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Seok Kim Jun 14. 2020

내 아이에게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싶은가

충분한 애정과 관심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동반자

2006년 대학 새내기 시절, 무슨 생각이었는지 "부모 되기"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다. 내가 부모가 될 거라는 생각은 당시에 아주아주 막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인지 수업의 내용 대부분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삶의 상당 부분이 부모님의 삶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 데 그 수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자라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하고, 아이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쏟는 존재는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리고 좋든 싫든 간에 아이는 성장하면서 부모님을 통해 세상을 겪게 된다. 그리고 부모가 겪는 삶의 다양한 사건들과 의사 결정은 아이의 삶에 때로는 상상하지 못한 형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특징이나 인생의 궤적이 오롯이 나의 타고난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이 산본이라는 작은 신도시에서 한 번도 이사할 생각 없이 15년 간을 거주하셨기 때문에 나는 초, 중, 고를 바운더리가 명확한 한 지역에서 나오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는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없는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것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크게 위축되는 편이다.

지금 가봐도 좋은 데 2000년의 14살 소년 눈에는 얼마나 으리으리하게 보였을까?

또 다른 예로는 나의 진로 선택에 있어 부모님이 40대에 겪은 다양한 일들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경영학과를 선택한 것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였고,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중학교 1학년 입학 즈음에 부모님이 초대받아서 처음 가봤던 신라호텔이 너무 충격적이어서였다. 이런 곳을 제 집 드나들듯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사업가라는 막연한 생각이 나를 경영학과로 이끌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문과 적성의 사람이 공부만 잘한다면 적당한 부와 권력을 가지는 데에는 법을 공부하는 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은 알려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검사였던 친구가 "매일 범죄자들만 상대하다 보니 검사라는 게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이나 당시 집안일로 소송을 따라다니며 보니 "변호사들은 순 돈만 밝히는 나쁜 놈들이더라"라는 말로 은연중에 법조계 종사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 데 영향을 미쳤다. 분명 고등학교 3학년 진로 상담에서 학년주임 선생님은 법대를 권하셨지만, 대학 가서는 공부하기 싫다는 말로 거절했던 것은 나의 였지만 말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형의 대학원 학비로 스트레스를 받던 엄마가 갑자기 밥상머리에서 나에게 "너는 대학원 갈 생각 하지도 마라"라고 했던 게 취업을 확정 짓던 날 새삼 생각난 것도 있다.


 내가 들은 수업에 의하면 사람의 근원은 유아기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하는 데 이 시기를 부모와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무의식적인 태도가 고착된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의 사건들도 영향이 큰데 아이의 세계에서 부모가 차지하는 영역이 절대적인 어렸을 때는 그 영향력이 훨씬 더 클 것임은 너무 당연하지 않을까?


새삼스럽게 부모로서 나의 책임감이 막중함을 깨닫는다. 나의 별생각 없는 행동과 말들이 아이에게는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쳐 이 아이의 인생에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를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아이에게 다음의 두 가지는 꼭 신경을 쓰고 싶다.


1) 충분한 애정과 관심


나는 어린 시절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딘가 삐뚤어져 있고, 본인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태도를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구강기 결핍 이론에 대해 잘은 모르고, 모든 것을 애정 결핍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내 인생에서 만난 나를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은 어린 시절 무언가 애정 결핍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어떤 포인트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거나 애써 그렇지 않은 척하려고 무리한 언행을 하곤 한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자존심은 강하나 자존감은 약한 무언가 비틀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불안과 역린의 심연에는 우리 집안의 사정으로 인한 결핍이 있었다.


반대로 내가 살면서 만나본 사람들 중 늘 부럽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세상으로부터 환대를 받으며 자라온 것이 분명한 "구김살"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다른 객체를 대함에 있어서도 편견이나 방어적인 깔봄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것은 굉장한 매력이 된다. 나는 이들이 이런 태도를 가질 수 있음은 특히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충분히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면서 만나본 그런 종류의 이들이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자란 데는 타고난 외모 혹은 부모님의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모님 나름의 필사적인 노력을 통한 아이와의 소통이 중요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아이와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것이 단순히 피상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넘어서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아이에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에게 본인이 세상에 와준 것만으로 감사하고 기뻐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분명히 느끼도록 하고 싶다.  



