것이고, 지금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는 더이상 울컥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부르는 노래가 아니었다. 그렇게 낭만의 시대는 끝이 났다. 미스터션샤인이라는 드라마 속 김태리는 ' 독일제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것'을 자신의 낭만이라고 했던 것처럼, 낭만이라는 것은 가장 소중한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것이니 다소 무모하고 감성적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스펙의 시대, 글로벌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북한은 남의 나라이고, 나의 삶보다 우위에 둘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그들도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아들의 말처럼, '통일을 바라지만,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신채호 선생의 삶은 그런 의미에서 내가 사랑하는 낭만적인 삶의 최고봉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지성을 던져 일제의 식민사관을 막아내고, 자신의 몸을 던져 일제나 온건한 독립운동가와도 타협도 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을 던져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인 나의 마음을 끊임없이 울렁거리게 하니까 말이다.


 어쩌면 낭만시대의 울렁거리는 가슴으로는 이룰 수 없었던 통일을 지금의 아이들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담담한 가슴으로 냉정한 눈빛으로 남과 북, 미국의 아슬아슬한 협상 테이블을 지켜보며 그리고 정말 그날이 오면 그들은 현실적 통일 세대답게  과거의 상처와 사상 논쟁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정치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차근차근 통일 한국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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