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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나무, 본질과 현상... 균형잡기

#망원경-현미경 #본질-현상 #이성-감성 #분석-직관 #균형 잡기

‘숲과 나무’ 사이에서 균형 잡기

 

 

“내가 일찍 ‘빅 히스토리’를 알았다면 나는 훨씬 더 창의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을 겁니다.”


- 빌 게이츠(William Henry “Bill” Gates III, 1955~), 기업인, 사회사업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로 큰 부와 명성을 얻은 빌 게이츠. 그가 ‘인생의 세 번째 프로젝트’라며 1,000만 달러를 투자할 정도로 애정을 쏟고 있는 미래 교육법이 있습니다.

 

최근 세계의 미래 교육 트렌드 중 가장 ‘핫’한 과목 중 하나, 바로 ‘빅 히스토리Big History입니다.

 

빅 히스토리는 137억 년 전 ‘빅 뱅Big Bang’으로부터 시작된 과거와 인류가 문명을 이루고 있는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까지 장대한 시간을 관통하는 종합 학문이자 융합 학문입니다.

 

태초부터 비교적 최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인간이 알아 낸 가장 작은 것부터 가장 큰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과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사고의 틀로 바라본 거대사巨大史, 거시사巨視史라고 할 수 있지요.

 

천문학은 물론, 물리학, 생물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연결해 한눈에 조망합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 있는 클림트의 <유디트>(Judith, 1901, 유성 페인트, 84cm x 42cm) 앞에서.



빅 히스토리는 호주 맥쿼리대 역사학 교수인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Gilbert Christian, 1946~) 박사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스천 교수는 처음에는 러시아 역사만 가르쳤는데 중앙아시아, 유럽, 미국까지 함께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모든 인류의 역사를 포괄하는 세계사를 다루게 됐다고 해요. 나아가 ‘빙하기와 같은 지구과학을 더하면 학생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겠다’ 싶었대요. 그래서 지구과학을 엮었고, 또, 자연사를 다루다 보니 결국 별과 우주의 역사, 빅 뱅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더라…

 


그렇게 빅 히스토리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2008년 경 빌 게이츠가 이 학문을 접하면서 빅 히스토리는 전 세계에 걸쳐 대중적으로도 친숙해졌죠.

 

최근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와 같은 책으로 더 많은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이제는  히스토리를 제목에 포함한 책도  많이 나와 있어요.

 

 


 오스트리아 빈의 ‘쇤부른 궁전’과 그리로 향하는 지하철 역.

로코코 형식의 오스트리아 최대 여름 별궁 ‘쇤부른 궁전Schönbrunn Palace’.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유일한 여성 통치자이자 왕가의 마지막 군주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초청으로 1762년 6살의 모차르트가 신기에 가까운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 곳이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넘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통돌이 세탁기 뚜껑을 열고 그 안에서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가루세제의 궤적을 내려다보며 명정은 그렇게 말한다.”


- 구병모, 『한 스푼의 시간』(위즈덤하우스, 2016)

 


거대한 우주, 그리고 장대한 역사 앞에서 한낱 모래알보다 작은 존재, 동시에 고귀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작가의 시선.

 

이를 통해 나와 세계를 더 크고, 넓게, 거시적인 관점에서 들여다 볼 줄 아는 자세를 배웁니다.

 

빅 히스토리를 공부하면 한 가지 대상을 ‘시작’과 ‘끝’이라는 큰 틀에서 접근해 보는 훈련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거시 사고력’을 익힐 수 있다고 합니다.


 

한편, 빅 히스토리에서 거시적 관점과 함께 요구되는 것이 바로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고 이를 ‘요약summarize’하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우주의 시작부터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주 짧게 설명해 보는 것이죠.

 

 

 “아주 아주 먼 옛날, ‘빅 뱅’이라고 하는 큰 폭발로 우주가 생겨났고, 태양과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 태어났어. 그로부터도 한참이 지나, 태양의 열로부터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 살기에 딱 좋은 이 지구에 삼엽충부터 공룡까지 다양한 생명체가 나타났지. 지금은 우리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미래에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르지.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살게 될지도?”




사실 우리가 이런 거시적 관점을 갖게 된 직접 경험은 인류의 길지 않은 역사에서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어요.