2) 더 넓은 세상을 열어주는 역할


나는 금수저의 장점 중 하나는 넓고 다양한 세상 사는 방법에 대한 부모님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금수저의 부모는 부자인 만큼 세상 돌아가는 일과 돈의 흐름에 대해 잘 알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단순히 피상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왜와 어떻게에 대해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보통의 부모라면 해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겠지만, 어떤 부모는 연예인이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직접 얘기를 해주거나 필요에 따라 직접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산업 종사자와의 만남을 주선해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동경하는 연예인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있고. 그 순간 연예인은 아이에게 막연한 꿈이 아닌 구체적인 로드맵이 된다.


부모님은 연예인과 같은 선망의 직업 외에도 아예 보통의 사람은 있는지도 모르는 다양한 세상을 알려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나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왔는데, 여기서 내가 결코 공부로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진로 선택에 있어서 나는 스스로 설계를 해야 했고 내가 아는 분야 중에서 한 분야를 선택해 지망했는데, 알고 보니 세상은 그보다 훨씬 더 스펙트럼이 넓었다. 내가 살아보니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무형 자산이다.


 앞으로는 다원화의 세상이다. 부모님이 살아온 세상은 공부가 잘 사는데 가장 쉽고 보장된 길이었고, 의사/변호사, 선생님 등 좋은 직업이 명확했던 시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를 잘했든 못했든 어떤 부모든 "공부해라"라며 절박한 마음으로 학원에 돈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상도 그랬지만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그 외에도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길이 있을 것이다. 더 넓은 세상을 알고 있는 부모로서 일률적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길을 함께 모색하고, 같이 걸어가 주는 부모가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좋은 부모가 아닐까?


 또 한 가지, 아이의 취향은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내가 자라온 세상에서는 부자 집안의 아이일수록 라면 같은 모두가 아는 음식부터 아주 진귀한 이국적인 음식까지를 겪어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취향이라는 것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대학에 갈 때까지 접해본 커피라고는 믹스 커피와 레쓰비가 다 인 아이와 핸드 드립과 에스프레소 머신의 차이를 구분하는 아이가 커피라는 분야에 있어서 출발선이 다름은 명확하며, 즐길 수 있는 분야의 스펙트럼의 차이도 있다. 또한 다양한 취향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취향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방어감이 없다. 사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겪어봐야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지 알 수 있다. 옷도 많이 사보고 실패해봐야 자연스러운 패션 감각이 길러지지 않는가? 그렇기에 취향 소비에 방어감이 있는 사람은 취향이 생길 틈이 없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정보를 얻기가 쉬워졌기 때문에 굳이 부자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취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취향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이가 자기 콘텐츠가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굳이 부모가 아니더라도 30대가 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기 콘텐츠가 생기기 마련이지만 대학생 때부터 이런 자기 콘텐츠가 있다면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리고 이는 남들보다 그 콘텐츠를 레버리지 할 시간이 많음을 의미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이런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이 것이 부모로서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다고 다짐하는 것들이다.

이 것들 외에 어떤 아이가 되었으면 바라는 것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노래 조규찬의 "언젠가 이 노래를 듣게 될 내 아이에게" 가사 그대로이다.


(공교롭게도 나도 올 해 서른 네살이다. 한국 나이로지만)


언젠가 마주할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나의 서른 네 해가 내게 가르친 지혜란다

나 역시도 말대로 행하기엔 제법 어려운 현실임을 잘 알지만

그럴수록 자신을 더 믿어 주기를
잘못은 인정함이 용기임을 알기를
약자 앞에 한없이 약해지길
부당한 힘 앞에 한없는 강자이길

훈계하려는 건 아니야 '단지' 느낀 걸 나누고 싶은 맘뿐야
아빤 널 믿어 맑은 마음을 하늘이 함께임을
이 노래를 이해할 나이쯤 한번 더 너와 함께 얘기할 수 있기를

감당하기 힘든 슬픔 앞에 설 때면
함께 눈물 나눌 벗을 가진 삶이길 외롭지 않길
야망보다 사랑이 더 귀함을
두 눈빛 가득히 담고 살아가길
자랑하기보단 나눠 주는 삶이길
화에 인색하고 웃음에 넉넉하길
자연 앞에 겸허한 가슴이길
머무는 곳마다 빛과 소금되길

풀잎에 맺힌 이슬같은 세상을 씻어 줄
그 맑음을 꼭 간직하길

조규찬 - 언젠가 이 노래를 듣게 될 내 아이에게
작가의 이전글 타다 금지법이라 사업 접겠다고요? 글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