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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문제에도 당황하지 않으려면

#상자 밖으로 #틀에 갇히지 않기 #집중 vs 산만 #페르미 추정

‘상자 바깥에서’ 생각하기

 

로마를 떠나 피렌체에 도착,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찾은 시뇨리아 광장. 마침 한 무리의 재즈 연주자들이 한창 곡의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중세 이래 지금까지도 시청사로 쓰이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수많은 르네상스 대작들이 간직된 우피치 미술관 바로 옆 이 광장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복제품 중 하나가 서 있어요.

 

민 군은 잠깐 다비드 상을 올려다 보더니 그것도 잠시, 오히려 거리의 재즈 공연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 ‘다비드상’ 모작도 여기 서 있다.



흔히 즉흥 연주improvision, improvisation를 ‘재즈의 꽃’이라고도 하는데요.


다른 어떤 음악 장르보다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재즈는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죠.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하기보다 그때 그때 감정과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방식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 즉흥 연주와 창의성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보고서를 접한 적이 있어요.

 

전두엽 손상으로 억제력을 잃은 환자들에게서 창의성이 폭발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뇌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여기서 추가 연구의 단서를 얻은 연구자들은 한 발 더 나아가 ‘억제력과 창의성의 연관 관계’를 알아보는 더욱 적극적인 실험을 하게 됩니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암기해 연주할 때와 즉흥 연주를 할 때, 각각 뇌의 어느 부위가 더 많이 활성화하는지 비교해 본 건데요.

 

악보를 달달 외서 연주하는 것보다 즉흥 연주 쪽이 아무래도 창의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즉흥 연주를 하고 있을 때 외측전전두피질의 활동은 줄어든 반면, 내측전전두피질의 활동은 크게 증가했습니다. 암기해서 연주했을 때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고요.



외측전전두피질은 ‘억제력’, 내측전전두피질은 ‘개성’이나 ‘자기 표현’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곳.

 

전두엽이 손상된 환자들에게서 창의성이 폭발적으로 높게 나타났던 것은 바로 이 외측전전두피질, 즉 스스로를 억제하는 무언가가 해제돼 버리면서 억눌려 있던 창의성이 갑작스레 해방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창의성은 마치 ‘철창 속에 갇힌 와도 같달까요?


억제와 구속의 울타리를 거둬주면 한결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거지요.

 


피렌체 아르노 강 위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를 배경으로. 중세에 만들어진 다리다.




고정관념, 정형화된 틀, 우리의 창의성을 가두는 이런 제약들은 과연 왜 생기는 것이며, 또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과 관련된 재미있는 실험이 있어요.

 

아래 이미지와 함께 문제를 풀어 볼까요?


“여기 양초 하나와 압정이 담긴 상자, 그리고 성냥이 있습니다. 초에 불을 붙여 테이블 위가 아닌 벽 옆면에 고정시키되, 촛농이 테이블 위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해 보세요.” 


[그림1] 촛불 문제Candle Problem

“The puzzle of motivation”, Dan Pink(TED Talk 강연 영상 캡쳐)



이 문제는 독일의 심리학자이자 임상정신과의사 카를 던커(Karl Duncker, 1903~1940)가 가장 먼저 고안한 실험인데요. 이후로 ‘촛불 문제’라는 이름으로 반복, 변형돼 이뤄져 왔지요.

 

‘자발적 동기 부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베스트셀러 『드라이브』(청림출판, 2011)의 저자 다니엘 핑크(Daniel Pink, 1964~)도 짧은 테드TED Talk 강연에서 소개한 것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동영상을 한 번 찾아 보세요.

 

 

이 촛불 문제와 마주한 많은 이들은 쉽게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끙끙 머리를 싸맵니다.

 

대부분 처음에는 어떻게든 압정으로 양초를 벽에 고정시켜 보려고 하죠. 하지만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냥으로 초의 옆 부분을 녹여서 벽에 붙이려 하죠. 좋은 시도지만, 역시 잘 안 붙어요. 어렵사리 붙인다 해도 촛농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게 되니까 실패죠.

