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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트루 Mar 27. 2018

01. 회사를 떠나려는 나는 커리어우먼입니다.   

회사가 아닌 나 자신으로, 내가 주체가 되어 일할 수 있을까?


회사생활 10년 차, 나를 돌아보다.  

공교롭게도 82년생 '김지영'씨는 홍보회사를 다녔다. 2008년~2012년 내가 머문 그 4년은 홍보회사의 업무량이 절정을 이루던 때였다. 개인보다는 조직이 성과가 중요했고, 철저한 을로 지내며 클라이언트 눈치 보며 밤낮 없는 야근에 특근까지.. 이 책은 어쩜 생생히 그 시절을 묘사해 놨는지 마치 저 멀리 던져진 과거의 나를 마주 하는 기분이었다.


처절한 공감을 경험한 탓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두 뺨을 타고 내리는 눈물이 생경했다. 요 몇 년간, 잘 울지 않았었는데.... 메마른 감정의 둑이 무너진 듯 한 참 마음이 먹먹했다. 그리고 나 혼자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에 용기를 얻는다.  그러면서 문득, 한국사회에서 온갖 차별을 당하면서도 신중하고 정직한 선택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모든 김지영들에게 또 다른 선택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했던 지난 10년의 나는?


지금으로부터 꼭 10여 년 전 나는 PR업계에 발을 들였다. 정말 PR이 하고 싶었다. 좋은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는 일이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2008년에 입사해 2012년에 홍보회사에서  일하며 야근과 특근에 시달렸다. 정시 퇴근하는 날들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오전 9시~6시를 기준으로 보자면 워킹타임은  족히 8년은 되고도 남는 시간들이었다.

 

그 시절엔 정말 영혼과 진심을 담아 일을 해냈다. 특별히 이제훈-한효주 러브스토리를 테마로 하는 삼성카메라 PR이 너무 즐거웠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회사가 부여한 <과장>이라는 직급에 걸맞게 행동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열심히 기사를 읽었고 분석했고 치열하게 기자들에게 연락을 하고 만나고 제품을 알리고 발로 뛰며 행복했다.



2012년 삼성카메라 광고 촬영 현장에서. (이제훈씨와 눈마주치고 수줍..)


필리핀관광청 PR은 또 어떻고... 나보다 족히 스무 살은 더 많은 기자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났던 4박 5일의 팸투어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그들에게는  수많은 팸투어 중 하나로 기억하겠지만 내가 PR 하는 필리핀을 함께 느끼고 경험했던 순간들.. 어쩌다 한번 점심을 같이 먹으며 미팅을 하는 만남보다 4박 5일을 꼬박 함께하니 서로의 인간적인 모습들에 매료되었던 순간들...


필리핀관광청 관광부 장관 방문, 오래전 추억을 꺼내본다.


그땐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면이 약해지고 온라인이 각광받는 요즘 시대를 보자니... 그 시절, 함께 비즈니스 트립을 다녀온 후 매주마다 동아일보, 한겨레 등 유수 지 지면 한 면에 <필리핀>이 소개됐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아마 PR 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경험이지 싶다.


내가 맡은 클라이언트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퍼포먼스이고 내 책임이었다. 에이전시 특성상 수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됐고, 기존에 맡고 있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업무 수행은 기본적으로 잘 해내야 했다.


대국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은 날카로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나보다 2살 많은 (지금은 그 회사의 과장급으로 성장한) ㅎㅈ씨와 함께 단 둘이 페스티벌 홍보를 맡아 일했다. 7월 한 달 간의 페스티벌을 위해 6월부터 8월까지 거의 3달간 정말 가슴 졸이며 일했던 시간들이었다. 서른 명이 조금 안 되는 수의 기자들과 함께 대구로 2박 3일 출장을 갔어야 했는데 인력은 부족하고 챙겨야 할 인원들이 많아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기자 수는 상대적으로 많은데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뮤지컬이 다 달랐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후  플레이빌 매거진에서 Contributor로 소개했다.



식사를 하는 것도 그리고 현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준비하고 참석자와 기자들을 챙기고 점검하는 것도 우리 둘의 몫이었다. 그 많은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해냈는지 참 신기할 정도였다. 그 후에 그 회사를 나와 종종 만남을 가지면 항상 우리 둘은 2010년 여름을 안주삼아 이기를 쏟아 놓곤 했었다. 무턱대고 사전에 예고도 없던  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인터불고 호텔 로비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소위 갑질 하던 S일보 기자를 진정시키느라 진땀 뺐던 일화는 이제는 추억이지만..



한경희생활과학 홍보팀장으로 이였을 당시, 세계여성이사협회 PR 도 같이 진행했다.






앞으로의 10년, 나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참, 매 순간 만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했다.


사람들은 묻는다.


홍보마케팅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물론, 순간이 도전이었고 매 순간 나와의 싸움이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들어가 삼성전자 본사 마케팅팀 앞에서 내가 작성한 PR 계획을 브리핑할 때 나는 29살 먹은 꽃 다운 나이였다. 갑작스러운 요청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내게 <넌 할 수 있어>라며 다정한 눈길로 바라봐준 내 사수는 어떻고. 그녀의 지지가 있었기에 그날의 브리핑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을 경험한 아무개 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치열하게 겪은 뒤 나는 서른 하고도 무려 다섯 해를 더 살고 있다.


그렇게 사회에 첫 발을 들인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8년 25살의 푸릇푸릇한 청춘의 아가씨는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가 진정 원하던 삶이었는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PR 하거나'

'CEO를 PR 하거나'

'브랜드의 제품을 PR 하거나....'


그렇게 PR 담당자로서 회사와 CEO 그리고 브랜드 뒤에서 보이지 않게 조용한 전쟁을 벌여왔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들 혹은 그것을 위해 울고 웃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그들의 화려함 뒤에 조용히 살아온 탓에 내가 나의 것을 무언가 해보려 했을 때 그 시도 자체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어색하다. 늘 남의 이야기들만을 글로 써왔기 때문인 걸까. 내 얘기를 쓴다는 게 왜 이리 어색한지 모르겠다.


To be conti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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