 

수천 년 간 지구 표면에 발 딛고 살아온 인류가 지구 바깥에서 객관적 시선으로 처음 자기 고향을 마주했을 때, 그 경이로운 느낌은 과연 어땠을까요?

 

유명 사진 작가 벤자민 그랜트Benjamin Grant는 당시의 역사적인 순간을 TED Talk 강연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폴로 8호 우주선은 처음으로 달 주위를 성공적으로 세 바퀴 돌았습니다. 그것은 불과 3일 전에, 캐이프 캐너러벌에서 발사되었고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구 저궤도를 넘어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우주선의 네 번째 공전 궤도에 이르러 지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고 달 지평선 너머로 지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우주 비행사 빌 앤더스는 동료들에게 카메라가 어디에 있냐며 다그쳤고 카메라를 집어 든 뒤 창문 쪽을 가리키며 연신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진 중 하나를 찍었습니다. ‘지구돋이Earthrise’.

 

며칠 뒤, 우주 비행사들이 무사히 귀환했을 때 앤더스가 한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달에 갔지만 우리가 실제로 발견한 것은 지구입니다.”


‘지구돋이’ (이미지 출처: William Anders/NASA, AP)




1968년 12월 24일 우주 비행사 윌리엄 앤더스William Anders가 아폴로 8호에서 찍은 ‘지구돋이’ 사진. 매일 ‘해돋이’만 보던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저 멀리서 자신들이 거주하는 행성을 직접 조망한 이 역사적 사건은 불과 50여 년 전에 일어났다.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

 

바로 코 앞의 대상에만 몰두해, 더 큰 그림, 전체적인 구조를 놓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숲을 보느라 숲을 이루는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숲을 보느라 나무를 놓치는데 나무 껍질이나 나뭇잎에 있는 작은 곤충, 번데기 같은 것들을 볼 수는 없겠죠.

 

거시적 관점은 미시적 관점과 균형을 이뤄야 해요.


숲도 봐야하지만, 나무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새처럼 높은 곳에서 거리를 두고 조망bird’s eye view하는 것과 땅바닥 작은 구멍을 드나드는 개미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것 둘 다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구글 어스Google Earth’로 지도 위 공간을 확대-축소해 보는 일이나, 스마트폰 카메라로 슬로우 모션slow motion, 타임 랩스time laps 기능으로 시간을 빠르게, 혹은 천천히 흐르게 영상을 촬영해 보는 것도 좋아요.


 

경제도 거시경제와 미시경제가 있고, 역사에도 거시사와 미시사가 있듯이 어떤 대상에 대한 본질을 꿰뚫는 일은 보통 나무와 숲을 모두 아우를 때 가능합니다.

 

보통 우리는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할 때 그 대상에 바짝 다가가서 집중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상자 바깥으로’ 잠시 나왔다가 다시 문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해 본 다음 다시 근접해 들어감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높이 나는 새는 멀리 볼 수 있습니다.

낮게 나는 새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높이 날아 멀리 본 다음, 낮은 곳으로 오면

깊이 볼 수가 있습니다.


- 『아이디어토피카』(이경모, 김한주, 수류책방, 2018)







몽촌역사관 체험 수업 후


친구들과 올림픽공원 내에 있는 몽촌역사관을 갔다.

이곳에는 시대별 도구, 집을 짓는 방식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크게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로 나뉜다.

먼저 구석기 시대에는 열매를 따거나 동물을 사냥해 먹을 거리를 얻으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에서 살았고, 신석기 시대 때에는 먹을 거리가 풍부한 강가나 해안가에 모여 살기 시작했다. 청동기 때는 벼농사가 시작되었으며, 철기 시대에는 철로 만든 농사 도구로 농업이 크게 발달했으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도구는 주먹도끼, 신석기 시대는 빗살무늬토기, 청동기는 청동방울, 철기는 지금의 우리도 사용하는 철로 만든 농기구 등이 있다.

(머리 쉬어가기) 땅을 가는 도구는 이렇게 바뀠다. 돌괭이 - 철괭이 - 쟁기 - 탈곡기 - 콤바인. 그리고 옷을 만드는 도구 이렇게. 가락바퀴 - 베틀 - 방직기, 재봉틀. 다음은 음식을 만드는 도구는 이렇게. 토기 - 시루 - 가마솥 - 전기밥솥. 마지막은 집! 동굴 - 움집 - 초가집/기와집 - 아파트.

