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첫 번째로는 학창 시절에 읽었던 '냉정과 열정사이' 책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는(지붕이 매력적인 대성당이다.)주인공 남녀가 만나는 아주 설레고 로맨틱한 곳으로 묘사가 되는데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는 이런 곳에서 로맨스가 펼쳐지는 상상을 가끔 하며 혼자 웃음 짓곤 했다. 당시에는 가볼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그냥 내겐 머나먼 곳이었을 뿐이었다. 이곳에 가는 것이 그저 꿈일 뿐이었던 학창 시절의 내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두 번째로는 역사를 전공하며 배웠던 르네상스 시기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신 중심의 유럽 사회가 인간 중심으로 전환되며 사회의 전반적인 정치, 경제, 문화에 큰 변화를 준 르네상스의 선두주자가 바로 피렌체였던 것이다. 대학에서 배운 르네상스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피렌체라는 도시는 그 속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그래서 더욱 이곳이 궁금해졌고, 르네상스의 유산이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이유로 내겐 피렌체는 꼭 가야만 하는 곳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이곳에서 내 여행의 방향과 지향점이 크게 변하는 계기가 되는 일이 있어 지금까지도 애착이 가는 도시다.
어제 남부 투어를 마치고 밤늦게 들어와 너무 피곤한 나머지 어떻게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사람들이 일어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벌써 조식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혹시 반찬이 다 떨어져 버릴까 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피곤할 것 같아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표는 오후 2시 50분으로 느지막이 예매를 해 두었다. 덕분에 아침 퇴실 시간까지는 늑장을 부릴 수 있어 마음이 편안했다.
부엌 한편에는 여러 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바쁘게 여행하느라 늘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았었는데 누군가 나를 위해 이 먼 타지에서 밥을 준비해주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물론 숙박비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어 당연한 것이었지만 사장님의 정성이 느껴져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침을 맛있게 먹고 느릿느릿 짐을 정리한 다음 숙소를 나왔다.
캐리어와 백팩을 메고 밖으로 나오니 또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떼르미니 역에서는 더욱더 조심해야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역으로 오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기차 시간이 남아 역 주변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로마에 오면 사람들이 기념품으로 산다는 치약도 사고, 몰타에서 만났던 동생이 부탁한 팔찌도 구입했다. 로마에 와서 먹었던 환상적인 초콜릿 누텔라도 스틱과자가 함께 들어간 걸로 2개 샀다.
오늘부터 개시한 유레일패스와 기차표를 확인해보았다. 유레일패스는 한 달권을 한국에서 미리 구입해왔는데 개시일로부터 한 달까지만 유효해 최대한 많이 이용하기 위해선 기차를 타는 구간을 잘 계산해서 계획을 짜야했다. 이건 여행을 하면서 계속 고민해보기로 했다.
피렌체 행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가니 표를 확인하는 승무원이 없다. 누구나 기차에 오를 수 있도록 개방해놓았는데 알고 보니 기차가 출발한 후 승무원이 기차표를 확인하는 시스템이었다. 표가 없으면 무임승차로 간주되어 제법 큰 금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간혹 기차 안에서 캐리어를 통째로 소매치기 당했다는 글을 보고 의아해했는데 이런 시스템이라 가능했던 것이었다. 캐리어를 짐칸에서 몰래 빼내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만 내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기차를 탈 때마다 짐을 의자 뒤 공간에 두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땐 짐칸에 두고 자물쇠로 고정해두었다.
1시간 30여분 정도 달렸을까. 이윽고 피렌체에 도착했다. 꿈속에서나 그려봤던 피렌체에 오니 감동이었다. 이곳에 가급적 오래 머물고 싶었다. 미리 예약한 한인민박에 걸어서 도착하니 젊은 사장님 한분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어디서 오시는 거예요? 로마?"
"네~로마요. 기차 타고 왔어요."
"로마 여행은 괜찮았어요?"
"네~ 너무너무 좋았는데 소매치기 걱정하느라 매번 긴장해서 좀 피곤한 것도 있었어요."
"맞아요. 그럴 만도 해요. 그래도 피렌체는 로마보다는 덜하니 안심하셔도 돼요."
로마보다는 좀 낫다는 말에 긴장감이 좀 사라졌다. 이곳은 석식도 제공해주는 곳이라 짐 정리를 하고 얼른 저녁을 먹으러 주방으로 갔다. 사장님께서 음식을 나르시며 내게 묻는다.
"혹시 베란다 나가봤어요?"
"네? 아니요. 아직이요. 왜요?"
"두오모가 조금 보일 거예요."
"정말요? 저 잠깐만 보고 올게요!"
두오모라니... 냉정과 열정사이에 나왔던 그곳! 꿈에서나 가볼 수 있을 거라며 그저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두오모를 직접 볼 수 있다니...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앗! 저 지붕!'
붉은색의 두오모 지붕이 살며시 보인다.가슴이 벅차 올라 얼굴에 미소가 가득 찼다.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지붕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감동, 또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