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 언어학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는 영어이고, 그다음은 한국의 글자, 한글이다."
그리고 소련의 언어학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는 소련어이고, 그다음은 한국의 글자, 한글이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는 한글이란다' 하는 이야기 말이다.
나의 못 말리는 소심함이 발휘되는 것 중 하나가 한글에 관한 부분인데, 말을 할 때는 어쭙잖은 외국어나 유행어를 잘 섞어 쓰면서 글을 쓸 때는 외국어보다는 한글로 고쳐 쓰려는 강박관념이 다소 있다는 점이다. 요즘은 많이 치유되어서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고 더 적절한 표현이다 싶으면 외국어 내지 외래어, 어떨 때는 새로 조합된 국적불명의 신조어를 쓸 때도 많아졌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내가 K교수님을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내가 대학 다닐 때 한글날이 국경일에서 제외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때 국어과였던 우리들은 분개하여 반대 대자보와 한글 사랑 캠페인을 벌였던 일 등도 이러한 나의 강박관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내가 대학 3학년 때 언어학이란 수업을 듣게 되면서 알게 된 K교수님은 약간의 악명과 전설이 있었는데 대략 떠올려보면, 강의할 학생들이 예비 초등교사라는 점에서 가벼운 국어학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학 전공자로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할 만한 수준 높은 강의를 하면서 아울러 우리에게도 심도 깊은 세미나 발표 수업을 요구하신다는 것, 그분의 삶이 워낙 검소하셔서 집에 가보면 낡은 소형 tv가 있는데 채널 돌리는 부분이 부러져 뺀치로 돌린다거나, 그분의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했다거나, 그 당시 예사롭지 않은 한글 이름을 두 아들에게 지어주신 점 등이다. 사실 우리는 그분의 높은 학문적 열정을 인정하면서도 우리가 하는 발표 수업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부실한 준비나 허술한 답변을 할 경우 가차 없이 '내려와'를 외치셔서 무서워 하기도 하였다. 어째든 이런저런 그분의 열정적 강의와 카리스마 (무엇으로 대체하지, 카리스마의 한글 표현?)는 나를 매료시켜서 나는 그 교수님의 열성팬이 되었고 언어학에 대한 매력을 느껴 더 공부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 번은 우리과 고전문학 담당 교수이신 Y교수님께서 우리 수업을 들어오시기 직전에 K교수님과 대판 설전을 벌이셨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강의실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K교수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 저 양반, 정말 안 되겠네. 저렇게 편협한 사고를 가져서야. 한자어가 우리말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가 얼마나 큰데 그걸 다 없애야 한다니. 너희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듣지 말도록 해라. " 뭐,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어쨌든, K교수님의 옹고집은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였지만 교수님의 사고방식은 내 삶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게 되어서 그 후로 한자어나 영어 등 외국어를 만나면 은연중에 한글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한자어나 외국어를 넣어 글로 쓰면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였던 것이다.
언어학에 별 의욕 없는 우리 학교 학생들, 그리고 교육대학이라는 분위기때문에 나는 항상 K교수님이 안타까웠는데, 나에게는 불행히도, 그리고 교수님께는 다행히도 내가 4학년 올라갈 때 다른 종합대학으로 옮겨가시게 되었다. 이제는 좀 학문적 목마름을 함께 나눌 제자들을 만나셨을 거라 믿으며 지금은 어느 대학 강단에서 열정적인 한글 사랑과 언어학 강의를 하고 계시지 않을까 떠올려 본다. 어쩌면 은퇴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문득 드는 생각, 이른바 사족.
통일이 되면 여러 모로 좋겠지만, 특히 한글에 대한 발전이 기대된다. 북한의 언어가 외국어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한글로 표현되어 온 것이 참으로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휴대폰을 손전화라 한다든지.
그래서 통일이 되면 언어의 통일도 이루어질 텐데, 이 부분에서 북한의 말 중에서 발음하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들이 외래어, 한자어를 대체하고 언중들의 생활 속에 많이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