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족 청년들은 충분히 지적이다.
사실 마시아족은 케냐를 대표하는 부족 같지만 사실 케냐 인구 전체에서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여전히 전통적인 유목민의 삶을 고집하면서 탄자니아와 케냐를 오가며 이전의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수도의 명칭인 '나이로비'가 마사이족 언어로 '찬물'이라는 뜻이라는 것은, 마사이족의 문화적 영향력을 방증하는 예로 자주 듣게 되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 사파리보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암보셀리 국립공원 근처 마사이족 마을 방문이었다. 하지만 선뜻 마음을 잡지 못한 것은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뚜벅이 혼자서 찾아가기엔 도로 상황이나 관광여건이 그렇게 좋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사실 마사이족들이 직접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나라 민속촌처럼 관광객을 위해 조성해 놓은 테마공원 수준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암보셀리 여행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개인당 30불을 추가로 지불하면 마사이 마을을 방문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긴 했다. 그냥 관광안내책자를 채우는 흔한 문구들 중 하나로 치부하며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암보셀리 국립공원 안에 들어오니 여기저기에서 화려한 민속의상을 입은 마사이족 사람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누가 봐도 염소를 이끌고 유목을 하는 원주민들이고 복장, 얼굴 문신, 머리 모양 등을 보니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소똥으로 만든 집들로 우거진 마을이 국립공원 곳곳에 드문드문 보인다. 사람들은 둘째 치고, 어린 시절 외국 풍물을 소개하는 학습만화에서만 보았던 소똥으로 만든 집이라도 볼 수 있겠다 싶어 가이드에게 마사이 마을로 가보자고 말을 했다.
이틀 동안 나랑 같이 다니면서 내 취향을 완전히 터득한 우리 가이드는 차를 타지 않고 터벅터벅 걸어서 숙소 인근에 있는 마사이 마을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맹수들이 인근에 있을 수 있어서 마사이 부족민이 아니라면 호텔 밖을 나가 혼자 걷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자와 하이에나들이 먹음직스러운 살진 동양인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초원을 완벽히 나 혼자서 가는 게 아니라 마사이 마을에서 누군가 나를 마중하러 나온단다. 그렇다면 정말 현지인(!)처럼 나도 초원을 지나서 걸어서 마사이 마을로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관광객들은 마사이 마을까지 보통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 때문에 걸어서 이동하는 손님은 내가 처음이란다. 자기를 에릭이라고 소개한 마사이 청년을 따라 현지인처럼 오손도손 걸어서 그들의 마을로 찾아갔다. 내가 난생처음 만난 마시아 청년 에릭은 영어를 놀랍게도 잘했다. 그리고 그날 그로부터 듣게 될 이야기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는 것과 얼굴에 있는 달팽이 문신이 화장이 아니라 진짜 인두로 지져서 만든 부족의 표식이라는 것과 며칠 뒤 두 번째 부인을 들일 거라는 이야기 따위는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을 정도.
이곳은 민속촌처럼 일부러 관광객을 위해 조성한 시설이 아니다. 정말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서 국경 없는 유목생활을 하는 마사이족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여성할례 같은 전통도 이어가고 있거니와 정말 얼굴에 문신을 하고 아랫니를 뽑고 부인을 여럿 거느리고 있는 마사이 사람들이 소똥으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었다. 소똥집 냄새가 생각처럼 그렇게 역하진 않고 엄지손톱만 한 파리들이 윙윙 날아다니는 것 말고는 그들의 마을을 구경하는 데 어려운 점은 별로 없어 보였다.
에릭의 안내를 받아 마을 입구에서 마을 원로에게 인사를 하고는 입장료 30불을 지불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어.... 어.... 부족 사람들이 다 나오는데... 어... 어..... 사람들이 줄을 이어 뭔가 대열을 만드는데.... 어??? 어??? 사람들이 나 혼자만을 위해서 마사이 민속춤을 시연해 준다!!! 아니, 30불 내고 나 혼자 방문했는데 이런 환대를 받아도 되는 건지 황송하고 미안하다. (이때까지는 그랬다.....)
