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로비 길거리 횡단 이야기
이번 세 번째 방문 기간 동안 머물게 될 숙소는 나이로비 대학교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호텔이다. 그래서 어제 암보셀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운전사 역할을 겸한 우리 가이드가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복잡하고 정신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거리가 등장하고 나이로비 대학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정말 반가운 친구 집에 온 듯한 느낌이 물밀듯 들어온다. 어떤 도시에 정을 붙이게 된다는 말이 이런 것인가.
우리 가이드는 호텔이 멀찌기 보이기 시작하자, 내가 은근히 걱정이 되는지 여러 가지 충고를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중의 한 가지는 이것이었다.
"교수님도 잘 아시겠지만, 저 호텔에서 약 100미터쯤 가서 육교를 건너가면 바로 대학교 정문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여기 교통이 굉장히 복잡하니까 꼭 저 육교를 건너야 돼요."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대뜸 이렇게 대답을 한다.
"싫은데요. 여기 나이로비 현지인들처럼 대로를 그냥 건너서 바로 학교 앞으로 갈 건데요?"
이 말은 듣자 가이드가 정말 운전대를 손바닥으로 팡팡 쳐가며 박장대소를 한다. 가이드 생각으로는 아마 하이에나 떼들이 서성이는 야생 암보셀리 초원을 마사이 현지인처럼 걷는 것, 그리고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를 나이로비 현지인처럼 건너는 것이 현지체험이라는 차원에서 이 한국인 음사피리(msafiri - 스와힐리어로 여행가)에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있었나 보다. 그러면서 어디 맘대로 해보라고 껄껄껄 웃는다.
나이로비는 보행자 신호등을 보기가 정말 어렵다.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있거나 말거나 그냥 나이로비의 여느 도로처럼 차들의 행렬 사이로 빠져나가듯 길을 건너기가 일쑤다. 나 역시 나이로비에 처음 방문했을 때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을 아랑곳하지 않고 건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데, 그날 아침 나 역시 호텔을 나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쌩쌩 달리는 차들 사이를 비집고 학교에 들어가서 마치 어제도 왔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한국학과 사무실에 안착했다.
하루 종일 맑다가 오후에 비가 잠깐 동안 억수 같이 내렸는데 온 시내가 물바다가 됐다. 도로는 온통 홍수가 나서 호텔을 바로 앞에 두고도 내려서 걸어갈 수도 없는 상황. 게다가 갓 튀긴 치킨처럼 윤기 흐르는 외제차 두 대가 길거리에서 충돌사고를 내자 교통체증은 더 심해진다. 보통 우버를 부르면 3달러 안팎이면 될 거리에서 18달러나 내야 했다. 그냥 차 안에서 멍하니 교통체증만 감상할 뿐. 만 팔천 원어치 구경이었다. 어쨌거나 하쿠나 마타타.
동아프리카 최대 도시 나이로비의 교통 사정은, 굳이 어디서 듣거나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상상이 될 것이다. 정말 저녁 퇴근시간에 우버택시를 타고 이동할라치면 마음속으로 계속 하쿠나 마타타를 주문처럼 외쳐야 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는 경우엔 정말.....
이럴 때 정말 편한 교통수단은 영업용 오토바이다. 케냐 현지어로는 '피키피키'라고 불리는 이 오토바이는 길거리에 서있는 것을 잡아타면 아무 곳이나 가 달라는 곳으로 바래다준단다. 나이로비 대학교 교수님 덕분에 몇 차례 타본 적이 있긴 했지만 미터기 같은 것이 없어 미리 가격을 흥정해야 하는 것이 좀 짜증날뿐더러 적잖이 위험해 보이기도 해서 나 혼자 탈만한 용기는 잘 나지 않았다. 혹시 저 사람들이 날 태우고 어디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생각 말이다.
그런데 올해 와보니 우버에도 그 피키피키를 부를 수 있는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 명칭은 피키피키보다는 조금 더 우아한 '보다보다 라이드'.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저렴한 모터 엔진에서 나는 깨방정 떠는 부릉부릉 소리를 현지어로 표현한 느낌이다.
마치 그날은 나이로비 대학교에서 일하시는 교수님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서 새로 생겼다는 중국식당에 가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다, 이참에 우버 보다보다 서비스를 사용해 보기로 하고 주문을 해보았다. 그런데...... 실패.
웬일인지 호텔 앞으로 바로 오토바이를 부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택시를 부르면 자기가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오는 것과는 달리 보다보다는 오토바이 운전사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야 했다. 안내문자에 적힌 대로 그곳을 어찌어찌 찾아가서는 나와 연락이 된 기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수십 번 받는 동안 에정도착시간도 계속 늘어나는 미스테리한 상황만 이어지고, 끝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보다보다 기사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우버에 제시된 가격을 토대로 흥정을 하고 나서 나이로비 밤거리를 휘저어 식당에 도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정을 알고 보니, 호텔이나 공공장소에서는 그 오토바이 서비스를 부르는 것을 많이들 금지하고 있는 듯하다. 다음 날도 나이로비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라는 야야센터(Yaya Center)에 보다보다를 타고 도착해서 기사에게 사진 한번 찍자고 포즈를 부탁하고 있는데, 청원경찰 같은 사람이 득달 같이 달려와 '피키피키 기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하며 호통을 친다. 아무튼 길이 막히는 저녁 시간대에는 이 보다보다만큼 좋은 대안이 없는 듯하다.
평상시에도 나이로비의 신작로 사거리에는 십 수 대의 보다보다 오토바이들, 그리고 운전사를 연인처럼 등 뒤에서 끌어안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가씨,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듯한 아주머니, 그리고 말끔히 차려입고 우버 마크가 찍힌 헬멧을 뒤집어쓴 유럽인들. 그들 중에 섞여서 자동차의 흐름이 바뀌길 기다리는 내 모습 역시 그렇게 보일까.
그렇지만 이런 교통지옥을 벗어날 대안을 생각해 내지 않는 나이로비 관료들과 매일 이런 수고를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 때문인지 그런 것들을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