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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기업 취업기_1

실화입니다.

글 쓰는데 재미가 붙었습니다. 제가 쓴 글에 공감해 주시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하고, 제 글을 가져가서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해 주는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그동안 쓴 글을 쭉 돌아보며, 저 스스로 참 재밌다고 느끼는 글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대부분의 글이 참 잘 쓰고 내용도 좋았지만 (자뻑.. 죄송합니다) 저 스스로 가장 재밌다고 느꼈던 글은 '그냥 제 이야기'였습니다.


실제로 겪은 일이 가지는 파괴력은 상당합니다. 변변찮은 월급쟁이인 제가 가장 독자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회 될 때마다 제 경험을 풀어보려 합니다. 먼저 시작하려는 글은 '제 취업기'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것은 없지만, 실화가 가지는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14년 전에 지방 국립대를 나왔습니다. 어학연수는 커녕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학교 다니기도 급급했습니다. 다행히 매 학기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녀서 생활비만 벌면 되었습니다만, 힘든 시절이었죠. 대학생 때를 돌이켜보면 가장 아쉬운 건 동아리 후배들 술 한번 못 사준 것입니다. 운동복에 낡은 자전거, 족구 정도가 대학생활 추억의 전부네요. 암울했습니다만 취업을 하면 삶이 좀 나아질 거라 생각하며 살았더랬죠.



호기롭게도 취준생 주제에 저는 회사에 대한 기준이 명확했습니다.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 봐도 웃긴데요. 이렇게 된 데는 제 얼리어답터 기질이 컸습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당연하지만 예전 PDA폰 시절에는 뚱뚱하고 큰 폰을 들고 다니면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04년 출시된 LG의 PDA폰. 카메라 110만 화소, 액정 2.8인치라는 놀라운 슈퍼스펙을 자랑했던 명기입니다.


효리폰, 권상우 폰, 문근영 폰 등등이 유행하던 시절이었죠. 장학금 받았다고 친척이 주신 100만 원으로 LG의 PDA폰 SC8000을 사서 너무 재밌게 쓰고 있던 터라, 저는 이것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준이,


1) PDA폰을 만드는 회사나, 통신사

2) ERP 관련 회사 (회계+전산)

3) 1,2가 안되면 회계 쪽 일을 할 수 있는 회사 (취업 후 회계사 공부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회사)


이렇게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것 같은데, 대부분의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8월 말까지 토익점수를 만들어 두고 9월부터 공채 일정에 따라 자소서 기계가 됩니다. 저도 위 1,2,3의 회사를 위해 자소서를 몇 군데 썼고 운 좋게도 9월 초에 바로 어느 중견기업에 합격했습니다. 현대자동차의 1차 벤더였던 그곳은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탄탄하고 적어도 현대차가 망하기 전에는 안 망할 것 같았습니다.

결정적으로 마음에 든 점은 회계팀으로 입사했는데 정원이 3명이고 매월 업무가 딱딱 정해진 루틴 한 것이었습니다. 근무지는 지방이긴 하지만 독하게 회사에서 공부하면 회계사도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중소기업 치고는 2005년경 3,500만 원을 초봉으로 주었으니 조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공장으로 출근해서 공짜로 주는 밥 세끼 다 먹으며 하루 종일 일과 공부만 하다 자취방에 와서 자는 생활을 하면 되었죠. 공장 근로자들은 식사가 큰 낙이기 때문에, 웬만한 공장 있는 근무지는 식사가 다 잘 나왔습니다

그냥 눌러앉아도 되었겠지만, 3번 조건을 확보했으니 1번과 2번을 노려보기로 했습니다. 9월 초에 취업이 되어 버린 통에 마음이 많이 느슨해졌지만 기왕이면 하고 싶었던 일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취업이 된 탓에 급히 내려오느라 자취방에는 옷 몇 가지와 집에서 가져간 중고 노트북이 전부였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캔맥주를 사들고 가서 대형 통신사 K사의 원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급히 내려가서 인터넷도 되지 않는 환경이라 2G PDA폰으로 테더링을 해서 인터넷을 했었죠.


그때 K사의 공채는 두 가지 방식 중 택 1 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전형과 지역전형인데요. 일반전형은 바로 서울과 본사에서 일할 수 있었고 지역전형은 지역에서 몇 년을 근무해야 했습니다. 대신 지역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을 우대해 주었습니다. 그날 캔맥주를 홀짝거리며 원서를 쓴 탓에 저는 이걸 못 보고 원서를 일반전형으로 써 버립니다. 지역전형으로 했다면 저처럼 지거국(지방 거점 국립대) 출신은 훨씬 쉬웠을지도 모르는데, 여기서 꽤 큰 삶의 분기점이 생겼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쓰겠습니다.


해외 어학연수도, 심지어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고 봉사활동이나 공모전도 해보지 못하고 먹고살기 바빴던 저는 지원서에도 쓸 콘텐츠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학생 때 돈 벌었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알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뭔가 구구절절했던 기억이 납니다.


입사지원서를 업로드하고 나서 까맣게 잊어버리고 현 직장 OJT에 한창이던 어느 날, 서류합격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 회사는 무슨 생각으로 날 통과시킨 건가.. 사람 구하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것인가.. 희한하다 여기며 면접을 준비하려 했습니다만, 지방인 데다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논술이며 면접 준비를 할 수가 없더군요. 다음 카페 취업뽀개기 등에서 합격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스터디하느라 바쁜 것을 보며 속만 타 들어갔습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면접날이 찾아왔습니다. 회사에는 졸업논문을 내러 학교에 가야 한다고 휴가를 내고 길을 떠났습니다.


