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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과 '나의 아저씨'의 공통점

사실 우리 모두 외로운 것 아닐까요

요 며칠 아침 4호선 상행선을 타신 분이라면 왠 40대 아재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폰으로 드라마 보는 모습을 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네, 전데요.. 20대 때는 안 그랬는데 왜 자꾸 눈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 갱년기 멀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마지막 부분을 보는데 얼마나 슬프던지요.


이거 보느라고 요 몇 주간 출퇴근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연말 KBS 연기대상은 다 쓸어갈 거라 확신합니다. 주연배우뿐 아니라 조연들의 엄청난 연기력에 혀를 내두르며 몰입했습니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가 없는 드라마더군요.


성공한 드라마의 칭찬이야 쉽습니다만 왜 이 드라마가 재밌는 건가에 대한 분석은 의외로 어렵습니다. 사람마다 재밌다고 느끼는 포인트가 다 다르거든요. 다들 어떠셨나 모르겠네요.


저는 작년에 참 재밌게 본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나서 더 재밌었습니다. 동백꽃과 아저씨는 공통의 주제의식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젠 점점 보기 힘든 바로 그, '정(情)'입니다.





시간 날 때 종종 브런치를 돌아보는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어느 분의 글 중에 한마디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만난 사이니 사무적으로 대하겠습니다.' 이런 문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문구 자체야 뭐가 그리 틀린 게 있을까요. 사무적이든 아니든 그거야 자기 마음이겠지요. 이 뿐 아니라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가득한 분위기 & 트렌드는 '개인주의의 부상'입니다.


소확행, 디지털 노마드, 퇴사라는 키워드.

'딱 6시까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등의 서적들


모두 자신을 돌아보고 소중히 여기자는 내용입니다. 나쁜 내용이 아닙니다. 필요하죠. 미친 듯이 달려온 한국사회에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은 개인들에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우리 삶은 양쪽으로 치우치고 흔들리면서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또한 과도기라고 봅니다. '성과, 노오력'으로 치우쳤던 균형이 이번에는 '나, 개인'에게 치우쳐지는 과정인 거죠. 하지만 저는 사무실에서 만난 사이니 사무적으로 대하겠다는 선언이 좀 삭막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좋은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네요. 딱 맞는 표현은 '삭막하다' 인 것 같습니다.


보고 있으면 따뜻했던, 고마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뜬금없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두 드라마에서 이와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동백꽃 드라마에는 사회와 개인 간 관계에 대한 진단이 다양한 형태로 나옵니다. 미세스 강종렬의 관종 증상, 노규태의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살인마 까불이의 사회 부적응 등. 동백꽃이 재미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콤플렉스를 잘 파고든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현실세계에서 없어져 버린 듯한..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바로 정이죠. 옹벤져스 아줌마들의 무심한 듯한 충청도식 정이 그랬고, 고두심의 공효진에 대한 같은 처지에 대해 나오는 정이 그렇고, 순간순간 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나의 아저씨'에서도 같은 공간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3형제가 늘 밤에 가 있는 술집 '정희네'입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온 동네 사람들이 거기 모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까멜리아' 랑 '정희네', 모두 술집이네요. 정이 통하는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는.


보고 있으면 먹먹했던, 그래서 고마운 드라마. 나의 아저씨.


두 드라마 모두 삭막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제 입장에서는 엄청난 판타지입니다. 사실 '사무실에서 만났으니 사무적으로 대하겠습니다'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게 몇 년간의 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용카드사에서 카드사업 구축/운영 PM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많습니다. 금융 관련 법규는 늘 복잡하고, 수익성은 0.001% 차이로 수억이 왔다 갔다 합니다. 매일 이루어지는 카드 매입대금의 정산은 1원까지 항상 맞아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내부의 준법감시 부서, 법무부서, 리스크 관리부서, 감사부서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일을 계속하면서 성과도 나고 커리어도 생겼지만, 심리적으로는 여유가 늘 없었습니다. 옆에서 동료가 농담을 건네어도, 바쁘다 보니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출퇴근할 때 되도록 귀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체 회사 출입문을 나섰습니다. 하루 종일 숫자와 사람에 시달리고 나면 타인과 말 한마디 더 하는 게 고역이었거든요.


드라마를 보고서 며칠간 '왜 난 이게 판타지로 느껴졌을까'를 혼자 고찰하다가 내린 결론은, 까멜리아를 멀리서 찾을게 아니라 내가 변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인데, 사람보다 일을 중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은 오늘 안되면 내일 하면 됩니다만,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이 앞자리가 4자로 바뀌어도 아직도 배울게 많기만 합니다. 저는 좌충우돌하며 이렇게 배워가고 있지만 다른 분들은 좀 더 시행착오 없이 가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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