(나의 생각과 느낌~ ^^)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힘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불편한 도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신분이 나뉘어 있어서 노비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곳은 나에게 재미있는 상식을 알려준다. 그리고 자연사 박물관과 비슷하다. (완전히.)

다음에 또 오고 싶다. 꼭~ ^^ (꼭 선생님께서 가보세요!!!~)


2019년 9월 류민의 글짓기 학교 숙제
 




 

현상과 본질… ‘뭣이 중헌디!?’

                                                 

빈의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앞.

 

 

몇 년 전 <곡성>(2016)이란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었지요. ‘현혹되지 마라’,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같은 유행어를 낳은.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현상’이 이면에 감춰진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현상은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죠.

 

예를 들어, 지구가 온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비롯한 여러 별, 행성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은 수천 년 동안 거부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의 작은 한 점에 선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 해는 매일같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기를 반복해 왔으니까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처럼 현상이 본질을 가리는 일은 쉴 새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크고 중요한 일부터, 일상을 채우는 사소한 일들까지…

 

광고성 기사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언론 보도 중에도 기업의 마케팅 의도나 정치적 입장이 숨어들어 있고요.




클림트의 <프리차 폰 리들러>, <키스>. 모두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만날 수 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다시 만난 클림트.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높은 가치를 평가 받는 그의 대표작 <키스>도 여기 전시돼 있다.



온갖 ‘지라시’와 가짜 뉴스들, 속보 경쟁으로 인한 설익은 정보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잘못된 판단으로 이끄는 걸 넘어 다른 누군가에게 무작정 달려들어, 헐뜯고 손가락질하게 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로 보였던 내용이 얼마 가지 않아 오보나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근거 없이 남을 비난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니, ‘뭣이 중헌 지’도 모른 채 온갖 중요하지 않은 것들과 오류, 거짓으로 가득할 지 모르는 눈 앞의 현상에만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현상이 모두 그릇되거나 헛된 건 아닙니다. 현상이 본질을 더 두드러지게, 풍성하게 하기도 하죠.

 

중요한 건, 본질과 현상을 구분해서 볼 줄 알고 본질적 핵심을 파악한 위에서 현상을 볼 줄 아는 힘입니다.

 

본바탕을 먼저 탄탄하게 다지면 거기다 살을 붙여도 핵심을 가리거나 횡설수설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과거 대문호나 철학자들 중에는 단 한 단어를 수백 쪽의 글로 풀어나가고, 그걸 또 원래의 한 단어로 다시 줄여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수없이 반복, 연습한 이들도 있다고 해요.

 

예컨대 ‘사랑’이라는 한 단어주제, 핵심 개념, 키워드에서 시작해 머릿속에 이야기를 구상하고 이를 수백 쪽 분량의 글로 쓴 다음, 거꾸로 그 글을 다시 한 페이지, 한 문단, 한 문장으로 줄이고, 줄여 마침내 ‘사랑’이라는 단 한 단어로까지 다시 돌아오는 거지요.

 

이건 나중에 따로 소개할 ‘추상화抽象化’ 과정과도 관련이 있는데요, 하나의 중심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긴 이야기로 늘릴 줄도 알고 방대한 분량에서 핵심만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해 낼 수 있는, 마치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 방법입니다.

 


 

“5분짜리 얘깃거리로 종일을 떠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말할 시간이 5분밖에 안 주어진다면 요약을 위해 하루를 꼬박 준비해야 할 것이다.”


-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영국 총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빈 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난 클림트의 <벌거벗은 진실>(Nuda Veritas, 1899, 유화, 252 X 55.2cm, 빈 자연사 박물관)




아이들이 본질을 가리는 현상에 유혹되지 않고 수많은 정보 중에서도 옥석을 가리는 혜안을 갖도록 하려면 어려서부터 진득하니, 인내심 있게 본질을 꿰뚫어보는 훈련을 통해 정작 ‘뭣이 중헌지’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끔 도와줘야 합니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전체 구조를 한눈에 조망하고, 그 속에서 본질을 파악하는 힘과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 현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힘,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겐 모두 필요합니다.

