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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루틴이 필요한 이유

똑같이 24시간이거든요.

웬만하면 브런치 글은 나이 들어 보이지 않게 쓰려 노력합니다만,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티를 내야 할 때가 생깁니다. 첫 번째는 몸 아픈 이야기할 때입니다. 20대 때는 별로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프고 안 아프고의 차이 아세요? 큰 병이나 상처야 당연한 겁니다만, 의외로 잔병에서 차이가 나는데요.

20대 때는 뭘 언제 먹든 잘 체하지도 않았습니다. 술병도 잘 안 났고 다음날 숙취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0대가 되니 조금씩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집니다.

40대 중반을 향해 가는 요즘에는 농담이 아니라 알약 먹고도 종종 체합니다. 안 아프려고 먹는 게 약인데 이걸로 체해서 누워있으려니 현타 한가득입니다.

건강에 이어 또 하나 티를 안 낼 수가 없게 되는 부분이 뭐냐면, 바로 시간에 대한 압박입니다.

나이 들면 들수록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요. 물론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저만 이런 거면 모르겠으나.. 저는 나이 들수록 더 여유가 없어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아서가 아니라(물론 그렇게 해석하고 싶지만)

전선(戰線)이 넓어집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20대 때는 인생의 목표가 어찌 보면 취업이었습니다.

일단 대학 입학한 뒤 학점에 멘털이 털리고 군대를 갔는데요. 군대에서도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나 고민하다 보면 결국 취업준비로 귀결되더군요. 제대하고 나서는 말할 것도 없이 취업이 지상과제가 됩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명확했습니다만, 제가 취업할 당시인 2005년은 요즘처럼 창업이 활성화되어 있진 않았습니다. 또 당장 먹고살 길을 걱정해야 했던 터라 취업 말고 다른 길은 생각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암튼 취업을 하고 나니 겨우 한숨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중간보스 하나 넘긴 거더군요.

수능(최약체 중간보스였는데 못 이김) - 취업(좀 쎈놈인데 겨우이김) 에 이어서 결혼(혼자 잘한다고 되는 거 아님) , 집장만(대보스. 못 이길 것 같음) 등등 끝판왕들이 남아있었습니다. 수능이나 취업에 비하면 집장만의 난이도는 비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암튼 30대 들어서는 숨 가쁘게 재테크며 또 회사 일이며 해 나갑니다. 20대 때 집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경 쓸 게 많아집니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안 할 수가 없으니, 하루 종일 읽을 관련 뉴스도 많습니다. 웹사이트 보기도 바빴는데 유튜브에도 정보들이 넘쳐납니다. 거기에 회사는 갈수록 많은 일을 시키죠.

가족이 늘어나며 챙길일도 늘어가고.. 난리입니다.


진짜 전쟁이면 화력을 한데 모아서 일점돌파라도 해서 적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뭐 이런 게 가능하겠습니다만. 이 전쟁은 여러 전투를 동시에 이겨야 합니다. 하나만 잘해선 안됩니다. 이러니 바빠지는 거죠.


40대쯤 되면 안정적으로 자리도 잡고 취업하느라 못했던 게임도 실컷 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요... (과거형)

게임은 무슨 게임입니까. 출퇴근 지하철에서 남이 게임하는 거 녹화해놓은 유튜브를 2배속으로 보는 게 다입니다. 아 눈가가 촉촉해지네요.


이런 상황 하에서 최근 들어 점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뭘이리 바쁘게 사나. 다 내려놓고 '에헤라디야'로 갈까 (이것도 마냥 부정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마음이 편한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라서요)


그게 아니라 진짜로 전쟁에 이기고 싶다면,

삶을 '루틴화'해야겠다는 겁니다. 다방면에서 일어나는 전투에서 이기려면요.

신경 쓸게 많을 때 이를 해소하려면, 단위 시간당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제 능력이 더 뛰어나 지거나

시간을 많이 확보해서 일처리를 많이 하는 두 가지 옵션밖에 없더라고요.


전자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제가 이게 되는 놈이었으면 이런 고민을 안 하고 있겠죠. 후자를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을 단순화, 루틴화 해서 신경 쓸 거리를 최소한으로 하고, 그래서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그 시간을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스티브 잡스가 이세이 미야케의 터틀넥을 100벌 넘게 샀다거나, 마크 저커버그가 맨날 똑같은 티만 입는 이유가 다른데 신경 쓸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그저 괴짜들의 유별난 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게 맞습니다. 안 해도 될 걱정, 안 해도 될 선택 등에 빼앗기는 시간이 정말 많습니다. 비단 옷만이 아닙니다. 하루가 지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쭉 돌이켜 보면 눈에 보입니다. 아침에 했던 행위가 그날 하루나 삶 전체에 어떤 의미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거의 없거든요.

하다못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브런치 글쓰기는 '글'이라도 남는데, 아침에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기사에서 본 아무개 텔런트의 만혼 걱정은 제게 남는 게 없습니다. 밥 먹을 때 잠깐 화젯거리로나 쓰일는지.. 그리고 모 텔런트가 저의 이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줄 리도 없고.. 그냥 까먹는(잊어버리는) 글, 까먹는(버리는) 시간일 뿐입니다.


자투리 시간을 효과적으로 모아나가려면 결국 삶의 루틴이 필요해집니다. 정해진 시간에 변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시간을 쓰는 겁니다. 출근은 몇 시에 항상 어디서 어떻게, 재택 하는 날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이후는 어떻게 등등을 말이죠. 초등학생의 방학생활 표를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최소한의 에너지로 처리하는 방법을 만들어두자는 거죠.


이렇게 절약한 하루의 에너지를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게 결국 하루하루를 알차게 쓰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뭐라도 아는 듯 적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건비를 들여서 무언가 일을 맡기는 거죠. 생산성과 시간의 등가교환이 매일 일어납니다. 세탁대행, 청소대행, 세차대행 등등의 서비스가 그래서 성업 중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미라클 모닝을 외치며 일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의지가 그 정도는 못되어서 남들보다 더 뭔가를 하진 못합니다. 저는 (+)를 하기보다 (-)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실시간 TV는 아예 안 봅니다. 연예뉴스, 쓰레기 기사들 안 읽습니다. 골프 안치고, 술자리도 가급적 줄입니다.

이런 식으로 (-)를 없애면 결국 남는 시간이 생깁니다. 이때 글을 쓰거나 하고 싶은 생산적인 일을 합니다.


브런치를 본격적으로 쓴 게 한 4년 전부터이니 그때부터 조금씩 저도 삶의 루틴 만들기를 해 나갔습니다. 이제 좀 되는 거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절대로 안됩니다. 자신과의 싸움이거든요. 대신 위력도 절실히 느낍니다. 좀 더 어릴 때 왜 못했을까 아쉽습니다.

한 번쯤 시도해 보시길 강력히 권합니다. 오랫동안 하면 뭔가 달라지는 걸 느끼실 겁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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