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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의 그랜(Grand)절을 배워보자 - 식당편

'라떼'지만 도움이 되실 거예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천리마마트 드라마, 다들 보셨나요? 저도 예전 네이버 웹툰 연재 때 정말 열심히 읽었더랬습니다. 정글고도 그렇고 천리마마트도 그렇고, 김규삼 작가의 그 허를 찌르는 유머는 늘 좋습니다.


천리마마트가 드라마화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궁금해했던 것이 있습니다. 빠야족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그랜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등등 오픈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죠.


그랜(Grand) 절은 극 중 주인공 문석구 점장이 마트 시찰 나온 국회의원을 상대로 보여주는 극한의 절(공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히는)입니다. 그깟 절이 뭐라고 하시겠지만 아래 사진을 보시면 그 어려움을 아실 겁니다.


출처:tvN 천리마마트 캡처


그랜절이란 게 실제로 있을 리는 만무합니다. 다만 저는 굉장히 신선하게 느꼈습니다. 아! 그냥 절의 더 높은 단계가 있구나! 역시 천외천(天外天)이란 존재하는구나! 오오 이거 뭔가 (x신 같지만) 멋진걸. 직장생활에서는 그랜절 같은 극한의 예법이 과연 없었던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살면서 보아온 무수히 많은 직장생활 고수들. 그분들은 각기 그랜절 한두 개씩은 품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보아온 직장생활 예법의 정석 몇 가지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첫 예시는 식당에서 입니다. 신입사원이라면 어릴 때부터 연마하시면 훗날 큰 일을 도모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보시면서 또 라떼가 홀스 타령이구나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써놓고 보니 엄청나게 꼰대처럼 보이는 것에 큰 우려가 됩니다. 하지만 단언합니다. 아래 있는 팁들은 배워두면 여러분의 인생에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결코 변하지 않거든요.




1. 윗사람과 식당에 갔을 때 - 수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식당에 갔을 때 휴지 깔고 수저 놓기, 컵에 물 따르기 정도는 다 합니다. 그런 정도는 그랜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회사생활 그랜절의 기본은 정말 기본과 디테일에 있습니다. 착석을 하고 몇 초 만에 휴지와 수저가 놓이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즉시 수저통과 물통을 자신 앞으로 가져오도록 합시다. 내가 수저도 놓고 컵에 물도 채우겠다는 제스처입니다.

쪼잔하게 이런 게 왜 1번이냐고 물으시겠지요. 눈을 감고 상상해 봅시다. 식당에 갔습니다. 자리에 앉고 메뉴를 고르며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다 봅니다. 윗사람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 막내 때 어떻게 했는지입니다. 자신이 해보며 귀찮음을 알기 때문에 눈여겨보게 됩니다. 메뉴를 주문하고 한참 후에야 생각난 듯 수저를 꺼내는 건 최악입니다. 잊었다고 보여도 문제이고, 느린 행동 자체도 문제입니다. 앞에 앉은 윗사람은 생각합니다. '이 친구는 내가 편한 건가?'

식당에 들어가면 착석 즉시 행동하세요. 눈치 보고 할 것 없이 즉시 하는 습관이 들면, 제 말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빠르게 이걸 실행하는 사람이 훨씬 더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하듯 보입니다.



2. 식당에서 식사하며 - 시선


여러분이 친구와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친구가 손목시계를 본다던가, 대화할 때 시선을 잘 안 마주칩니다. 여러분들도 느낍니다. '가봐야 하나? 재미가 없나?'라고요.

대면 예절에서 시선처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수의 모임이라면 좀 나으나 1대 1인 경우 절대로 상대방에게서 시선을 떼지 마세요. 가능한 웃는 얼굴로 눈을 응시하는 게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 제 윗분과 동행한 자리에서는 항상 핸드폰을 밥그릇 좌측에 둡니다. 요즘 나오는 폰들은 다들 AOD (Always On Display)가 되어서 시간이 표시됩니다. 밥 숟가락을 뜰 때와 반찬을 집을 때 외에는 계속 상대방을 보도록 합시다. 윗분을 모실 때는 다음 동선을 고려해야 하니 시간 확인은 해 가면서요.


화제가 떨어졌거나 머릿속이 멍해질 때 습관적으로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이때는 다른 데를 보지 말고 차라리 눈을 감고 있도록 하세요. 그 편이 훨씬 좋습니다.



3. 행동이 필요한 음식들에 대하여


이 파트의 내용은 그랜절의 경지까지 하려면 자택 수련이 필요합니다. 저도 경험이 부족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고 신입사원 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어머님께 등짝을 맞아가며 배우도록 합시다.


고등어나 갈치의 뼈를 발라내는 방법을 집에서 어머니께 소상히 전수받도록 합시다. 실전에서 할 때 젓가락을 새것으로 하는 센스는 필수입니다.