K사 본사는 웅장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산속 공장에 있다가 나와서 보니 이건 뭐 시골쥐가 따로 없더군요. 면접장까지 찾아가면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막 K사를 다니는 사람들이 위대해 보이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이런 데서 일을 하나 궁금했습니다. 얼굴에 나 시골쥐요..라고 써 붙인 채로 면접장인 강당에 들어갔습니다.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들도 아니고, 똑같이 옷을 입은 남녀 수백 명이 강당을 채운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남녀 구분 없이 짙은색 상하의 정장, 밝은 색 와이셔츠. CTRL C, V를 연타하고 싶은 그런 느낌. 사람이 많아 놀라는 제게 면접 진행하는 분이 넌지시 말해줍니다. "이건 오전팀이고, 오후에 또 있고, 내일도 있어요~"


회사의 획일적인 모습은 어쩌면 여기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릅니다.


대충 경쟁률을 계산해보니 당장 떨어져도 크게 부끄럽지 않은 숫자여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제가 여기까지 온 게 어디냐 싶은데 면접비도 5만 원이나 주고 점심도 준다고 하니 감사하기까지 합니다. 거기다 대기실의 커피는 모두 스타벅스입니다. 안되더라도 하루 잘 구경하다 가자..라는 생각으로 긴장을 풀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한 시간 동안 시험지를 나눠주고 출제되는 주제에 대해 논술 고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생생히 생각나는 주제는 바로, "외모지상주의는 계속될 것인가"였습니다. 14년 전 일을 잘 기억하는 이유는 이 주제가 이후의 조별 토론에서 그대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논술고사 때는 '이 주제로 토론도 한다'는 사실은 모른 채, 저는 외모지상주의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을 구구절절이 써 올렸습니다. 여담이지만 그때 예상이 맞았던 것인지 10년 넘게 지나는 동안 이 사회는 외모에 더 집착하게 된 듯합니다 (-_-;)


이어진 조별 토론에서는 3:3으로 나눠 외모지상주의 긍정파와 부정파로 토론을 했습니다. 저는 진행자 역할도 자원해서 맡았습니다. 진행자는 잘하면 돋보이지만 매끄럽지 못하면 점수를 더 잃기 십상입니다. 거기에 진행에 신경 쓰다 보면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진행자를 자원한 것은 순간적으로 '이 주제는 긍정도, 부정도 모두 가능한 정답이 없는 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외모가 경쟁력이 되는 것은 엄연한 현실입니다. 외모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소요되고 사람들이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주장을 해도 결론이 명확히 나긴 어렵습니다. 때문에 결정적인 한 칼을 내밀 수 없다면 매끄러운 진행이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엄격한 시간제한이 있었으니 명확한 결론은 어느 조도 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제 예상대로 논쟁은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것 외에 결론 없이 끝났습니다.


첫날 이걸로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하이라이트가 있었으니 바로 3:1 압박면접입니다. 요즘은 덜한 것 같지만 그때는 압박면접이라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공격적인 분위기와 무례하다 싶은 질문들로 면접자의 멘털을 흔드는 것이죠. 그런 상황에서 대처를 보겠다는 것인데 취지는 이해하나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긴장이 좀 되었습니다.


제 심정이 잘 표현된 그림 (출처:https://odeye.tistory.com/133)



논술과 조별 면접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나도?'라는 희망을 품고 면접실로 들어갔습니다. 표정에 '엄근진'을 장착한 최소 부장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저를 반겼습니다.

이 아저씨들과 50분을 대화하라니, 면접비 5만 원은 너무 적은 것이었습니다.. 서류를 굳은 표정으로 보시던 면접관들은 더 굳은 표정으로 저를 보며 바로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이력서를 보니 그냥 학교만 열심히 다닌 것 아니냐

상경계열이면 금융자격증도 많이들 따던데 뭐했나

(겨우) 이 점수 나온 토익 외에 다른 외국어 자격은 없나

우리가 왜 당신을 뽑아야 하나. 객관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많이 왔다. 설명해 보라

지방에서 학교 나오면 훨씬 더 특출 난 무언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기초적인 스펙을 더 쌓았어야 할 것 같다

학점 때문에 서류가 통과된 것 같은데 학점은 기초다


쏟아지는 공격에 대해 최선을 다해 방어해 보았습니다만, 타노스에게 두들겨 맞는 아이언맨 마냥 제 멘털 갑옷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답변했습니다. 전액 장학금 받고 생활비 버느라 힘들었지만 19세 이후로 부모님께 돈을 받은 게 없다, 문과임에도 IT를 좋아해서 대학의 대규모 전산실을 관리하고 홈페이지 제작사업도 했다 등등.. 그러나 타노스는, 아니 면접관들은 강했습니다.


나노 갑옷도 다 떨어져 나가고 남은 건 크흑 (출처: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말이 아니라 바로 '침묵'이었습니다. 50분의 면접 시간 중 25분가량이 지나자 면접관들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너에게 더 궁금한 것이 없다'



그 순간 제 마음속의 무언가가 끊어졌습니다.

저는 활짝 웃으면서 면접관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를 안 뽑아 주셔도 됩니다."


"..?"


 "대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좀 하고 가도 될까요?"






- 2부에서 계속

  (라이킷, 구독, 댓글이 많아진다면 2부가 더 빨리 올라갈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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