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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Sep 08. 2016

자동차 회사를 떠나며

퇴사의 이유. 그리고 조직에 아쉬웠던 것들

 지난 7월 1일은 내 공식적인 퇴사일이었다. 그룹장님께 처음 얘기를 하기로는 1년, 그리고 팀에 공식적으로 얘기를 꺼내기에는 무려 6개월을 끌어온 퇴사가 마침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사실 6월 22일을 마지막으로 도망치듯이 유럽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퇴사일은 바르셀로나에서 맞았다. 그때는 이미 심리적으로 좀 안정되어있었고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하고자 했던 일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조금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더 객관적인 눈으로 나의 퇴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해보려고 한다. 


퇴사의 이유, 결국 손익이 안 맞는다고 느낀 거 아닐까?


 종종 사람들은 나에게 왜 퇴사했냐고 질문을 한다. 그리고 퇴사 최종 면담을 할 때도 인사 담당자도 같은 질문을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회사에서 많은 것을 받았다. 또래에 비해 다소 많은 연봉,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에서 나온 엄마의 뿌듯함도 있었지만 제일 큰 것은 기회였다. 나는 운이 좋게도 대기업의 수많은 직군 중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1년차부터 할 수 있었고, 나를 가르쳐 줄 존경할만한 멘토들이 많았다. 그 기회를 통해 3년 차까지는 매년 "성장"하고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회사에 "기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길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내가 성장하는 것보다 기여하는 게 더 많아지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아직은 성장하고 싶었다. 아주 많은 단어들로 치장해도 핵심은 내 계산으로는 결국 손익이 안 맞았던 것 아닐까? 그래서 회사와 나의 비즈니스 관계에 이별을 고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어쩌면 회사 안에서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말 그 안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없었는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정말로 무엇이었는지 말이다. 가끔은 내가 헛된 망상에 빠져 미친짓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 길이 맞다고 믿는다. 회사 안에서 존경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존경과는 별개로 내가 원하는 물질적인 욕심, 명성등 내 야망은 확실히 회사에서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는 조직이고, 30년을 수많은 경쟁 끝에 기어올라가야 겨우 방안에서 큰 소리 칠 수 있고, 그조차도 결국 오너의 눈치를 봐야한다. 나는 이 조직에서 거기까지 올라갈 자신도 없었다. 나는 내가 조금이라도 젋을 때 내 야망에 솔직하고 싶었다. 


조직의 무서움

 나의 "성장판"에 영향이 생긴 건 조직의 변화였다. 무능한데 욕심이 많은 새로 온 몇몇 덕분에 조직은 활력을 잃었고 나는 거기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샌가 옳다고 믿는 바를 설득하기보다는 먼저 포기하고 그냥 내가 편하는 길을 택하고 있었다. 


 내 멘토 중 한 분은 나에게 조직의 사람이란 어차피 지나간다고 지금은 안 좋은 시기일 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무서웠다. 사인하는 사람 몇 명 바뀌었을 뿐인데,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다음에 올 사람에 따라 다시 바뀐다는 것도 놀라웠고 무서웠다. 더 나쁜 것이 올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어쩌면 내 처음 2년은 최고의 사람들과 보낸 시기로 회사 생활을 20년 더 해도 다시 찾아오지 않을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움이 들었다. 


 그리고 무서웠던 다른 것은, 그런 최악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사 조직과 윗 분들의 시각은 달랐다. 뻔히 보이는 얕은 아부, 보여주기에 점수를 줬다. 점점 조직이 병들어가는 모습은 외면했다. 감독이 바뀌었다고 선수들이 갑자기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무능한 상사 밑에서 그래도 성과를 내려고 했던 훌륭한 직원들이 그들의 눈을 멀게한 것은 아니었을까


아주 후진 인사 조직의 마인드

 아주 후지다. 이 한마디로 이 회사의 인사 조직 마인드를 평가하고 싶다. 나는 전문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사 조직의 방침은 "대체 가능 인력"의 충분한 양 확보였다. 


