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엄청 좋아합니다. 마블과 DC의 영화들은 모두 극장에서 즐겁게 보았습니다. 특히 어벤저스 엔드게임은 정말 최고였는데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새로운 캐릭터인 캡틴 마블이 합니다.
캡틴 마블은 엔드게임 직전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히어로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있었던 마블의 모든 히어로들 이상으로 엄청난 힘을 보여주죠. 아무 장비 없이 우주를 날아다니고, 적의 우주전함을 맨손으로 부수고.. 요즘 말로 벨붕(밸런스 붕괴) 캐릭터입니다. (뛰어다니는 블랙위도우, 호크아이 어쩔..)
뜬금없이 캡틴 마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회사생활하면서 캡틴 마블 같은 여성 동료 선후배들을 본 기억이 나서입니다.
우주전함이건 뭐건 다 부수는 무서운 누나.. (출처:Marvel)
우주전함 격파 대신 프로젝트를 혼자 이끌고 나가고, 날카롭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몇몇 여자 선배들은 제 눈에는 캡틴 마블처럼 보였습니다. 리더십, 업무능력 등에서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습니다.
업무현장에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 싶을 정도로 일을 잘하셨죠. 딱히 여성이라고 무시받는 부분은 없어 보였습니다. 평소 생활에 큰 불평등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평가나 승진에서 밀리는 모습은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이를 보며 한때 저도 불평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는 건가? 남자들이 여자를 탄압해서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서 점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이 차별받는 듯한 생각의 실체를요.
오늘은 캡틴 마블이 주변에 많이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민감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는, 최근의 남녀 대결구도나 페미니즘 논쟁 등을 보며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남과 여의 대결구도가 그렇고,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도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건 상대편 성별 때문'이라는 논조의 대립. 영원히 끝이 나지 않습니다.
회사를 오래 다니며 제가 얻은 결론은 '우리 사회가 극단의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경제활동은 극한의 효율을 찾는 행위이죠.
공장의 기계는 구매하는 순간부터 감가상각이 시작됩니다.
기계의 유지관리비도 들어가기 시작하니, 기계를 사고 놀리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닙니다. 기계를 두는 공장부지 임대료는 밤에 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일감만 있으면 2교대, 3교대를 합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이는 현명하고 칭송받을 경영활동입니다.
문제는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고용주는 피고용인을 극한까지 활용해야 합니다.
직원을 채용하는 순간부터 인건비가 발생합니다.
여러 유지관리비도 들어가기 시작하니, 사람을 고용하고 놀리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닙니다. 직원 관련된 비용이 밤이라고 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일감이 없더라도 회사에 24시간 붙여두고 뭐라도 시키고 싶습니다. 경영학적 관점에서는 이 또한 칭송받을 경영활동일 것입니다 (...?!)
직원의 능력이 개개인마다 다르고 짧은 시간에도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보면 남과 여의 이슈라고 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농업적 근면성과 범용성 관점에서 본다면 비슷한 능력을 가진 남성과 여성이 있을 경우 남성을 선호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입장에서는 이게 더 효율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슈 1. 농업적 근면성
농업적 근면성이란 업무를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고 퇴근하는 것과 완전히 상반된 말입니다. 퍼포먼스와는 무관하게, 아침 일찍 해가 뜨기 전에 나와서 밤늦게 별을 보며 퇴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에 하는 일은 훨씬 적더라도 하루 중 회사에 있는 시간은 누구보다 많은 부류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런 비효율적인 사람이 있나 싶습니다. 자기 일을 딱 마치고 빨리 가는 게 회사 PC의 전기료를 생각할 때 더 좋을 텐데 말이죠. 이렇게 되는 데는 무서운(?)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한 부하 위에 스마트한 상사가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지요.
상사와 부하가 둘 다 스마트하다면 퇴근 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정시퇴근이 가능합니다만,
상사가 부하보다 스마트하지 못하다면, 부하는 일을 마무리해도 상사의 퇴근은 늦어집니다.
검토 시간은 더 소요되고 피드백은 늦어지게 됩니다. 일의 지연이 시작되죠.
상사는 점점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은 잘 보지 못하면서 타인은 철저하게 비평합니다. 일의 진척이 늦어지는 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은 못합니다.
자신은 회사를 위해서 늦게까지 일을 하는데 부하직원은 일찍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합니다.
단지 상사와 부하, 둘만의 문제라면 상사가 문제라고 가볍게 지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사원 위의 팀장이, 팀 장위의 상무가, 상무위의 전무가, 전무 위의 사장이 늘 아랫사람 이상으로 스마트한 회사가 대한민국에 존재할까요?