부대찌개, 김치찌개 등 찌개류를 먹을 때는 착석할 때부터 자리를 신경 씁니다. 막내면 무조건 가스버너 옆에 앉습니다. 버너 옆자리는 식사 때 가장 하석입니다. 눈치가 좀 있는 신입이라면 여기서 한발 더 나갑니다. 바로 환기구의 위치를 파악하고 연기를 마시게 되는 방향에 자기가 앉습니다. 이 정도까지 한다면 그랜절의 경지로 인정해 드립니다.

찌개를 먹을 때는 무조건 국자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괜히 국물도 건더기 위로 퍼 올리고 뭔가 하는 척합니다.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불 조절을 해 가며 가장 윗사람 그릇부터 퍼 드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용물을 골고루 잘 넣는 것입니다. 동태탕 같은 경우 동태 조각중 어느 놈이 실한가 등을 미리 잘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한발 더 나아가서 윗사람의 선호도 (부장님은 동태 대가리를 좋아하시지 등)를 암기하여 반영한다면 그랜절 인정.

소고기, 삼겹살 굽는 연습을 해 둡시다. 신입 때부터 부단한 노력을 해 두면 확실한 성과가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고기 굽기입니다. 보고서 못쓰는 건 용서해도 소고기 태우는 건 용서 못하는 윗분들, 저는 여럿 봤습니다. 이건 글로 배울 내용이 아닙니다. 평소에 고깃집을 많이 가서 부단히 수련합시다.


웃기게 썼지만, 연차가 있으신 분들은 꽤 공감하실 겁니다. 제가 아는 모 증권사 부장님은 마침 본가가 정육점을 하는 덕에 신입 때부터 '고기 잘 굽는 신입'으로 정평이 났다고 합니다. 지금도 실적이 좋아서가 아니라 고기를 잘 구워서 부장 되었다고 웃으십니다. 저는 처음에 겸손인 줄 알았는데 이분과 고깃집 한번 가 보고 거짓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고기의 질과 결, 힘줄 위치까지 반영하여 정교하게 구워내시는 것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숯의 질과 방향, 통풍까지 보시더군요. (...) 저도 한 고기 굽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분 앞에선 부끄러워졌습니다. 깊이 반성하며 고기 굽기의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4. 반찬이 떨어지는지 늘 신경 쓰며 먹는다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테이블에 반찬이 모자란 지 매의 눈으로 보고 있다가 모자라면 큰 소리로 '사장님~'을 외치도록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다들 합니다. 그 반찬 말고 다른 반찬이 얼마 안 남았다면 살짝 자기 밥그릇 위로 옮기던가 먹어버리고 같이 리필을 요청하도록 합시다. 사장님이 바쁘신 것 같으면 직접 그릇을 들고 가서 담아오는 것도 좋습니다. 이래야 신입 때는 좋은 소리 듣습니다.



5. 식사 후 계산의 순간


숨 막히는 식사가 끝나고 계산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윗분이 몸을 일으키시고 나가실 때 여러분이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습니다.

먼저 자리를 일어나며 놓고 오는 물건이 있는지 매의 눈으로 살피도록 합시다. 반주라도 하게 되면 목도리 등을 놓고 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어서, 계산서를 가지고 가시는지 봅니다. 만약 가지고 가신다면 모르겠으나 놓고 가신다면 조용히 들고 뒤따라 갑니다. 윗분이 계산서를 찾지 않으셨는데 가져다 내미는 것은 대단히 무례한 행동입니다. 들고 조용히 카운터까지 뒤따라 갑니다. 주인이 계산서를 찾는다면 그때 내밀고, 찾지 않고 계산이 진행되면 카운터 어딘가에 살포시 놓아두면 됩니다.



6. 감사의 인사


계산 전후, 밖으로 나오며 큰 소리로 잘 먹었다고 인사합시다. 제발! 좀 합시다.

윗사람도 그냥 밥 사주는 거 아닙니다. 살다 보면 후배 중에는 밥 사 주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친구들이 왕왕 보입니다. 얻어먹는 입장에서야 나중에 기억도 안 나겠지만 사주는 사람은 기억 오래갑니다. 이런 인사는 크게 한다고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습니다.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합시다.




다 써놓고 보니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젊은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뭐하는 짓이냐', '라테 홀스 또 등장이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제가 여기 적은 것은 에바.. 아니 오버라고 보일만 합니다. 네, 오버 맞습니다.

그러나 실행 여부의 격차는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저 개인의 선택이죠. 이렇게까지 해내는 친구들은 신입 때부터 애티튜드가 좋다는 평판을 가져갈 것입니다. '체질적으로 이런 거 난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격차를 인정하면 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위에 적은 것들을 요약하면 '노력이 수반되는 배려'라고 하겠습니다. 상대방이 최대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 욕할 것이 아닙니다. 배우도록 하세요.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라이킷, 구독자가 많이 붙으면 식당 편에 이어, 사무실 편, 회식 편, 야유회 편, 평가 시즌 편 등등을 쭉 연재토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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