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떠나요

2022 유럽여행 프롤로그

by Lara 유현정



용감한 건가, 아니면 무모한 건가.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로 돌아선 지금, 나는 여행을 떠나겠다고 짐을 꾸리고 있다. 모든 건 다 스페인의 휴양지 마요르카의 숙소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에서 머무는 동안 딸아이가 들떠서 보여준 풀빌라 사진을 보고, 꺄악! 비명을 지른 게 발단이었다. 딸아이는 친구와의 여행을 계획하며 숙소를 서핑하다가, 너무 마음에 든다며 내게 자랑을 . 그런데 나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나 보다. 딸아이가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엄마도 같이 갈래?"

"어? 친구랑 간다며? 어.. 근데 내가 가도 돼?"


급작스런 질문에 뇌가 몹시 혼미해진 나는 말을 더듬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친구와 둘이서 떠나기로 한 여행에 친구의 남편이 합류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라 쿨하게 셋이서 가기로 했지만, 부부가 낀 숫자 3은 누가 봐도 관계의 균형이 많이 기울었다. 딸아이는 친구랑 내가 아는 사이이니, 반응이 좋은 나를 끼우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싶었 보다. 나는 이리저리 자를 재보지도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콜!"을 외쳤다. 그렇게 얼떨결에 합류를 결정해 놓고는, 천천히 하나 둘 되새김질을 하게 되었다.


제주 공항




그러니까 해외여행은 프라하가 마지막이었다.

햇수로 꼭 3년 만이다. 그동안 여행이 고팠던 건 사실이다. 게다가 큰 딸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난생처음이었다. 작은 딸과는 여행의 기회가 많았지만, 에서 인기가 많은 큰 아이는 늘 친구랑 놀러 다니기 바빴다. 애당초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그러니 이번처럼 기회가 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얼른 움켜잡아야 한다. 살면서 자식과 시간을 나누는 것만큼 소중한 추억이 어디 있겠는가. 현생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인연은 어디에도 비견할 수 없을 테니까.


여행을 준비하기에 세 달은 넉넉한 시간이었다. 더구나 젊은이들이 계획하는 여행이니만큼, 내가 준비할 건 크게 없을 터였다. 나는 마음이 느긋해져 다시 제주로 돌아가 민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딸아이는 서울에서 카톡으로 틈틈이 나를 챙겼다. 숙소와 일정을 확정하는 속속 내게 컨펌 메일을 보냈고, 차일피일 미루던 코로나 백신도 3차를 완료하게 했다.(그러나 유럽은 8월부터 모든 규제가 폐지되어 코로나 예방접종 증명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슬슬 수영복을 고르고, 날씨를 살펴가며 옷가지만 챙기면 되지 싶었다.


그런데 파리의 숙소를 정할 때였다.

처음의 계획이 다소 변경되면서 마요르카를 제외한 도시는 친구와 따로 숙소를 게 되었다. 우리는 딸아이의 바람대로 먼저 강변에 머물 생각이었다. 마침 퐁네프 다리 옆에 강변 뷰를 자랑하는 호텔이 딸아이의 레이더 망에 걸려들었다. 딸아이는 흥분해서 내게 바로 카톡을 보내왔다. 허걱! 방값이 말도 안 되게 비쌌다.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가격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뜸을 들이자, 딸아이가 자기의 로망을 충족시키는 최고의 뷰라며 재촉을 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센 강은 작은 개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흠, 가격이 부담스러운데ㅜㅜ"

"엥? 엄마는 왜 이렇게 낭만을 몰라?? 갈래!!!!!!!!!!!! 갈 거야!!!!!!!!!!"


최대한 완곡하게 답장을 보냈건만, 딸아이는 당장 쳐들어올 기세로 몰아붙였다. 그런데 너 지금 낭만이라고 했니? 기가 막혔다. 나만큼 낭만적인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갑자기 미국에 있는 작은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여행을 다니며 단 한 번도 갈등이 없었기 때문이다.(사실은 나중에 알고 보니 표현을 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런데 큰 아이는 숙소부터 삐그덕 거리는 게 아닌가. 앞으로 두 주간 펼쳐질 여행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찾아온 최초의 위기였다.


그날 밤 나는 낭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낭만이 시대를 반영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도 세대차이가 나는 것이다. 베이비부머에게 낭만이란, 소박하게 자연을 여유있게 누리는 삶과 닮았다. 하지만 그 자녀인 에코부머들은 도시적 성향이 강하다. 도시에서의 낭만은 예쁜 카페나 전망 좋은 호텔에서 누리는 휴식과 힐링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발시대를 건너온 베이비부머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여행 경비 아끼는 걸 미덕으로 삼는다면,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난 에코부머들은 자신의 취향에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 곧 낭만이기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딸아이가 카톡에 쏟아낸 느낌표의 개수만큼이나 강렬한 열망이 전해졌다. 모든 비용을 더치페이하기로 해놓고선, 내가 너무 구태의연하게 내 방식을 주장하려 하고 있었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이참에 새롭게 젊은 낭만을 맛보며 여행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후 모든 결정은 딸아이의 뜻대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파리도 마요르카도 바르셀로나도 아니고, 구석구석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이윽고 나는 여행 짐을 챙기러 제주에서 서울 집으로 날아왔다. 딸아이는 수영복부터 챙겼다. 나랑 커플로 입고 싶다고 했다. 체격이 비슷한 우리는 이것저것 서로 바꿔가며 입어 보았다. 덕분에 나는 수영복을 비키니와 원피스에 래시가드까지 챙겨가게 생겼다. 급히 영양제와 여행용 수채화 도구도 주문했다. 물품이 도착하자, 딸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얘야! 여행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는 , 이 엄마의 오랜 로망이다.


그날 밤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뜨 파파>를 보았다. 정년퇴직한 한 미술교사가 젊은 날의 꿈을 안고 파리에 가서, 한 달간 몽마르트르 화가가 되어 본 이야기다. 그림을 한 점도 팔지는 못 했지만, 그림은 팔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전시회를 열었다. 감독인 아들의 도움으로 영화까지 개봉하게 된 그는, 파리에 가기 전과는 크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야


내가 좋아하는 간디학교의 교가 가사가 떠오른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꿈을 꾸면서 살아야 한다. 사람은 꿈을 꿀 때 젊어지고, 꿈꾸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도 그만큼 아름다워질 것이다. 몽마르트르의 화가로 지내면서 날마다 벅차고 행복했던 그는 파리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짙은 짧은 시이었지만, 꿈을 이룬 그의 삶이 얼마나 풍요로워졌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여행에 단지 그림 하나를 끼워넣은 내가 이렇게 설레는 걸 보면 말이다.


내게 글과 그림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 쓰는 틈새에 고양이와 마라톤 그리고 여행을 즐겼다. 나는 딸아이의 책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살피다가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감성 에세이집을 꺼내 들었다. 여행 도중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서 간간이 하루키의 문체를 만나는 것은, 내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 틀림없었다. 여행가방에 책과 그림 도구를 챙겼다. 여행에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하나 둘 끼워넣을 때, 나만의 특별한 여행이 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천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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