결재라인의 어느 한 사람은 반드시 농업적 근면성을 장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동안의 대한민국은 이래야만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같은 능력과 성과를 가진 직원 간이라면 회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원이 좋은 평가에 유리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남직원과 여직원 간에 격차를 크게 느꼈습니다.
물론 집에 안 가고 회사에서 사는 여직원도 분명히 있을 것이나, 비중의 차이가 있었달까요.
남성이 여성보다 책임감이 높아서 야근을 더 많이 한다는 건 맞지 않습니다. 책임감 높고 야근 많이 하는 여성도 많이 보았거든요.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일조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여성 직원에 대해 22시 이후 야근을 시키지 말라고 명문화하는 회사도 있고, 남성 상급자 간에도 암묵적인 룰은 있으니까요. (김 팀장, 자네 팀은 너무 힘든 거 아니야? 여직원들도 집에 안 보낸다며? 이런 소리가 핀잔이 되는 문화죠)
또한 농업적 근면성과 효율 최우선주의를 앞세운다면, 보건휴가/출산휴가/육아휴직은 모두 "비효율"일뿐입니다. 실제로 많은 기업에서 이렇게 하다 보니 국가 출산율마저 흔들리고 있고요.
이슈 2 : 범용성
좋게 말해 범용성이지만, 나쁘게 말해 막 굴리기가 남성이 더 편하다는 뜻입니다.
인터넷에서 매번 회자되는 물통 갈아 끼우기나, 술자리 동석 이슈와 같이 뻔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관리자 입장에서는 여직원이 남성 대비 더 신경 쓸 것이 많습니다. 반면 일을 시킬 때는 "막" 시키기가 남직원이 편하죠.
출처 :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이상한 말이지만, 남직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 익숙합니다. (쓰고 보니 정말 이상한 말 입니다만..)
어릴 때부터 상명하복 문화를 강요받고, 그 정점인 군대문화를 접하면서 까라면 까는 것의 폐해에 둔감해집니다.
시키면 아무 생각 없이 수행하는 것을 학습당합니다. 상급자의 지시에 대해 반론을 하면 내부에서 질타를 받습니다. "말 참 많네. 그냥 하면 되지"라는 것이죠.
이게 상급자 입장에서는 범용성으로 인식되게 됩니다. 뭘 시켜도 군말 없이 하는 것. 학습된 충성심이랄까요.
저 역시 군생활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보내며 자연스럽게 그 속에 동화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기 전에 스스로를 구속합니다.
말은 줄어들고 상명하복에 충실하게 됩니다. 이게 조직생활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슬픈 현실이죠.
이러한 부분의 학습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보입니다.
결론 : 남녀가 싸울게 아니라 업무방식과 기업문화가 바뀐다면
제가 본 기라성 같은 여자 선배들은, 위 두 가지 이슈를 모두 정면 대결해서 이겨낸 사람들이었습니다.
남성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조직 충성도가 높았습니다. 팀장이 농업적 근면성을 보여주면 같이 엉덩이로 일하고, 밤늦게 술자리를 가지면 사우나에서 바로 출근하는 식입니다. 잘못된 룰이어도 자신을 맞춰간 거죠.
다 좋다고 말은 못 하겠습니다만, 문제의 근본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조직은 효율을 원하고,
조직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자는 무한의 충성심을 효율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변하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사회 전반에서 이런 부분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김 부장, 자네 미쳤어?"
상무님 방에 들어온 김 부장은 들어오자마자 들려오는 상무의 고성에 깜짝 놀랐다. 늘 화를 내는 상무지만 오늘은 강도가 더했다.
"상무님, 무슨 일이십니까"
"자네 부서의 18시 이후 PC 사용률이 제일 높아. 작년에 경쟁사가 직원 야근시키고 함부로 굴리다가 불매운동 일어나서 망한 거 안 봤어? 자네 때문에 회사 망하면 책임질 거야? 실적보다 요즘은 이런 게 더 중요한 세상이잖아. 그리고 우리 회사도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사용률 높이는데 무조건 중점을 둬. 그래야 사람들이 사준다고. 요즘 물건 살 때 제일 중요한 게 그런 거라며. 기업 평판!"
김 부장은 자신의 신입사원일 때를 생각했다.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앞으로는 직원 아끼고 직원들 만족도를 최우선으로 하도록 해. 그게 회사가 사는 길이라고!"
소비자인 우리들이 가격이 아닌 다른 가치에 집중한다면 기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차별받는다던가, 직원이 혹사당하는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사회 전체가 같이 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