 

약 5~10분 정도가 지나면 하나 둘 시작해 절반 정도는 방법을 찾아내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모습이죠.

                                                  


[그림2] 답안

 

 

어떤가요?

답을 보고 나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나요?

 

그런데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간단해 보이는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맬까요?

 


던커의 촛불 문제에는 어떤 ‘제약’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고정관념’, ‘틀에 박힌 사고’라는 제약이죠. 바로 그 제약에서 벗어나야 이런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던커는 이를 ‘기능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이라고 불렀는데요.

 

보통, 사람들은 압정이 담겨진 채 주어진 상자를 보면 그것의 원래의 용도, 즉 ‘압정을 담아두는 상자’로만 여기는 거죠.

 

하지만 상자에서 압정을 비워버리고 나면 다른 기능을 생각해 내기 쉬워 집니다. ‘촛불을 받쳐주는’ 받침대로 쓸 수 있는 거죠.

 

만일 아래 그림처럼 처음부터 상자에서 압정을 다 빼내고 문제를 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림3] 변형된 촛불 문제 압정이 비워진 상자



변형된 문제, 즉 압정과 압정 상자를 분리해 놓자 많은 사람들이 ‘빈 상자’를 이용해 더 쉽게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애초부터 비어 있는 상자를 보니 ‘이걸 초의 받침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훨씬 더 쉽게 연상됐던 거지요.

 

문제 해결을 방해하는 이런 제약에는 이런 기능적 고착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디자인 고착’, ‘목표 고착’ 등 다양한 형태의 기능적 고착이 우리의 사고의 틀을 가둡니다.

 

 

                                                  

피렌체 숙소에서 넷플릭스 영상에 ‘고착’된 민 군.



그렇다면 이런 ‘고착’에 반대되는 개념이 뭘까요? 경직되지 않은, 즉 유연한 사고flexible thinking겠죠.

 

영어 표현 중에 ‘think out of the box’라는 말이 있는데요. 비슷한 말로 ‘think outside the box’라고도 하고요.

 

회사나 학교에서 “생각의 틀을 깨고, 좀 창의적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할 때 종종 쓰는 표현입니다.

 

‘상자 밖으로 나와 생각한다’? 어디서 이런 표현이 생겨 났을까요?


 

한 가지 설은 대략 1960년대~70년대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가 쓴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건데요.

 

어떤 문제의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 즉 박스 안을 아무리 열심히 뒤져도 거기 답이 없을 때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혹시 문제의 해결책이 상자 바깥에 있지는 않은지 살펴 봐야 한다. We must step back and see if the solutions to our problems lie outside the box.

 

고 한 데서 나온 표현이라는 설명입니다.






‘상자 바깥에서 생각하기thinking outside the box’ 표현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아홉 개의 점 퍼즐Nine Dots Puzzle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퀴즈인데요, 아래 그림처럼 9개의 점을 단 4개의 연속된 직선으로 ‘한붓그리기’ 하라는 문제죠.

 

펜을 종이에서 떼지 않은 채 모든 점을 이어 나가되 도중에 되돌아가서도, 같은 점을 두 번 이상 지나서도 안 됩니다.


 

[그림 4] ‘아홉 개 점 한붓그리기’ 문제

  

그런데 이 문제, 풀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9개의 점으로 된 이 3X3 정사각형 ‘박스 안에서’만 해결해 보려고 해서는 절대 풀리지가 않아요.

 

비결은 직선을 그 바깥까지 확장해 나가 보는 것이죠.

 

즉, ‘상자 바깥으로 나가야지만out of the box’ 풀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바로 다음의 그림처럼요.



