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의 대기업 취업기_2

덕업 일치의 중요성

<1부에서 연결됩니다. 링크>




"저를 안 뽑아 주셔도 됩니다."


"..?"


 "대신 저도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좀 하고 가도 될까요?"


몇 초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면접관 3분은 황당하다는 듯 서로 마주 보더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담담히 말했습니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살면서 이처럼 높은 K사 고위직 분들을 만날 일이 또 있을지 모르겠다.

K사 서비스를 좋아하고 많이 사용하지만 이 회사는 이런 식으로는 영원히 2등일 것이다.

절 뽑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제가 드리는 말을 잘 듣고 유관부서에 전달해서 개선해 주면 좋겠다.

나중에 바뀐 걸 보며 멀리서나마 뿌듯하게 여기겠다.


남은 25분 동안 저는 K사의 유선 인터넷 모뎀 장비의 문제점을 시작으로, 유선과 무선의 과금체계와 납부방법의 문제점, 동일 회사의 상품임에도 Single Sign On 이 안되던 이슈, 무선인터넷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편법으로 이용하는 방법, 월드패스카드라는 선불상품권을 악용하는 방법, 한창 시작하고 있던 스마트 디바이스 라인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담담히 짚어주었습니다.


특히 K사가 경쟁사에 비해 앞서있던 WIFI 서비스인 네스팟(Nespot)에 대해서는 강한 질책을 했습니다. 

기기인증방식이나 전화국에서 고객 상담 방식, MAC 변형을 통한 우회루트의 남용 등등 당장 고쳐야 할 문제가 많은데 손을 놓고 있는 점이 그랬고 단말과 번들링 방식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실제 유저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니 어떻게 개선해 나가면 좋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충고해 주었습니다.


아쉬운 게 있으면 주눅이 들고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면접은 절대 못 붙는다'라는 판단이 선 취준생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그냥 고객이니까요. (그리고 이판사판)

제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진심을 담아, 다소 격렬하게 짚어주었습니다.


중간중간 의견을 주던 면접관들의 얼굴은 점차 붉어졌습니다. 실은 그런 게 아니라며 반박을 하시길래 숫자를 들이대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저는 K사의 B2C 서비스 전반에 대해서라면 어떤 논쟁도 자신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

.

다 제가 좋아서 써보고 연구한 것들이었으니까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가난한 고학생인데 얼리어답터였습니다. 학교 식당 2천 원짜리로 세끼를 해결하던 놈이 100만 원짜리 PDA를 샀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지금의 체감 가치로는 1억 원짜리 외제차를 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만큼 큰 지출이었습니다.


여러분도 1억짜리 외제차를 지금 구입한다면 정말 열심히 알아보고 공부하지 않을까요? 당시 PDA 폰이 너무 사고 싶었던 저는 해외 포럼부터 국내 모든 커뮤니티까지 2002년부터 외우다시피 드나들며 공부했습니다. 이게 그냥 하면 공부지만 좋아서 하면 놀이가 됩니다. 

시간 날 때마다 투데이즈 피피씨(todaysppc) 등 사이트를 눈팅하며 놀았습니다. 4년을 쭉 그랬으니 덕후의 반열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PDA폰을 가지고 놀다 보니 무선데이터 요금제에 대해서도 훤히 알게 되고 (그 당시에는 JUNE, MagicN 등 괴이한 이름과 비싼 요금제로 무선데이터를 사람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통신 요금을 어떻게든 줄이려 하다 보니 가정의 인터넷 요금제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전화국 창구를 밥 먹듯 드나들었습니다. 창구직원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너무 옛날이 되어 사람들 기억 속에 없지만, 당사 K사는 유선인터넷망을 기반으로 이미 와이파이망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경쟁사인 1위 S사는 그런 자산이 없다 보니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악행을 꽤나 오랫동안 했습니다. 바로 자사를 통해 출시되는 기기에서는 와이파이 모듈을 삭제하고 출시하는 것이죠. 당시 통신시장은 제조사보다 통신사가 훨씬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이런 게 가능했습니다.

JUNE 등의 무선인터넷은 호갱 고객을 양산해서 통신사 배를 불리는데 일조하고 있었던 터라, S사로서는 훨씬 더 빠른 데다가 무료인 와이파이가 보편화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면접 말미에 저는 상세히 이 부분을 짚으며 대응방안을 일러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얼마나 당돌하고 웃겨보였을지.


K사의 무선인터넷. 이 로고를 기억하신다면 아재입니다



폭풍 같은 25분이 지났습니다. 면접관들이나 저나 얼굴이 붉어져있는 상태. 감정도 격양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속이 후련했습니다. 깍듯하게 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저는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떨어진 것 같으니 공장 가서 열심히 회계공부하겠다고요. 어머니는 다시는 K사 상품을 쓰지 않겠다고 하셨고, 저는 그렇게까진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또 열심히 공장에서 OJT를 하고 있는데,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실무면접을 통과했으니 임원면접을 보러 오랍니다.