에릭이 직접 사람들이 사는 집안에 데리고 들어가 자는 곳과 부엌의 세간 살림을 보여주고 동네 친구들을 데려다가 불 피우는 법도 보여준다. 집안 내내 동네 의사(?) 직을 맡고 있다는 청년이 대대로 내려오는 민간요법도 선보여준다. 직접 걸어서 탄자니아 국경을 넘어 킬리만자로 산자락에서 캐왔다는 뿌리나 약초 등을 보여주면서 효능을 설명해주는데, 중요한 것은 이 방법도 소용이 없으면 시내 병원으로 가게 한다는 것.... 게다가 자기는 한 번도 아버지가 전해준 방법을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없단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좋았다. 한 시간 정도 마사이 부족 마을 일정을 마칠 무렵 우리 에릭이 마사이 사람들이 만들어 파는 물건을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뭔가 싸한 기분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못 이기는 척 구경이나 해보자고 따라나섰다. 마을 입구 공터에 나가니, 한 명의 방문객을 위해 춤을 추어준 마을 사람들이 일일이 다 좌판을 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직접 만들었는지, 아니면 시내에서 떼어왔는지 모를 조악한 물건을 내어놓고 파는 것이다. 마사이족들을 후원하는 차원에서 가격도 정해지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다는데, 물건을 고르고 나서 마지막에 가격을 흥정하자는 우리의 에릭.
처음애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온 동네 사람들이 축제를 열어주더니 마지막에는 나 혼자만을 위해서 장이 들어섰다.
그래도 쓸만해 보이는 컵 받침대와 팔찌 몇 개를 골라 밖으로 나와 가격을 물어보았다. 세상에나, 누가 봐도 2만 원도 채 안될 물건들을 동네 사람들 후원하는 셈 치자며 100달러 가까운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한다.
내가 보기엔 정말 그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날강도짓을 해가며 돈을 벌 필요는 없을 텐데 하는 생각에, 두말 않고 물건을 돌려주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암보셀리 초원에도 상도덕이라는 것이 있을 터인데.....
지금 생각해 봐도 궁금한 것인데, 전기도 없는 동네에서만 생활하고 기본적인 생필품을 자급자족으로 얻는 이들인데 그런 큰돈이 어디에 필요했던 것일까.
혹시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에릭은 별 아랑곳 않고 나를 따라 나와선 또 다른 친구를 불러 호텔까지 마중해 준다.
마사이 부족 생활만 평생 했다던데 에릭의 영어는 정말 훌륭하다. 에릭은 정식으로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혹시 외국 여행을 해봤냐고 묻자 탄자니아에 다녀오는 게 다란다. 그것도 여권을 가진 여행객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가축들을 이끌고 자연스럽게 국경을 넘어갔다 오는 식이란다. 국경에서 얼굴에 문신을 한 마사이 족에겐 별다른 신분증 조회도 하지 않는다고...
에릭이 나더러 어떤 언어를 구사하냐고 묻는다. 그런데 대답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다. '네가 모를 수 있는데 발트 3국을 아느냐'고 물어야 할 것 같은데 괜한 걱정이 든다. 공부 많이 한 한국사람들도 발트 3국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왠지 에릭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마사이족이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에릭은 오해는커녕 발트 3국의 이름을 줄줄 이야기해주는 것으로 내 의구심을 해결해 주었다!!! 내가 폴란드에 살았다고 하니 폴란드어도 조금 할 수 있단다, 물론 아주 기본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마사이족이 구사하는 폴란드어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그만큼 폴란드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는 말이다.
마침 그날도 저녁에 폴란드 사람들 방문이 예상돼 있다니, 뭐 오늘 짠돌이 한국사람 만나서 장사 못한 건 나중에 폴란드 사람들한테 많이 팔면 되겠네 하며 괜스레 마음이 놓인다.
호텔 입구에서 에릭과 작별인사를 나눈 후, 4시간 반을 점심도 먹지 않고 내내 달려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정신없고 시끌벅적한 곳이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와본 곳이라고 낯익은 거리와 빌딩을 보니 마음이 턱 하고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