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머니, 우유 하나 드셔 보세요."
산책 가는 길에 우유 시음 판매대를 지나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문득 말을 걸었다. 나는 짐짓 못 들은 척 지나갔지만, 마음 한 구석은 미안함으로 살짝 아렸다. 만약 내가 그분의 친절한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시음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면, 그 순간 나는 해당 우유의 장점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어야 하고 끝내는 정기 구매 신청서를 작성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시음만 하고 돌아서는 나의 뻘쭘한 뒤통수를 그분께 굳이 보여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불편해하는 것 같다. 모든 일에 둔감한 내가 왜 이런 일에는 유독 신경이 쓰이는 걸까?
또 난감한 상황은 아이들이 하교한 방과 후 빈 교실에서 밀린 업무를 정신없이 하고 있을 때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릴 때이다. 고개를 들어 보면 2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깔끔한 머리와 단정한 옷차림을 한 앳된 청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 안녕하세요. 저는 00 은행 신입사원입니다. 혹시 저희 은행 카드가 없으시면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게 제게는 중요한 영업 실적이라서요.. "
그럼, 나는 정말 곤란한 표정과 미안한 태도를 가득 품고서 " 죄송해요. 제가 그 카드가 있어서요. "라고 말한다. (사실 대부분이 정말 그렇기도 하다.) 그러면 그 신입사원은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 알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하고 씩씩하게 돌아선다. 그럼, 나는 그가 나간 문을 몇 초간 응시하다 10년 뒤 내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며칠 전 집으로 오는 차 창 밖으로 본 것은 나의 소심함을 탓하기엔 많은 불편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소위 인간 현수막이라 불리는 것으로, 대로 한가운데서 두 사람이 커다란 현수막의 양쪽을 들고 서서 현수막의 내용을 홍보하는 것이다. 현수막을 든 그들도 그렇게 서 있는 것이 다소 난감한지, 혹은 지겨운지 한 손으로는 휴대폰을 보고 있고 다른 손으로는 현수막이 잘 펴질 수 있도록 당겨 잡고 있었다. 언젠가 뉴스에서 말하길, 이런 인간 현수막은 나무에 불법으로 매다는 것과 달리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인건비도 싼 편이라 점차 많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그렇게 몇 시간을 두 사람이 현수막을 들고 하염없이 서 있는 상황이 뭔가 부조리하게 보였다.
이것을 일, 즉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인간의 육체나 정신을 활용한 노동이라면 무엇을 창출하는 것일까? 광고를 통한 홍보 효과? 그럴 수도 있지만, 뭔가 인간이 대상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것은 납득이 되는데, 왠지 인간이 현수막을 매다는 기둥을 대신하는 이 역발상이 나는 인간의 가치 하락과 대상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흔한 일인 듯 당연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 나에게만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두가 불편하면서 모른 척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 위 이미지들은 네이버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