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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구하는 실천가 Sep 10. 2018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 이유


초등학교  3학년 J는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무시한다고 느끼고 아이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사과를 받아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상대방은 방금 그렇게 험한 꼴을 당하고 나서 그 사과를 받을 마음이 없다. 그러면 사과를 받아줄 때까지 다시 화를 내고 폭력을 행사한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부정되는 느낌을 받으면 화를 내고 아이들은 피하고 또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고....


J의 행동 패턴을 바꾸기 위해 병원 치료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 패턴을 바꾸기 쉽지 않다.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라는 드라마가 있다. 거기에 주인공과 어릴 때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던, 현재는 잘 나가는 음악감독이 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 현재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주인공을 만나서도 그 시절의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견제하는 행동 패턴을 보인다. 그러다가 주인공으로부터 '당신이 멋있고 부럽다'는 진심 어린 말을 듣고는 열등감이라는 담을 허물고 자신의 패턴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주인공을 도와주는 캐릭터로 바뀌게 된다.

드라마 속의 악인이 반성하고 선인으로 바뀌는 장면을 보면 그 뜬금없음에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조금 수긍이 되었다. 어린 시절 항상 일등만을 바라는 엄마로 인해 바이올린 켜는 것이 고통스럽기만 한 아이가 어릴 때 오디션에서 자신을 이겼던 아이(주인공)가 음악을 포기한 채로 어른이 되어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위치와 존재감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신을 향해 멋있고 부럽다는 말을 하고 음악을 좋아하지 않고 열심히만 하려는 자신이 두렵다는 말에,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행동 패턴을 깰 수 있게 된다.


 결국 오랜 전에 만들어진 자신의 패턴이 돌아가는 방식을 깨려면 숨겨진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그저 패턴이 그리는 현상만을 보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방법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드라마 속 음악감독은 다음과 같은 패턴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일등이어야 한다] →[나보다 바이올린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 [바이올린 켜는 것이 힘들고 두렵다]


여기서 숨겨진 출발점인 [나는 일등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나는 일등이 아니어도 된다]로 바뀌면 그다음 패턴인 [나보다 바이올린을 잘 하는 사람을 봐도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바이올린이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어진다]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J의 패턴 운영체계의 숨겨진 1단계를 알지 못한다.

[?] → [친구들이 내 말을 무시한다] → [친구를 용서할 수 없다]

실제 상황은 드라마처럼 단순한 패턴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패턴의 첫 출발점을 알 수 있다면 J는 좀 더 행복한 아이로 살아갈 길을 찾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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