 

숲과 나무, 모두를 봐야 하는 것처럼 전체적인 구조와 세부적인 디테일을 모두 잡는 것, 본질과 현상을 균형 있게 아우르는 것.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태도와 관찰력, 집중력, 논리력과 같은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요약 능력을 위해서는 기사는 한 줄 헤드라인과 중제목 등으로 핵심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는 ‘어린이 신문’을 활용해 봄직 합니다.

 

본질과 현상을 아우르는 데는 의도적인 위치 이동, 시선 이동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탁자 위에 놓인 동전은 위에서 바라보면 동그란 원 모양이지만 눈높이를 낮춰 내려가면 점점 길쭉한 타원형, 결국은 선의 형태가 되죠.

 

대상을 일면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살펴 보고 전체 그림으로서 파악하려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에서 요모조모 뜯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이미지 출처: 2019년 11월 11일 jtbc 보도 화면 캡쳐

‘첼로 신동’에서 지휘자로 거듭난 장한나. ‘현미경’과 ‘망원경’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그는 “훌륭한 첼로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첼로만 죽도록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첼로에서 조금 떨어져 ‘보통의 삶’을 살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해 준 한 스승의 조언 덕에 지휘자로 변신할 계기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너무 한 영역에만 갇히기보다 망원경을 통해서도 볼 기회를 찾듯, 때로는 늘 하던 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뒤에 숨어 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으라.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라!”


-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 화가

 

 


오스트리아의 ‘빈 자연사 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 Vienna’에서. 스핑크스 조각상(왼쪽), <아담과 이브>(가운데)



갈아 마시는 오렌지.




 

 

본능과 통찰… 그리고 직관


 

“왠지 이쪽일 것 같아.”

“왜? 어떻게 알아?”

“어… 그냥~ 느낌이 그래!”

 

 

오스트리아 일정(잘츠부르크-빈)을 마치고 막 도착한 체코 프라하.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으려 열심히 구글 지도를 들여다보는 아빠를 향해 민 군이 말합니다.

 

대체로 저는 ‘감’에 의존하지 않는 편입니다. 보다 확실한 근거가 제시돼야 믿고, 따르고, 움직이는 쪽이죠.

 

그냥 느낌대로, 감으로 결정하거나 손바닥에 침을 튀겨 운에 맡긴다거나 하는 일은 저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스스로의 그런 성향이 그리 만족스럽단 얘기는 아닙니다.


 

프라하 도심의 공사 현장. 어른도 ‘아이처럼’ 안을 보고싶게 호기심을 일으키는 가림막.

 

 

흔히 인공지능이 따라잡기 힘든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으로 타고난 동물적 본능instinct, 예술가적 영감inspiration, 대상을 한눈에 꿰뚫어 보는 통찰insight 같은 것들을 꼽습니다. 거기에, 또 ‘직관intuition이란 것도 있어요.

 

흥미롭게도 이 모두가 영어 단어로 보면 ‘in-‘으로 시작합니다. 흔히 접두사 in-은 안쪽, 즉 내면內面을 의미하지요.

 

그 중에서도 ‘직관直觀·intuition’과 ‘통찰洞察·insight’ 이 두 단어는 별다른 구분 없이 두루뭉술 쓰이는 때도 있는데요. 때로는 ‘직관적인 통찰’ 이런 식으로 버무려지기도 하고요.

 

뭔가 뾰족하게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대상의 핵심, 본질을 깊이 꿰뚫어 보는 이에게 우리는 ‘직관과 통찰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직관과 통찰은 다른 말이에요.




‘프라하 성Prague Castle’ 위에서 내려다본 도심. 체코의 상징 프라하 성은 중세 시대 870년부터 지어져 ‘세계에서 가장 큰 옛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직관은 ‘감각과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

 

통찰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보는 것’.

 

사전적 정의에서 둘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당연히 작동 방식도 다릅니다.

 

 

통찰은 대상을 날카롭게 살펴봄으로써 얻은 정보와 지식을 논리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이뤄집니다.

 

통찰을 위해선 이미 경험된 정보가 있어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와 추론이라는 사유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즉, 경험과 사고의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얻을 수 있는 깨달음입니다.

 

 

반면, 직관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더욱 본능적인 인식 능력에 가깝습니다.

