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너머의 빈 공간
조각가 호르헤 오테이자(Jorge Oteiza)는 스페인 내전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바스크 문화와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바스크 동굴에서 원초적인 힘을 발견한다. 어둠 깊이 실재하는 동굴, 벽면에 그려진 동물 그림은 그가 찾던 바스크 민족의 유산이며 정신이었다. 오테이자는 큐비즘을 통해 물질의 형태를 해체하고, 해체로 드러나는 공간에 주목한다. 근대 조각은 더이상 세계의 외양을 재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양과 내포된 의미를 구분했고, 조각가는 자신의 생각을 물질을 통해 표현했다.
그는 고야를 동경했다.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Goya)는 나폴레옹 군대의 잔혹함과 스페인 민중의 고통과 비애를 그림으로 남겼다. 오테이자는 시대의 비극을 직시했던 고야의 강인함을 따랐다. 이러한 방향성은 동료 에두아르도 칠리다(Eduardo Chillida)와 구분됐다. 칠리다는 자연과 공간이 드러나는 작업을 했는데, 그는 조각을 통해 자연과 실존에 대해 질문했다. 오테이자는 실재하는 물질 너머 인간의 정신과 영혼에 대해 말하고자 했다. 그의 미학은 물질이 아니라, 빈 공간에 있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개관 했을때, 오테이자는 ‘사치스러운 디즈니랜드’라고 비판했다. 그는 구겐하임 미술관 건립에 반대했고,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도 거부했다. 그는 대신 빌바오 파인아트 미술관(Bilbao Fine Arts Museum)에서 활동했다. 빌바오 미술관은 1908년 건립 된 미술관으로, 바스크 지역의 전통과 정체성을 중시했다. 2024년 파인아트 미술관은 세번째 증축을 시작했다. 설계는 두번째 증축을 진행했던 스페인 건축가 LMU(Luis María Uriarte)와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Noman Forster)가 맡았다.
2003년 오테이자는 9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는 동안 전쟁과 경쟁이 반복됐고, 기술과 예술은 급변했다. 그가 만년 전 동굴로 향했던 것은 이러한 시대변화의 반동이었다. 자연의 재료와 사람의 손으로 그린 동굴 벽화는 인간의 삶과 예술에 대해 말했다. 실재와 허구,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오늘날.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물질 너머 빈 공간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