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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접대' 에 대한 항변

안 해도 됩니다. 격차만 인정한다면.

저는 브런치 글을 많이 쓰지 않습니다. 다작을 하기보단, 각 주제에 대해 오랜 기간 생각하고 쓰는 편입니다. 어차피 읽을거리야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어느 누군가가 본인의 시간을 내서 제 글을 읽어준다면 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거니 그만큼의 가치는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시간에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데 신중해집니다.


글을 쓰다 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신이 아닌 터라 저도 제 글이 항상 옳다고 할 순 없으니까요. 몇 번 언급했지만 회사 내 성별에 대한 글을 쓸 때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와 비슷한 고민을, '직장생활의 그랜절을 배워보자' 글을 쓰면서 했습니다. 이 글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요. 그래도 썼습니다. 이게 현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상대로 브런치의 반응은 평범했습니다. 브런치는 최근 온라인에선 보기 힘들 정도청정구역입니다. 좀 더 날 것의 반응이 궁금했던 저는 유명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불특정 다수는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기 때문이죠.


아.. 사실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악플 러시가 이어지더군요. 휴일 새벽에 글을 올리고 약 두 시간 정도 지켜보다가 글을 삭제했습니다. 솔직히 키보드 배틀이라면 저도 자신이 있는 터라, 여기서 장판파를 펼쳐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 않은 건, 이겨도 별 소득이 없어서입니다. 제 가족이라면 모를까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할 에너지도 없었고요.


1명이 다수와 싸우는걸 요즘 말로 장판파라고 합니다



흥미로웠던 건 이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던 점 들입니다. 몇몇 리플들을 보며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저건 회사원이 아니라 노예잖아요'


가장 많았던 댓글입니다. 수저를 놓고 물을 따르고, 고기를 굽는 게 노예가 할 행동이라는 거죠. 충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 차이를 구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입에 떠먹여 준다면 노예가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은 노예가 아닙니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지요. 수저를 놓거나 고기를 굽는 행위 모두, 식사 자리의 누군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윗사람과 식사할 때에 그걸 하는 게 왜 노예가 되는 걸까요?

댓글들을 보며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제가 절대 평등주의자라는 가정이지요.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사고가 가능합니다. 임원과 식사하러 간 상황의 가정입니다.


회사 밖이고 업무 외 순간이니 임원이지만 저 사람과 나는 평등하다

자기 수저는 자기가 놓아야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나는 업무로 말할 뿐이고, 식당에서 저 사람의 편의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기는 집계를 하나 더 달라고 해서 각자 굽자.

똑같이 먹었으니 돈도 똑같이 내겠다.


여러분의 하급자가 저렇게 한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적어도 좋게는 안보일 겁니다. 네, 이 모든 행위는 여러분을 더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안 해도 상관없지만 하면 플러스가 된다는 말입니다.



2. '저렇게 살 거면 창업을 하세요'


아, 정말 대댓글을 달아주고 싶었습니다.

창업을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나요? 금수저 아빠의 회사가 아니라면 창업주만큼 허리를 낮춰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창업자입니다. 주변, 관공서, 투자자..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입니다.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배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3. '저건 예절이 아니라 접대잖아요'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든 댓글입니다. 생각해 볼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출근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회사원은 페르소나(Persona)를 바꿔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여러분의 면접 때를 기억해 보세요. 수십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습니다. 면접마다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저는 ㅇㅇ제약의 성장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 '저는 oo 전자 회장님의 일대기에 감명을 받아...' 뽑아만 준다면 무슨 소리를 못할까요. 각 회사별로 마치 이 회사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합니다. 여러 회사에 다 합격하고 가장 좋은 곳을 골라가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일단 들어오고 나면 우디르급 태세 전환이 이어집니다. 퇴사 관련 서적을 보며 한숨을 쉬게 되고, 그렇게 가고 싶다던 회사가 일요일 밤이면 너무 가기 싫어집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그렇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회사를 가고, 웃으며 (속은 안 웃고 싶지만) 일을 합니다.


예절이 아니라 접대 아니냐는 댓글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집을 나서는 순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접대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접대가 술과 향응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은 한 발짝 물러섬으로써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접대는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결론: Must는 아니지만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제가 드리는 모든 팁은 당연히 Must 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의 상관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제가 뭐라고 "꼭 이렇게 하세요!!"라고 할까요. 보시고 말이 된다 싶으면 취사선택하시면 되고, 아니면 아 라떼타령이구나 하고 무시하시면 됩니다.


20년도 전에 군대에서 복사기 때문에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복사기에 넣고 복사를 하면 안 됩니다. 자동 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인주가 번지기 때문입니다. 20살의 저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대학생 나부랭이가 인주를 묻은 계약서를 만질 일이 있었어야 말이죠. 엄청나게 깨지고 나서 다시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미리 잘 알려줬다면 혼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몰라서, 몸으로 배우면서 알게 된 노하우가 저도 많이 있습니다. 15년 전의 제게 지금의 제가 조언해 줄 수만 있다면 제 인생은 많이 변했을 겁니다. (비트코인이나 강남 아파트를 사라고..)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 주니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다시 말하지만 Must가 아닙니다. 안 해도 됩니다. 하는 친구들과 발생하는 격차만 감당하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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