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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Mar 16. 2022

생일 선물로 온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고…

"생일 축하해요, 내일 뭐 하세요? 나한테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표가 있는데, 같이 안 갈래요?"


친구 Y에게서 생일 축하 문자가 왔다. Y는 나와 비슷한 시기에 뮌헨으로 이사 왔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한국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 그땐 집도 가까워 자주 만날 수 있었고 코드도 비슷해서 친해진 동갑내기 친구이다.


"우와~~ 고마워요. 피가로의 결혼은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예요.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서 가야죠!"

"잘됐네요. 그럼 오페라 보면서 우리 생일 2차 축하해요. 6시 반에 오페라극장 앞에서 만나요"

"고마워요. 내일 봐요"


출장 간 남편 대신 아들을 펜싱 수업에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고 와야 했지만, 아들이 수업 끝나면 혼자 오겠다며 오페라 보고 오라고 했다. 어둡고 추운 날씨에 무거운 펜싱 가방 끌고 한참을 걸어오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우리 아들 언제 이렇게 컸대? 고마워'


뭘 입고 갈까? 오페라 관람 갈 때는 좀 화려하게 입어줘야 하는데, 이게 또 오페라를 보는 나의 낙이기도 하다. 그런데 날씨가 꽤 춥다. 햇살은 참 좋아서 봄 같은데 여전히 영하의 기온이다. 게다가 전철 타고 가야 하는데, 드레스는 춥고 불편해서 안 될 거 같다. 뭘 입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드디어 결정했다. 아쉽지만 바지를 입고 가기로 했다. 대신에 색상은 화사하게. 신발은 편히 걸을 수 있게 굽이 없는 부츠를 신기로 했다.


몇 년 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로 나가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일절 안 하고 있다 보니 마치 처음 뮌헨 와서 어리바리하며 긴장해서 다녔던 그때로 돌아간 거 같다.


마리엔플라츠에 있는 뮌헨시청 건물엔 우크라이나 깃발이 걸려있었다. 뮌헨 오페라극장 앞 막스 요세프 플라츠엔 우크라이나를 위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약속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Y도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페라극장으로 가는 길.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있는 뮌헨 시청 (마리엔플라츠 Marienplatz에 있다)


2년 전(2020년 1월), 프라하에서 오페라에서 본 '피가로의 결혼'을 본 이후 오페라는 지루하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깨트렸고 내가 좋아하는 오페라 작품이 되었다. 이걸 생일 기념으로 다시 본다니 감회가 새롭다.


나에게 오페라는 축제와 같다. (https://brunch.co.kr/@jinseon/59) 오페라 관람은 파티에 가는 것처럼 언제나 설렌다. 최대한 즐기고 올 것이다. 오페라 공연을 평론할 정도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진 않지만, 갈 때마다 하나씩 알아가고 아는 만큼 더 즐길 수 있게 되어 좋다.


와인도 그랬다. 누구는 와인에 대해 공부부터 하고 마신다고 하지만, 난 마시다 보니 좋아하는 와인 품종이 생겼다. 마시다 보니 상황에 따라 어떤 맛의 와인이 어울리는지 나만의 기호가 생겼다.


뮌헨 와서 저녁에 친구를 만나러 나온 것도 처음이었고 친구와 오페라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늘 남편과 저녁 나들이를 나갔었고 오페라도 남편 하고만 보러 갔었다. 친구와 밤마실 나오는 것도 이렇게 좋구나! 이 새로움이 더욱 들뜨게 했다.


외출하면 기분이 이리도 좋은데, 집에 있으면 왜 나오기 귀찮은 건지. 나의 게으름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공연은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했다. 1818년에 세워진 극장으로 매년 여름에 열리는 뮌헨 오페라 축제는 아주 유명하다.


작년 이곳에서 오페라 '마술피리'를 봤을 땐, 코로나 범유행으로 봉쇄가 되었다가 잠시 풀렸을 때였다. 오페라 공연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긴 했지만, 분위기는 삭막했었다. 좌석 거리 두기로 남편과 난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어야 했었고 중간 휴식 시간도 없었고 로비에서 머물 수도 없었다.


이젠 백신 접종을 해서인지 그때보단 아주 여유로워진 모습이다. 입구에서 백신 접종 확인서를 확인했고 좌석 간 거리 두기는 없었다. 한 번이지만 중간 휴식 시간이 있었고(프라하에선 2번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극장 내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 자리가 앞자리여서 오케스트라가 보였다. 이렇게 가까이 앉아서 보긴 처음이다. 지휘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음악은 바이에른주 오케스트라(Bayerisches Staatsorchester)가 연주했다.