면접관과 욕설만 안 했지 엄청난 설전을 벌이고 온 마당에 합격이라니. 이건 뭔가 이상하다... 합격자를 랜덤으로 산출하는 것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시골 공장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면접을 하도 이상하게 봤으니 좀 더 물어보고 결정하겠다는 건가 보다'였습니다.


임원면접일이 되었습니다. 면접비는 또 5만 원입니다. 상경하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못한 PR을 할 기회가 있으면 잘하고 이미지 개선도 좀 해야지, 묻는 말에만 착하게 대답해야지.. 면접관과 싸운 기분처럼 찜찜한 게 없습니다. 반성하고 올라왔습니다.


임원면접은 임원 3분과 면접자 6명이 40분간 대화하게 됩니다. 모여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스미스 요원 복장입니다. 같은 조가 된 5명의 면면을 보니 다들 얼굴에 '똑똑/스마트/총명'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을 걱정하며 들어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명씩 자기소개를 시키는데 스펙과 경력이 엄청납니다. 일단 6명 중 4명이 S 대였습니다. 독일어로 자기소개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턴 경력들은 다들 어떻게 그렇게 글로벌 대기업에서 했으며 학생 때 한 활동들은 어찌나 다들 굉장한지.

듣고 있으니 마음이 또 편해집니다. 떨어져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 이 편안함이란 시몬스 저리 가라입니다.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한 후, 면접관들이 마음대로 특정인에게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째 진행되는 게 이상했습니다.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특히 S대 법대를 나와서 영화감독이 되고자 몇 년을 노력했다는 30대 초반의 어떤 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면접관들은 집요하게 왜 사법고시 준비를 안 했느냐, 영화업계에서 배운 게 무엇이냐, 입사한다면 어떻게 회사에 기여하고 싶으냐를 물었습니다. 그분을 필두로 다른 4명에게도 고루 질문이 돌아갑니다. 궁금한 게 많으셨나 봅니다. 그런데 왜 제게는 궁금한 게 없으셨던 건지 모르겠습니다.

40분의 면접시간 동안 다른 지원자 5명이 질문 소나기를 받는데, 제게는 발언 기회가 딱 2번 있었습니다. 처음의 '자기소개'와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입니다. 물론 6명 공통으로 주어진 항목이었습니다. 즉,


제게는 40분간 아무도, 어떤 것도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끝나고, 인사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이런 느낌이었달까요.. (출처:미상)


속으로 느낌이 왔습니다. 더불어 강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야.. 이 회사 진짜 너무하네. 이럴 거면 면접에 왜 부르나? 지역균형 면접 봤다는 숫자 채우기 같은 건가. 난 대체 뭐였던 거지라는 분노.


K사 본사 계단을 내려오며 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떨어진 것 같다고. 앞으로 K사 서비스 하나도 쓰지 말자고.


그로부터 얼마 뒤, 최종 합격 메일과 문자를 받았습니다. 기대가 1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놀랐습니다. 1차 면접 때는 싸웠고, 2차 면접 때는 공기와 같은 존재감을 뽐냈는데 합격 일리 가요. 한동안 전산오류를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있던 회사에 말도 못 했습니다.


신체검사를 받고 오리엔테이션을 가서야 오류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쯤 되면 비하인드 스토리가 너무 궁금해집니다. 당시에는 대체 왜 제가 뽑혔던 건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 건너 건너로 겨우 듣게 되었습니다.


1차 실무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저와 언성을 높였음에도 매우 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을요.

점수가 너무 높아서 임원면접 때는 임원들이 다른 사람에게 시간을 더 투자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속했던 조 6명 중 합격한 사람은 저와 다른 한 명이었습니다. S대 법대를 나와 질문을 많이 받았던 그분은 오리엔테이션 때 없었습니다. 그때의 면접은 결국 떨어뜨리기 전 확인 과정이었던 듯합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스릴 넘치기도 한 기억입니다.

그때 그분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나 그리고 지금의 나라면 그때의 날 과연 뽑을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그 흔한 K사 대비 서적 하나 안 보고 붙었습니다. 그냥 덕후였을 뿐인데요.


사실은 책값이 아까워서 못 산.. (출처:주간동아)


그 덕후는 입사하고 현장에서 2년간 영업을 하다가 그토록 원하던 신사업부서로 자리를 옮깁니다. 입사 전에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녔는데 입사 후에도 운 좋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덕후는 카드 체리피킹 마니아이기도 했습니다. 돈이 없다 보니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시간 날 때마다 카드 연구를 했습니다. 지금 카드회사를 다니는 것도 마냥 우연은 아닙니다.  세상에 없던 카드를 만들어보며 재미있게 지냅니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나름의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있지만, 현직자이다 보니 아마 이 이야기는 먼 훗날에야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회사님 충성 충성)


제가 제 모든 브런치에서 회사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빼놓지 않는 키워드는 "재미"입니다. 제가 쭉 그걸 찾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것을 하고 살고 싶습니다. 14년 전 덕심 가득했던 청년은 지금 중년의 덕후가 되어 과거를 회상해 봅니다. 59년 후 100세가 되어 눈을 감을 때도 재미있게 살았다고 유언을 남기고 가고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1화 나의 대기업 취업기_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