 첫 번째 이걸 느낀 건 연수 후 배치 떄였다. 나는 마케팅이 하고 싶었고 입사 지원서, 면접 모든 쪽에서 그 쪽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배치 전 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국내마케팅실이 있는 국내영업본부 내의 어느 팀에 가게 될 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배치전 갑자기 생산관리에서 상품, 서비스등으로 직군이 바뀐 경우를 보기도 했지만 실제 배치 면담에서 막상 얘기를 들으니 황당했다. 우여곡절끝에 아주 운이 좋게도 원하는 직군의 일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그건 내가 그 일에 적합한 경력,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마케팅실 임원이 경영학과를 선호해서였다. 공채 중 유일하게 딱 한명 상품 직군으로 뽑힌 친구는 어이없게도 인사팀으로 발령을 갔다. 막상 상품팀에는 다른 동기가 배치를 받았다. 이럴거면 대체 왜 직군을 나누어서 뽑은걸까?


 두 번째는 마케팅, 영업을 거치며 수 년간 경험을 쌓던 선배가 인사팀으로 배치를 받은 것이었다. 이미 영업,마케팅 쪽으로 훌륭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가 중간에 인사팀으로 가는 건 그의 경력 관리에 좋을리 없다. 물론 다양한 보직을 경험하는 것은 나쁘지않을 수 있지만, 그가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인사팀 직무가 도움이 된다는 것에 조직과 직원 둘 다 동의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그가 인사팀으로 가게 된 것이 그의 커리어를 고려해서였다면, 그도 동의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둘 다 아니었다. 인사팀에 배치를 받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일이 하고 싶었던 직원들이 마침내 팀을 옮겨 자리가 비자 일 잘한다는 평을 듣던 그를 긴급 수혈한 것이다. 즉 개인의 경력에 대한 고려는 없었으며, 그는 당연히 싫다고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결국 인사팀의 마인드는 '일은 잘하는 놈이 잘한다', '임원의 입맛에 맡게 충실히 보고서 쓰고 열심히 하는 놈 가져다 쓰면 된다'다. 그들은 전문성은 임원들이 가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임원은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그 자리에 오를까? 전문성이 없다가도 임원을 달면 전문성이 생기는 것일까? 그리고 임원이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실무의 전문성은 상당히 중요하다. 인사팀의 마인드는 마치 야구는 잘하는 놈이 잘하니까 잘하고 있는 유격수 자원을 투수에 넣었다가 1루에 넣었다가 하는 꼴이다.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이게 통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에서는 아니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는 글로벌로 경쟁하는 프로 집단이다.


 더 어이없던 건 나의 퇴사 이후 인사팀의 스탠스다. 나는 퇴사를 6개월 전에 말했다. 워낙 사람이 없어 일에 허덕이는 팀이었기 때문에 나가면서 민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회사에서 신입사원이든, 타 팀에서든 인력 충원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가능하면 몇 달간은 인수인계도 하고. 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오지 않았고 지금까지 오지 않고 있다. 동기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퇴사한 사람은 대체 인력을 안 주는 게 방침이라고 한다. "좋은 인재를 힘들게 뽑아서 줬는데 팀에서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나갔다"는 논리다. 그래서 패널티를 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인지 모르겠다. 이게 프로의 자세인가? 중요한 건 그런 논리가 아니라 각 조직이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하는 것 아닌가? 이제 나도 모르겠다. 내가 퇴사하기 까지 6개월 동안 이런 얘기는 한번도 하지 않은 것도 웃기고. 


 분명한 건 이건 글로벌 기업의 태도가 아니며 이런 마인드로 운영해서는 오래 못 갈 거라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인력은 잘해봐야 평타다. 하지만 필요한 건 잘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와 전문가가 회사에 로열티를 가질 수 있게 고민하는 게 인사 조직의 역할이 아닌가? 




 어쨋건 나는 이제 떠난 사람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걸어나가야 한다. 꿈 찾아 떠난 이상 헤메더라도 끝까지 가야한다. 카레시피에 쓰는 건 내 마케터로서의 감각을 조금이라도 천천히 잃기 위해, 아는 것들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내 브런치에 쓰는 건 내가 느낀 것들, 느끼는 것들을 조금 더 진솔하게 쓰고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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