 [그림 5] ‘아홉 개 점 한붓그리기’ 답안

   

 

여기서는 ‘상자box’ 자체가 고정관념, 정형화된 틀, 편견, 매너리즘 등을 상징합니다. 그 경계를 과감히 벗어날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틀 밖으로 나와 유연하게 생각하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말이죠.

 

어떻게 하면 틀에 갇히지 않은 유연한 사고가 가능해지는 걸까요?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한 가지 힌트는 너무 문제에만 빠져들지 말고 잠시 뒤로 물러나 긴장을 느슨하게 해 주라는 것입니다.

 


릴렉스relax!

 

 

등받이 의자에 잠시 몸을 뒤로 기대고 눈을 감아 볼까요?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맥주라도 한 잔 마셔야 하는 걸까요?

 

실제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땐 가벼운 음주가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음주가 어떻게 창의성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요? 그건 바로 술이 우리 뇌의 집중을 느슨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음주는 오히려 뇌가 돌아가지 않게 하겠지만요.


 

약간의 술 기운이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것뿐 아니라 ‘제정신’일 때의 억제력을 잠시 무장해제토록 하는 것처럼, 우리는 어려운 문제를 풀고자 고도로 집중하는 중간에도 잠깐씩 느슨하게 풀어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전두엽에 경미한 손상을 입은 환자들처럼요.

 

 

 

카페에서 스케치 중. 덕분에 엄마, 아빠도 맥주 한 잔 하며 잠시 릴렉~스.





 

‘안전지대’를 나와 ‘도전’하라

                                                   


상자 바깥으로 나와 생각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그 표현의 반대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Outside the box’의 반대는 ‘inside the box’겠죠?

 

앞서 봤듯이 ‘상자box’는 일종의 은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늘 생각해 오던 방식은 ‘안전’하고 ‘편안’합니다.


예를 들어, 진지한 회의 중에 ‘튀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어느 정도 ‘돌+아이’ 취급 받을 위험risk을 감수해야 할 일이죠.

 

자라면서 우리는 여러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 점점 더 명확한 경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직접 해 본 것, 보고 듣고, 배워서 아는 것, 그 경계 안, 즉 ‘안전지대comfort zone’에만 머물려는 경향이 짙어집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불안할 수밖에요. 경계 너머 저 바깥은 잘 보이지도 않고,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니까요.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Uffizi Gallery’에서.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전 세계에 걸친 거대한 네트워크에 포섭돼 실시간으로 같은 정보를 공유 받고, 크게 다를 것 없는 의견과 생각을 갖게 됐죠.

 

그렇다면 대체 남들과 나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요?

 

나만의 독창적인original 생각을 추구하는 것은 내 삶의 주인으로 서기 위한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세를 좇아, 안전한 길을 따르기보다 상자 바깥으로 과감히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위험천만한 큰 도전일지 모르지만 용기를 내 감수해 볼만한 리스크가 아닐지요?

 

표준화된, 획일화된 생각에 고착되어 있기보다 경계를 사뿐히 뛰어넘어 ‘깨는’ 생각을 내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고 있으니까요.

 


 

그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산드로 보티첼리, 1485~1486년, 1.72m x 2.78m, 우피치 미술관 소장)



Think out of the box!

 

달걀의 아래를 조금 깨서 테이블 위에 세운 콜럼버스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간단히 칼로 끊어버린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 이런 일화들도 어찌 보면 주어진 문제에 빠져 고착되지 않고, 상자 바깥으로 나와 생각한 유명한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그건 용기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훈련의 기본 원칙으로 창의성 전문가들이 제안하고 있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늘 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시도를 원한다면 뭔가 명백히 잘못돼 보이는 것, 바보같이 보이는 것을 의도적으로 끌어안아 보는 겁니다.

 

핵심적으로 보이는 요소에서 잠시 벗어나 그 문제와 별반 관계 없어 보이는 것을 채택하는 것도 좋습니다. 핵심을 아예 배제elimination해 버리는 것도 의외로 신선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때때로 무작정 반대opposition해 보거나, 과장exaggeration하고, 나아가 극단으로까지 가져가taking it to the limit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의 ‘정답’을 찾겠다는 태도보다는 여러 ‘대안적 방법’을 모색한다는 자세입니다.