 

인식론에선 직관을 ‘다른 생각의 작용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정신 능력’으로 정의합니다. 논리와 추론의 과정이 필요 없어요.



쉽게 말해, 통찰이 관찰하고, 사유思惟해서 꿰뚫어 보는 거라면, 직관은 ‘딱 보면’ 그냥 ‘느낌’으로 아는 겁니다.

 

인공지능 로봇이 지배할 지도 모르는 미래, 좌뇌의 영역이라는 이성과 합리가 아니라 우뇌가 관장하는 본능, 영감, 통찰, 직관 이런 것들, 그 중에서도 ‘직관’이 부쩍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프라하 성을 지키는 근위병.(왼쪽) 체코의 명물 ‘마리오네트Marionette’ 꼭두각시 인형을 파는 기념품 가게.(오른쪽)

                                                      

프라하 성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아인슈타인은 인간 능력의 최상위에 있는 것을 ‘직관’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능력 중 정말 유일하게 가치 있는 건 직관 뿐”이라는 거죠.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도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우정과 사랑, 존경과 질서 등의 가치와 감정이 인간을 동물에서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한 본질적 이유다,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직관과 관계돼 있다”고 설명합니다.


- 윤석만, 『인간혁명의 시대』(가디언, 2018)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걱정과 기대가 섞여 있습니다.

 

사실, 걱정의 마음이 훨씬 강하죠.

 

그 밑바닥에는 미지의 대상에 대한 불안, 다가올 미래가 통제불능일 수 있다는 우려가 놓여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지 모른다는 걱정, 나아가 인류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는 거겠죠.

 

하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우리의 걱정을 덜고 안심시켜 주려는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AI는 인간의 직관만큼은 갖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논리와 추론 능력을 갖출 순 있어도 결국 인간과 같은 직관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다는 것.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을 마지막 보루가 바로 직관이라는 말입니다.




햇살 가득한 프라하 ‘구시가 광장Prague Old Town Square’에서. 매시 정각이면 인형들이 나와 움직이는 유명한 볼거리 ‘천문 시계탑’은 아쉽게도 공사 중이다.




직관과 느낌, 감정은

합리적 의사결정의 방해물이 아니다!

 

인간은 이성의 힘으로 합리적, 논리적 추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의식적 사고나 추론 없이도 중요한 결정을 이뤄내곤 합니다.

 

사실, 인간은 이성적 존재, 합리적 존재라는 말과는 달리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훨씬 많죠.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또 사랑에 빠지고, 무언가를 할지 말지, 살지 말지 결정할 때에도 우리는 무의식 중에 직관에 더 많이 의지합니다.

 

책 『생각이 직관에 묻다』(추수밭, 2008)의 저자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의 게르트 기거렌처 소장은 인간의 뇌가 오랜 진화를 거치며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개발한 ‘비밀 병기’가 바로 이 직관이라고 말합니다.

 

갑작스런 생명의 위험이 닥치면 일단 본능적으로 피하고 봐야지 논리적으로 따지고 뭐하고 할 시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라고 논리적 분석을 바탕으로 한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죠. 각종 변수로 통제불가능한 환경이 더 커져가고 있으니까요.

 

 

프라하에 있는 몇 개의 ‘코히노르Koh-I-Noor’ 연필 기념품점 중 하나. 근대 들어 공장에서 제조되는 연필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다.

                                                  


이런 직관적 능력은 인공지능은 갖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대비할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습니다.

 

인공지능은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눈깜짝할 사이에 처리합니다. 하지만 분석 없이도, ‘척 보면 아는’ 직관은 갖기 힘들 거라는 것.

 

하다 못해 어떤 대상에 대해 ‘모른다’고 할 때조차 인간은 직관에 따라 ‘난 이거 몰라’ 곧바로 결론지을 수 있지만 AI는 모든 데이터를 검토한 다음에야 그 결론에 도달한다는 거죠.

