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시옹과 이누이트

설국열차, 봉준호(2013), 프란스 드 발, 침팬지 폴리틱스(2004)

by 진성욱

소비자본주의 사회는 개인과 환경을 위협한다. 과잉 생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개인은 끊임없이 삼키고 소유한다. 생산 양과 속도를 조절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는 침체에 빠지고, 경제공황은 또 다른 면에서 개인을 위태롭게 한다. 과잉 생산과 소비를 멈출 수 없는 현대 구조 속에서 환경은 파괴되어 간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 지구 반대편의 전쟁과 빈곤, 도시와 알고리즘에 놓인 나는 좀처럼 자유롭지 않다.


영화 ‘설국열차’. 인류는 2014년 7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 냉각 장치를 작동한다. 기대와 달리 지구는 급격히 빙하기에 접어든다. 이후 영화는 17년 뒤 2031년. 세계유람열차 윌포드의 열차 안에서 펼쳐지는 사람들의 대립을 보여준다. 꼬리칸의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고자 머리칸으로 향하는 커티스, 스스로 열차의 질서를 지킨다고 믿는 윌포드가 주요 인물이다.


영화 속 장면들은 현대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꼬리칸은 마치 감옥처럼 통제 된 사회인데, 커티스는 앞칸에서 보내온 총알에 담긴 빨간 쪽지를 읽고 반란을 준비한다. 사실 이 쪽지는 윌포드가 보낸 쪽지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열차의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 하에 꼬리칸 사람들을 학살한다. 윌포드는 엔진을 숭배하는데 엔진이 멈추면 질서는 사라지기에, 고장 난 부분을 꼬리칸 아이들을 착취하여 작동시킨다. 대의를 위한 희생쯤으로 여기며.


보안설계자 남궁민수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구가 점차 따뜻해지고 있으니, 열차 문을 열고 나가자는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문은 폭발과 함께 열린다. 폭발은 산사태를 일으켰고 열차는 전복되어 산산조각 났다. 폐허 속에서 그의 딸 요나는 눈 덮힌 땅을 밟는다. 남궁민수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설산을 오르던 북극곰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책 ‘침팬지 폴리틱스’. 1970년대 말, 네덜란드 아른헴 동물원에는 20여 마리의 침팬지들이 모였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이곳에서 침팬지들의 관계를 관찰했다. 소수의 수컷 침팬지와 다수의 암컷 침팬지로 이루어진 침팬지 사회. 저자는 침팬지들을 관찰하며 그들의 관계를 기록하여 공유한다. 침팬지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털을 고르며 소통한다. 그들은 자주 다투고 화해며 협력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침팬지가 다른 침팬지를 각각 구별하고, 서로 다른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암컷과 수컷, 나이 많은 침팬지와 어린 침팬지. 침팬지 사회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도 공통으로 중시되는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존중’이다. 존중은 약자가 강자를 향한 인사로 드러난다. 존중이 확인되지 않는 관계는 싸움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인사는 싸우지 않고 서로 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이며, 공생하는 침팬지 사회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신문과 사진을 통해 세계가 재현 될 때, 벤야민은 인간사회의 이야기와 지혜의 상실을 우려한다. 정보는 세계를 재현할 뿐 이야기와 지혜를 전달하기 어려웠다. 디지털화는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의 간극을 만드는 동시에,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수 없는 세상으로 만들어 갔다. 이에 보드리야는 현실과 허구를 구분하며, 물질적 현실과 본질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알고리즘은 소비사회를 재현하며, 현실세계를 빠르게 소외시킨다. 알고리즘은 허구와 현실을 구분없이 재현하고, 정보와 삶의 간극 속에서 개인은 혼란에 빠진다. 시뮬라시옹은 가상세계의 전체를 이루고, 재현되지 않은 현실세계는 삶의 중심에서 점차 멀어져 간다.


7인의 반란. 열차 청소부였던 이누이트 여성은 사람들을 이끌고 열차를 뛰어 내린다. 열차안에서 그는 청소부로 불지만, 그는 스스로 이누이트 사람이라 생각했다. 개인의 존중과 존재가 사라져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지혜이다. 그들은 결국 설산에서 얼어 죽는다. 윌포드를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비웃음의 대상이지만, 열차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에게 이들의 죽음은 방향이 된다.


눈과 더불어 살았던 이누이트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사냥을 하고 집을 짓고 살았다. 자연과 동물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던 아메리카 원주민은 자연과 동물을 존경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았다. 소비자본주의가 개인과 자연을 위협하고 가상현실이 현실세계를 소외하는 가운데, 존중과 지혜를 찾아 물질세계에 재현하는 역할이 현대인의 숙제로 남겨져 있다. 용기있던 자들의 삶과 죽음을 뒤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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