르네상스가 만개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서 열심히 작품 관람 중.



요즘은 이렇게 발상의 전환을 자극하고 상자 바깥으로 나와 생각하는 훈련을 돕는 교재도 많이 나와 있으니 아이와 함께 풀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초등학생 3~4학년 수준의 어린 학생들을 위한 창의성 교육 교재가 있어 살펴 보니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나오더군요.

 

(1) 닭과 귤의 공통점을 10가지 써 보세요.

(2) 손가락이 발가락보다(또는 발가락이 손가락보다) 더 행복한 이유를 10가지 써 보세요.

(3) 1,000원으로 방 안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물건을 살 수 있을까요? 가능한 방법을 5가지 써 보세요.

 

다들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이 채점 기준이 되는 문제들이죠.

 

틀에 갇혀 골몰하거나, 흔히 나올 수 있는 뻔한 답을 내놔서는 좋은 점수를 얻기 어렵습니다.

 

사실 어른들도 얼른 답이 떠오르지 않죠. 앞에 소개한 문제들 중 (3)번 문제 하나만 같이 답을 볼까요?


예시 답안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 양초를 사서 빛으로 방을 가득 채운다.

- 레몬을 사 즙을 짜면 방 안이 레몬향으로 가득 찬다.

 

어때요, 그럴싸한가요?




회랑을 누비는 민 군.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낯선 문제에도 당황하지 않게…

 

 

학습이나 업무 처리는 일반적으로 ‘집중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기발하고 창의적인 생각, 유연한 사고를 위해서는 반대로 집중을 잠시 흐트러트리는 것, 말하자면 ‘분산력’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외부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량은 아주 짧은 순간에도 어마어마하게 많죠.

 

대부분은 뇌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해 차단하고 걸러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미쳐버리고 말 지도 몰라요.

 

아이나 어른이나 때로 ‘건성’인 듯 보이는 우리 인간의 모습은 그런 의미에서‘축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의 ‘다비드 상’ 앞에서.



흔히 ‘집중력이 높다’고 하는 상태는 눈앞에 펼쳐진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정보 외에는 모두 차단해 버리려는 뇌의 작용이 가장 강할 때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앞서 봤듯이 이렇게 ‘박스 안으로’만 집중해 들어가면 틀을 벗어난 유연한 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떨 때는 하나의 대상으로 점점 더 좁혀 들어가는 태도가 요구되지만, 또 어떨 때는 다양한 가능성을 향해 집중을 분산하고, 개방된 사고로 나아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때로 정공법으로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문제 그 자체에 아무리 깊이 열중한다해도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 다양한 관점, 다양한 방향으로 의도적으로 분산시켜 생각해 보고, 무작정 직진해 달려가는 대신 우회해 들어가는 간접적인 사고indirect thinking가 더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요.




‘피렌체 대성당’ 앞. ‘두오모’로도 불리는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피렌체 대성당 앞에서.







‘페르미 추정Fermi Estimate’.


복잡해 보이는 문제와 마주했을 때 기본적인 지식과 논리적 추론 능력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대략적인 근사치’를 추정해 내는 방법입니다.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탈리아 과학자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의 이름을 딴 용어죠.

 

어림짐작guess으로 추정estimation한다는 뜻의 ‘게스티메이션guesstimation’도 비슷한 접근입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도록 정확한 값을 구하는 게 중요하지만, 어떨 때는 최대한 빠른 판단을 위해 대략적인 답만 먼저 후딱 가늠해 보는 게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페르미 추정에서는 정확한 답을 구하는 것보다는 빠른 어림짐작을 위해 빠르게 가설을 세우고 풀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창의적인 문제 해결 도구로서 페르미 추정은 도출된 결과가 얼마나 실제 정답에 가까운지도 중요하겠지만, 문제 해결 과정과 접근법 자체가 얼마나 그럴싸한 지가 창의적이냐 아니냐를 가려내는 척도가 됩니다.