 


책 『인간혁명의 시대』(윤석만, 가디언, 2018)의 한 구절입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고 말할 겁니다. 답을 외치는데 불과 1초도 걸리지 않죠. 다음 질문으로 ‘왜 모르냐’고 질문하면, 역시 대다수는 곧바로 ‘모르니까 모른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경험적인 정보를 통해 논리적으로 추론해서 얻은 결론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즉각적으로 얻은 답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AI는 다릅니다. AI는 먼저 자기 내부의 모든 데이터를 검색하겠죠. 그리고 그 안에 해당 정보가 들어 있으면 쉽게 대답할 겁니다. 반대로 정보가 없다면, 모든 데이터를 검색해 ‘포르투갈에서 네 번째 큰 도시’라는 정보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갖고 있는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답변 시간도 길어질 테고요.”

  


 

‘존 레논 벽John Lennon Wall’(왼쪽). 근처에 있는 ‘존 레논 펍’.

‘존 레논 벽John Lennon Wall’. 주체코 몰타 대사관의 평범한 외벽이던 이 곳은 1980년 비운의 암살을 당한 비틀즈의 존 레논을 추모하고자 사람들이 그래피티를 그려 넣은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역적, 세계적 이슈를 표현해 넣는 명소가 됐다.






직관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뇌과학자 등 전문가들이 말하는 방법 중 눈 여겨 볼 대목은 바로 우뇌의 역할과 관계가 큽니다.

 

직관적, 감성적 능력을 관장하는 게 뇌의 오른쪽이기 때문에 우뇌를 발달시킴으로써 직관력을 키울 수 있다는 거죠.

 

‘감수성’을 풍부하게 해 줄 다양한 예능적 활동이 직관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또,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일을 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무작정 버스에 올라타 노선을 한 바퀴 돌며 차창 바깥의 풍경,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늘 반복되는 일상만 좇아서는 좀처럼 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전진과 도약, 무지의 정복은 이성이 아니라 상상력과 직관이 하는 일이다.”


- 샤를 니콜(Charles Nicolle, 1866~1936), 프랑스 미생물학자




그렇다고 우뇌 훈련에만 치중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좌뇌가 관장하는 분석적, 논리적 지식도 쌓아 둬야 합니다.

 

워렌 버핏,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의 독서법처럼 본인이 주력하고 있는 특정 전문 분야에 대한 지식 외에도 다른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관심을 두는 게 좋습니다.

 

또한,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해 보고, 성공도 해 보는 것, 그런 경험들이 쌓여 논리적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감과 직관의 힘을 기를 수 있는 밑바탕이 됩니다.

 

 


이렇게 분석적 사고직관적 사고의 서로 다른 면을 꼭 상호 배타적인 것으로만 보고, 어느 한쪽이 낫다고 하기 보다는 둘을 보완적 관계로 보고 양쪽을 모두 활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성과 합리, 논리적, 분석적 접근이 그동안 워낙 과도하게 강조돼 온 터라 지금은 직관, 통찰에 더 많은 방점을 찍고 볼 때긴 하겠지만요.

 



카를 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성.

 

멀리 프라하 성이 보이는 ‘카를 교’ 위에서.(왼쪽) 프라하에서 결혼 10주년을 맞은 엄마, 아빠를 위해 민 군이 즉석으로 그려 준 그림.

‘카를 교Charles Bridge’는 체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는 카를 4세(체코어로는 Karel IV, 독일어로는 Karl IV, 프랑스어로는 Charles IV, 1316~1378)의 이름을 딴 돌로 된 다리다. 원래 목조 다리가 있던 것을 카를 4세가 아름다운 고딕 풍의 석조 다리로 바꿔 놓았다. ‘프라하의 젖줄’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20미터, 폭 10미터의 이 다리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저 언덕 위로 올려다 보이는 프라하 성도 있지만 다리 양쪽 난간에 세워진 30명의 보헤미아 성인 동상들을 또 빠트릴 수 없다. 이 다리는 홀수로 된 희한한 수열의 비밀로도 유명하다. ‘135797531’. 바로 이 다리의 첫돌이 놓인 날과 시간, 1357년 7월 9일 5시 31분을 의미한다.

 

카를 교 너머로 저 멀리 프라하 성이 보이는 강 옆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 이 날 마침 ‘결혼 10주년’을 맞은 엄마, 아빠를 위한 선물로 민 군이 즉석에서 펜과 엽서를 활용해 그림을 그려 줬다. ‘가만… 그런데, 내 이마에 주름이 저렇게 많이 졌던가…? 뭐, 그래도 엄마보다 얼굴을 작게 그려 줬다는 데 만족.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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