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트루 Feb 02. 2021

아이를 키운다는건 불완전함의 연속

자고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엄마역할을 하기까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불완전함의 연속이다.


계획대로 되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밤 8시에 재우고 밤 9시면 가뿐히 밖으로 나와 또 조금 책을 보고 글을 쓰고 기획을 하다 잠에 들려 했는데

9시가 넘도록 동화책을 내 얼굴 끝까지 들이밀며 울고 보채는 아이와 마주한 채 진이 빠져 버렸나 보다.

안자고 뭐하니 밤이 깊었는데

겨우 설득하기를 몇 번 토닥여 재우고 나니 벌써 시계가 밤 10시를 가리킨다.

소파에 스르륵 누워 책을 좀 보다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졸음이 급격하게 몰려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신랑을 부르고는 신랑은 식탁에 나는 소파에 앉아 급하게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주 5일 꼭 지키기로 약속한 성경 읽기.

창세기 22장~ 24장까지 유튜브를 켜고 드라마 바이블을 틀어 1.25배속으로 듣는다.


성경을 들으니 더 눕고 싶다. 말씀이 주는 그 강인한 평강이 내 영혼 깊숙이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결국 밤 11시를 채 넘기지 못하고 침대 맡으로 향한다.


아이와 분리 수면은 성공하지 못했다. 

아기는 자다가도 굴러 내 곁으로 왔고 때로는 내 겨드랑이 밑으로 때로는 내 허벅지에 자기 얼굴을 꼭 붙이고 잠이 든다. 아주 가끔 손을 잡거나 내 팔을 간질간질 손으로 비비거나.. 그런 과정 가운데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았다.


이제 걸을 줄도 알고 문을 열 줄도 아는 아기는 자다가도 옆구리가 허전하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에서 새벽 즈음 문을 열고 걸어 나와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아기 옆에 눕는다. 슥슥 아기의 고른 숨소리와 따뜻한 체온에 가만히 얼굴을 기대어 보다가 내가 어쩜 이렇게 예쁜 걸 낳았을까 혼자 행복에 겨웠다가 다시 자리에 눕고는 이내 잠으로 빠져든다.


아기가 통잠을 자는 날은 나도 참 개운한 날인데 어젯밤 새벽 1시에 또다시 벌떡 일어난 아기는 온 집안을 유령처럼 헤매고 다녔다. 세상 이렇게 무거울 일인가. 좀처럼 눈꺼풀을 뜨지 못하고 귀동냥으로 아기의 상황을 인지하는데 그런 아기를 쫓아다니며 다시 어르는 신랑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 서로 한 발자국씩 양보 해 가는 것 같다.

처음 만난 낯선 양육의 긴 터널 가운데 그 끝이 보이지도 않는 남녀의 역할 차이에 서로에게 분노하던 우리가 조금씩 알아서 타협을 해나가는 중이다.


그는 나를 깨우지 않았고 나도 그 덕분에 설 잠이지만 그래도 이어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처녀 때는 그렇게도 잠의 소중함을 몰랐는데, 정말 아이를 낳은 그 순간부터 잠은 가장 쟁취하고 싶고 많이 확보하고 싶은 카테고리가 되어 버렸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은 뜨고 싶지 않아 꼭 감고 있는데 이런.. 새벽 6시밖에 안됐는데 요 녀석 또 기상한 모양이다. 혼자 꿍시렁 대며 침대 밑으로 내려가 책을 보고 (어둠 속에서) 혼자 올라갔닥 내려오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이내 지겨워졌던지 책으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아 진짜 더 자고 싶다.


내면의 나는 계속 내게 모른 척하라고 말하지만

엄마인 나는  " 우리 이준이 일어났어?" 잘 잤어? 라며 부드럽게 말한다.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나는 가장 위대한 연기자가 되었다.

내 욕구는 아주, 가뿐히 무시한 채 아이에게 맞추는 일.

내 모든 욕구를 저 깊숙한 곳에 던져놓고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 곁을 따뜻하게 지켜 내는 일.


TV  화려한 모습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평범  자체의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비교되어 

가슴이 쿵 내려앉다가도


그 무엇과도 바 꿀 수 없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자면

정말 복을 오지게 쏟아붓도록 받았다 생각하고는 한다.


이제 한 50퍼센트쯤 엄마가 된 것 같다.

나머지 50 천천히 채워 나가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토요일 외출예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