 


여기 페르미 추정의 예시로 많이 이야기되는 에피소드 하나.

 

박종하 창의력 컨설턴트(박종하창의력연구소 소장)의 책 『수학, 생각의 기술』(김영사, 2015)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서울에 택시가 몇 대쯤 있을까요?”

 

 

과거 한 컨설팅 회사에 지원한 사람이 입사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요. 관련 정보나 통계 수치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다면 좀처럼 풀기 어려운, 갑작스런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은 지원자는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지원자는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문득 자신이 타고 갔던 택시 뒤에 붙어 있던 문구가 생각났대요.

 

 

‘치솟는 LPG 가격 100만 택시 가족 다 죽인다.’

 

 

그는 종이에 메모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하더니 잠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택시 기사들의 시위에서 ‘100만 택시 가족’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시위에서 하는 말이니 10% 정도 부풀려졌다고 생각하면 택시 가족이 90만 명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가구당 평균 인원이 3명이라고 생각해 보면 택시 기사의 수는 30만 명이라고 보여집니다. 택시는 법인택시와 개인택시가 있습니다. 법인택시는 2명이 교대하고 개인택시는 혼자서 운영하니까 법인택시 기사와 개인택시 기사의 수는 2:1 비율로 20만 명:10만 명이라고 계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전국 택시의 수는 20만 대로 추정됩니다. 서울 인구는 1,000만 명으로 전국 인구의 20%입니다. 단순히 계산하면 20만 대의 20%인 4만 대가 서울 택시겠지만, 서울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 활동이 활발하므로 인구당 택시가 2배 정도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서울에는 8만 대의 택시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 2011년 기준 서울의 택시 수는 7만 3,000대였다고 합니다.

 

약간의 오차에도, 그의 추론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고 그는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접근 방식과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런 페르미 추정도 ‘단서’가 없으면 시작할 수가 없죠?

 

다른 사람들은 지나쳐버리고 말았을 ‘100만 택시 가족’이라는 택시 안 문구 하나를 유심히 봐 둔 것이 구체적인 단서가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준 박종하 소장은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문제의 해답을 추정하는 능력은 복잡성이 늘어난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페르미 추정은 단순한 데이터보다 그것이 갖는 의미를 현명하게 찾아내는 능력의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 박종하, 『수학, 생각의 기술』(김영사, 2015)



 

피렌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피사Pisa.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 앞에서.






앞서 한 차례 소개한 티나 실리그 교수의 책 『인지니어스』(리더스북, 2017)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스쿨버스에 얼마나 많은 골프공이 들어갈까요?”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피아노 조율사들이 있을까요?”

“당신이 동전만 하게 줄어들어 텅 빈 믹서 안으로 던져진다고 상상해보죠. 믹서는 60초 후면 작동하기 시작할 겁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구글 같은 기업의 채용 면접에 나올 법한 이런 질문들은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홍보, 마케팅처럼 특정 직무 분야의 전문 지식만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경험과 여러 분야의 지식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 접근, 창조적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꼭 단 하나의 정답만을 찾을 수 있느냐 하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자가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보려는 거죠.

 

예기치 못한 뜻밖의 도전에도 당황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경영 환경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인재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창의적인 인재필요에 따라 집중, 몰입에서 잠시 벗어나 느슨한 상태로 들어가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아이에게 너무 집중, 몰입만 강조하기보다, 때로는 여유를 갖고,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하면 어떨까요?

 

필요에 따라 언제든 집중과 분산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닐 수 있도록 말이죠.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점심은 유명 스테이크 맛집에서.(왼쪽) 베네치아로 향하는 피렌체 기차역. 이제 제법 ‘1인분’을 하는 민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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