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해도 됩니다. 격차만 인정한다면.
입에 떠먹여 준다면 노예가 맞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은 노예가 아닙니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지요. 수저를 놓거나 고기를 굽는 행위 모두, 식사 자리의 누군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윗사람과 식사할 때에 그걸 하는 게 왜 노예가 되는 걸까요?
댓글들을 보며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생각도 해 봤습니다. 제가 절대 평등주의자라는 가정이지요. 그렇다면 아래와 같은 사고가 가능합니다. 임원과 식사하러 간 상황의 가정입니다.
회사 밖이고 업무 외 순간이니 임원이지만 저 사람과 나는 평등하다
자기 수저는 자기가 놓아야지 손이 없나 발이 없나
나는 업무로 말할 뿐이고, 식당에서 저 사람의 편의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니다.
고기는 집계를 하나 더 달라고 해서 각자 굽자.
똑같이 먹었으니 돈도 똑같이 내겠다.
여러분의 하급자가 저렇게 한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적어도 좋게는 안보일 겁니다. 네, 이 모든 행위는 여러분을 더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안 해도 상관없지만 하면 플러스가 된다는 말입니다.
2. '저렇게 살 거면 창업을 하세요'
아, 정말 대댓글을 달아주고 싶었습니다.
창업을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것 같나요? 금수저 아빠의 회사가 아니라면 창업주만큼 허리를 낮춰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이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창업자입니다. 주변, 관공서, 투자자..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입장입니다. 겸손과 배려가 몸에 배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만든 댓글입니다. 생각해 볼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출근길을 나서는 순간부터 회사원은 페르소나(Persona)를 바꿔야 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여러분의 면접 때를 기억해 보세요. 수십 군데의 회사에 이력서를 넣습니다. 면접마다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저는 ㅇㅇ제약의 성장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 '저는 oo 전자 회장님의 일대기에 감명을 받아...' 뽑아만 준다면 무슨 소리를 못할까요. 각 회사별로 마치 이 회사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자신을 포장합니다. 여러 회사에 다 합격하고 가장 좋은 곳을 골라가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일단 들어오고 나면 우디르급 태세 전환이 이어집니다. 퇴사 관련 서적을 보며 한숨을 쉬게 되고, 그렇게 가고 싶다던 회사가 일요일 밤이면 너무 가기 싫어집니다. 이 또한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그렇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회사를 가고, 웃으며 (속은 안 웃고 싶지만) 일을 합니다.
예절이 아니라 접대 아니냐는 댓글에 대해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집을 나서는 순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접대하는 게 사회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접대가 술과 향응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은 한 발짝 물러섬으로써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접대는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20년도 전에 군대에서 복사기 때문에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은 계약서를 복사기에 넣고 복사를 하면 안 됩니다. 자동 복사를 진행하다 보면 인주가 번지기 때문입니다. 20살의 저는 정말로 '몰랐'습니다. 대학생 나부랭이가 인주를 묻은 계약서를 만질 일이 있었어야 말이죠. 엄청나게 깨지고 나서 다시는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 친절하게 미리 잘 알려줬다면 혼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몰라서, 몸으로 배우면서 알게 된 노하우가 저도 많이 있습니다. 15년 전의 제게 지금의 제가 조언해 줄 수만 있다면 제 인생은 많이 변했을 겁니다. (비트코인이나 강남 아파트를 사라고..)
사회생활을 잘 모르는 주니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다시 말하지만 Must가 아닙니다. 안 해도 됩니다. 하는 친구들과 발생하는 격차만 감당하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