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 과거를 바꿀 수 있으니, 가지않은 길을 돌아보지 말자.
얼마전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얼큰하게 무르익어가서 모두의 정신이 흐릿해질 무렵 같은 회사의 학교 선배가 "어차피 너나 나나 서울대 못가서 ㅇ대 간거잖아, 맞잖아"라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고는 그냥 그러려니 웃어넘기면서 "저는 ㅇ대 가서 좋은데요" 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난 서울대 못 간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 나이를 먹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참 별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인생에서 수능을 두 번 봤다. 첫 번째 수능은 그야말로 망했다. 수리영역에서 고3 내내 모의고사동안 틀린 문제보다 더 많은 문제를 수능 하루동안 틀렸다. 그치만 2학기 수시 논술을 통해 모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수능을 망쳤다는 것 그리고 목표했던 서울대를 못 갔다는 것은 당시 20년도 안 산 나에게는 커다란 고통이고 컴플렉스였다. 여러 우여곡절 및 고민을 생략하고 말하자면 학교를 다니면서 수능을 봤고 서울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원하던 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했는데 내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게 서울대가 아니어서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학하지는 않았다. 어찌됐건 1년 쉬고 수능에서 성적으로 증명했고. (언수외 합쳐서 하나 틀렸다)
물론 그 이후로 종종 내 선택이 맞았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때 서울대로 갔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하는 그런 종류의 상상과 곁들여서 말이다. 그리고 종종 이왕 시험을 볼거라면 아예 반수를 하고 더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는 생각도 든다. 어차피 당시의 나의 상처입은 마음으로는 수능을 다시 보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연약하고 우유부단한 나의 마음은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했었다. 그리고 일종의 번아웃이 왔는지 일주일 준비하면서도 책상에 도저히 앉아있을 수 없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한 학기쯤 돌아가더라도 집중해서 해보고 안되면 시원하게 군대나 가자고 생각할 수 있는 멘탈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살면서 합격하고 진학하지 않은 사례는 하나 더 있다. 2017년에 나는 창업을 했다가 망하고 차가운 취업 전선의 현실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카카오나 네이버같은 IT기업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제조업 마케팅 경력만 있던 나는 번번히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눈 낮춰서 합격한 곳도 포지션이 사라지고, 가보고 싶었던 회사는 끝내 불합격하는 등 우울증으로 집에만 처박혀서 옥상에서 담배피며 땅바닥만 바라보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런 도저히 안되는 상황에서 문득 약 5년 전쯤 나에게 리트 시험을 권했던 선배가 생각났다. 그래도 잘하던게 공부인데 시험으로 돌파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리트를 봤다.
그러나 정말 그때 뼈저리게 느낀게 뇌지컬은 살아있어도 체력이 엉망이었다. 내 집중력은 첫 교시에서 60분도 채 못가 너덜너덜해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면접에서 아주 운이 좋게도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주제가 나와서 서울의 한 로스쿨에 붙을 수 있었다.
*국민 연금 지급 연령 인상과 관련하여 프랑스 사례와 비교해서 물어봤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그쪽 정서에 대해 잘 알았고, 일종의 함정도 잘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리트를 본 이후에 공교롭게도 내 자동차 경력과 IT가 만나는 라이드 셰어링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로스쿨 가기 전에 돈이라도 좀 벌자는 마음이었는데 거기서 사업 기획에 대한 꿈을 다시 좇게 되면서, 또 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지면서, 결혼을 결심하면서, 공부를 할 자신은 없어서, 변호사로서 경재력은 없을 것 같아서, 그게 내 꿈은 아닌것 같아서 등록은 포기했다.
이 선택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해보곤 한다. 공교롭게도 모빌리티 업계에서 일하다보니 변호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는데, 내가 변호사라면 어땠을지도 생각해본다. 또한 만약 로스쿨을 갔으면 부동산 폭등기에 우울해하지만은 않았을까 싶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 공부 체력이 이미 바닥으로 떨어져있던 내가 3년 잘 공부해서 변시를 붙었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어쨌건 당시 우울증에 빠져있던 나에게 리트는 일종의 가짜 직업같은 역할로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 갈 힘을 줬으니 그걸로 충분히 역할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변호사들과 일하면서 그들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말이다.
내 인생에는 이런 가지 않은 길들이 있다. 다른 선택을 택했을 때의 결과는 내 삶 속에서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평행 우주 속에는 다른 선택을 해서 살아가는 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삶의 나는 그 삶을 알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분명한 건 내가 과거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때는 현재가 아쉬울 때다. 과거 그 길로 갔더라면 더 좋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들이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지금 꼭 더 나은 상황일지는 모른다. 오히려 극단적으로는 그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그때 그길을 갔더라면을 종종 상상해보긴 하지만 적어도 그때 그길로 갔어야한다는 후회는 더 이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서울대를 갔더라면 CC였던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때 로스쿨을 갔더라면 결혼이 더 늦어지고 와이프와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지금의 가족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내 삶이 만족스럽다면 굳이 과거를 돌아보며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한강 작가는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썼다. 나는 "미래가 과거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련도 미래에 기쁜 일을 맞이하고 나면 과정이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뒤를 돌아보고 번민할 시간에 앞을 봐야한다.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제일 맛 없는 라면이 "했더라면"이라는 아재 개그스러운 말을 종종했다. 맞는말이다. 결국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지금이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금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는 과거에 있지 않다. 미래를 만드는 "지금, 여기, 오늘"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