무대 위에 있는 자막을 보기는 힘들었지만, 음악이 잘 들리고 지휘자 표정이 잘 보여서 좋았다. 환하게 미소 짓는 지휘자의 표정이 모차르트 음악이랑 잘 어울렸다. 밝고 춤을 추는 듯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면서 행복해졌다.


한국을 떠나온 이후 누군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연주하는 즐거움을 누리진 못했다. 그래서인지 함께 연주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다. 특히 저렇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자리에서는 무대가 전체 화면으로 한눈에 들어와서 넓게 보게 되는데, 앞자리는 무대가 한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부분적으로 자세히 보게 된다.


특히 바로 눈앞에 있는 잘생긴 호른 연주자와 2명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여긴 연주자 뽑을 때 인물도 같이 보는 건가? 다들 왜 이렇게 멋지지? 잘생겨서 지휘자 다음으로 자꾸 쳐다보게 된다. 이건 절대 사심도 아니고 딴짓하는 것도 아니다. 난 앞자리에서만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최대한 살려서 오페라를 즐기고 있는 거다.


배우들의 솔로 분야 반주를 맡아 연주하는 2대의 하프시코드도 눈에 띄었다.  


피가로의 결혼 줄거리는 알아서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중간중간 대사에서 유머가 숨겨져 있는데 그건 자막 없이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번 공연은 프라하 공연에서 봤던 느낌과 많이 달랐다. 무대 세팅도 현대적이었다. 프라하 공연에선 의상이나 무대 세팅이 영화 '아마데우스'시대와 비슷했다면, 이번 공연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시대 정도 같았다.


첫 공연에 대한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프라하에서 피가로의 결혼을 봤을 땐 아기자기하면서도 이쁘고 화려했다. 2번의 휴식 시간 동안 콩트도 정말 재밌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오페라라기보단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전문가인 내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정인 거다.


뮌헨 오페라는 스펙터클을 강조한 무대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지난번 마술피리도 그렇고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번 피가로의 결혼은 살짝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합창 부분을 빼서 그런 걸까? 투란도트나 아이다처럼 웅장한 작품을 보면 다를까? 다른 오페라단에서 하는 공연은 어떨까?


얼른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합창이 들어간 오페라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같은 작품을 다른 연출가나 다른 단체가 하는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 새로운 걸 하나 더 배운 기분이다. 앞으로 오페라를 보는 재미가 한층 더 클 거 같다.




공연에 집중하지만, 다른 생각들도 자꾸 하게 된다. 난 이것도 공연을 즐기는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면서 떠오른 내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오페라를 볼 때도 솔로가 끝나면 '브라보'라고 추임새를 넣는 분들이 계셨다. 나도 언젠가는 귀명창이 되어서 '브라보'를 외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극장의 축소판으로 만든 무대에서 인형극으로 시작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무대에 문이 있었는데, 1막에서는 사람 키보다 작았는데, 2, 3막으로 넘어갈수록 문이 점점 커지더니 4막에선 사람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정도로 문이 커졌다. 새로운 막이 열릴 때마다 문이 얼마나 커졌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재밌었다. 마지막엔 사람이 개미처럼 작게 보였을 땐 웃음이 빵 터지기까지 했다.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코믹한 요소를 제공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프라하에서는 백작 부인의 첫 등장에서 부르는 솔로를 욕조에서 불렀는데, 여기선 드레스룸이었다. 무대 뒤에 진열된 백작 부인의 수많은 구두를 보니 나도 이쁜 구두를 많이 갖고 싶단 생각이 처음 들었다. 보통은 신발 모으기에 집착하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 갔었는데, 신기하게도 색깔별로 신발을 갖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됐다.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내가 노이로제가 걸렸나 보다. 잘생긴 호른 연주자가 수시로 악기를 해체해서 침을 털어내는 모습을 봤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모습이 코로나 때문에 상당히 비위생적으로 느껴졌다.


또, 1막 시작에서 피가로와 수잔나가 얼굴을 가까이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어~~ 마스크도 안 쓰고 저렇게 가까이 있다니!!' 코로나 거리 두기 빨간 경고등이 내 머릿속에서 켜졌다.


백작 부인 역을 맡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프라노 올가 베트메르트나(Olga Bezsmertna)가 커튼콜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나와서 인사를 할 땐 뭉클했다. 아직 가족이나 친척 친구 중에 누군가가 우크라이나에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슬픈 마음을 거둬들이고 노래를 부를 때 얼마나 슬펐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지구 상에 전쟁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친구 덕분에 멋진 생일을 보냈다. 오래간만에 한 외출이 좋았지만 친구와 함께 우아하게 오페라를 보러 간 밤나들이여서 더욱더 좋았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참 아름다운 밤이었다.  



백작부인 역할을 맡은 우크라이나 출신 소프라노 올가 베트메르트나(Olga Bezsmert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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