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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10. 2020

숲으로 들어가는 나이

나이 50에 만난 제주



나이 50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50이란 나이의 문턱에 걸려 넘어졌다.

짙은 안개가 몰려들며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아득해진 심정으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1등 만을 위한 잔치가 열리는 세상에서 나는 아직 신기루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모습이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몸은 여기저기 빨간 불이 켜졌고, 수명이 다해 쓸모없어진 스마트폰의 배터리와 같은 신세가 되어 있었다. 당장 속도를 멈추어야만 했다.


백세 시대 인생에서 쉰 살은 삶이 전환되는 나이다.

인생이 반으로 꺾이는 시점에서 삶을 직시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죽음과 함께 남은 생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뇌경색으로 쓰러진 친정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늘 최고가 되기 위해 자신을 들볶으며 세상과 타인의 옷을 걸친 나는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한파가 지속되는 겨울이면 손님처럼 찾아오는 가벼운 우울증이 나이만큼 깊어졌다. 따뜻한 햇살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인도에서는 50세를 '숲으로 들어가는 나이'라고 말한다. 사회와 가정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찾아가는 나이'라는 뜻이다. 줄곧 도시 사막에서 거친 모래바람 속을 헤매었으니 나도 이제는 나의 숲을 찾아 쉬고 싶었다. 하지만 가속이 붙은 나는 마음 따로 몸 따로 그렇게 3년의 시간을 더 보태고서야, 30년의 세월을 바친 직장에 명퇴서를 제출했다.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꿈꾸며 함께 열정을 바쳐온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내겐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올레길에서 만난 유채꽃


내가 인생의 위기 속에서 제주 섬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00년대 해외여행의 봇물이 터지면서 잠시 잊히긴 했지만, 세계를 돌다가 지칠 때쯤 나는 남풍을 타고 들려오는 올레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제주도의 지도를 바꿔놓은 올레길은 직장생활 말년에 나의 숨통이 되어주었고, 나는 점점 제주에 빠져들었다. 누군가 올레 중독의 종착점은 제주 이민이라고 말하더니,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서귀포 시내의 조용한 단지에서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를 발견하였다. 꿈에 그리던 제주 섬에 작은 둥지를 틀었다.


  "웰컴! 웰컴!!"


이른 봄, 바닷가에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이 사방에서 손을 흔들며 환영하였다.

파랑과 노랑의 색채 대비가 발걸음을 경쾌하게 응원하였다. 올레 리본을 따라 간세처럼 느리게 걸으며 바라본 제주는 그동안 내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 바로 천국이었다.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은 온몸의 세포를 하나씩 깨우며 행복물질 세로토닌을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나는 조금씩 기운을 차렸고, 서서히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제주는 주저앉은 나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다.



서건도와 범섬이 보이는 올레길



삶은 여행이다.

길을 잃고 헤매던 쉰 나이에 간절하게 찾은 나의 숲 제주에서 나는 인생 2막이라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였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이제는 진정으로 가볍게 또 느리게 살고 싶었다. 제주도민이 되어 한라산의 너른 품 안에서 올레길을 맘껏 걸었다. 지난날은 위로받고, 덤으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숲으로 들어가는 나이, 제주는 천천히 오래도록 걷고 싶은 나의 인생 숲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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