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002년이었다.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대망의 월드컵을 치르고 나서, 나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유럽을 찾았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교사들을 대상으로 모집하는 투어에 작은 딸을 데리고 참가했다. 서유럽의 5개국을 돌며 도시마다 단체와 자유 여행을 병행하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만 전문 가이드가 따라붙었고, 베르사유 궁전과 오르세 미술관, 센 강 유람선을 단체로 탄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정은 모두 자유 여행이었다. 나는 자유로 주어진 하루를 모네의 지베르니에 할애했다.
모네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미술관에서였다.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미술관에서 유독 모네의 작품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다른 그림을 향해 진도를 나가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달려가곤 했으니까. 그림은 태양이 녹아내릴 것처럼 이글거리며 열기를 뿜어냈다. 흰구름의 붓터치가 빙글빙글 돌아서 현기증이 났다. 들판에 초록 양산을 쓴 여인이 얇은 베일 속에서 나를 쏘아보는순간, 나는 모네의 열정과 사랑에 감염되고 말았다. 원화의 라이브가 주는 감동이 이런 거로구나!
모네, 산책(파라솔을 든 여인) 1875
파리에서 시차의 선물은 항상 느지막이 아침을 시작하는 딸아이에게도 공평하게 배달되었다. 우리는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동네 빵집을 순례하였다. 딸애와 함께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뒷골목을 누비는 발걸음이 통통 튀었다. 고소한 깨가 잔뜩 뿌려진 갓 구운 바케트와 입 안에서 살살 녹는 크루아상을 사 와서, 전날 슈퍼마켓에서 사둔 사과와 샐러드, 호텔에서 제공하는 카페라테로 프랑스식 아침을 차려 먹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방마다 작은 주방을 갖고 있어 여러모로 편리했다.
파리에서의 첫날은 느긋하게 보낼 참이었다. 하지만 파리 교외에 위치한 지베르니의 일정을 잡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보다 뒤늦게 파리에 입성하는 딸아이의 친구 부부를 만나는 날을 제외하고, 번잡한 주말을 피하면서 날씨까지 화사한 날을 살펴보니, 당장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었다. 아직 예약도 안 했는데 오전 시간을 허비한 상황이라 시간이 빠듯했다. 하지만 서두르면 못 갈 것도 없었다. 부랴부랴 예약 사이트 (입장권 seetickets.com/기차표 omio.co.kr)를 뒤졌다. 모바일티켓을 들고 쌩라자르 역으로고!
20년 전 작은 딸과 달리던 기차에 큰 딸과 함께 탑승했다. 우리가 오르자마자 기차가 출발했는데, 이는 베르농-지베르니 역 노선인 17번 플랫폼에 들어서기까지 잠시 헤맸기 때문이다. 기차 노선에 따라 출입구가 달라 초입에선 아예 입구의 바가 열리질 않았던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다가온 파리의 신사가 우리를 이끌었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스스로 다가오는 놀라운 친절이었다. 20년 전 지베르니에서 기차를 놓칠까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를 기차역까지 태워주려 했던 남자의 따뜻한 마음이 오버랩되었다.
베르농 역에서 왕복 10€의 꼬마기차를 타고 지베르니에 도착했을 때는 입장권을 사려는 길고도 긴 행렬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약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땡볕 아래서 긴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수많은 정보가 sns를 타고 흘러넘친다. 그러나 유럽은 아직도 많이 느렸다. 파리를 출발하자 인터넷이 3G로 바뀌어 인터넷이 잘 안 되었었다. 그나저나 모바일 티켓 입구를 찾는 것이 관건이었는데, 마침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젊은 한국인 부부가 헤매는 우릴 알아보고 친절히 알려주었다.
초록 문을 눈여겨보세요!
자연을 사랑한다면 누군들 좋아하지 않을까마는, 모네는 녹색을 사랑했다. 그가 살던 집은 문과 창문이 모두 초록 색이다. 모바일 티켓의 입구도 초록 문이 힌트였다. 그러니까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만났다면 그 입구를 지나친 것이다. 줄 뒤로 다시 가서 초록 문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된다. 조금 걷다 보면 다른 초록 문 입구가 나타난다. 기다리는 줄이 없어서 1분 만에 만사 오케이로 통과되었다. 모바일 티켓이 곧 vip 패스인 셈이다.
쌩라자르 역
모바일 티켓 입구로 들어서는 골목길
꽃의 정원으로 들어섰다. 꽃과 나무들이 20년 전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커다란 자귀나무에 달린 붉은 꽃이 제 철을 맞아 싱싱했다. 핑크색 벽과 초록색 창을 가진 2층 집은 정원 속에 녹아들며 한 편의 그림이 되었다. 모두 모사품이라지만, 집안에 걸린 그림들도 훌륭했다. 첫 부인 카미유가 죽고 나서 알리스와 재혼하며 8명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주방과 식당의 인테리어도 볼 만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자꾸 창가에 서성이며 밖으로 향했다. 모네의 말년 인생을 가득 채운 수련 연못에 다다르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우리는 집을 빠져나와 가까운 기념품 샵에서 수련이 그려진 쟁반을 고르고, 물의 정원으로 서둘러 갔다. 지하도를 지나 개울을 건너자 연못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로 딸아이가 원피스를 나풀거리며 앞장서고, 함께 맞춰 입은 내가 뒤를 따랐다. 딸아이는 피크닉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원피스를 차려입는다. 딸과 함께 코디하고 길을 나서는 기분은 모녀만이 누릴 수 있는 은밀한 즐거움이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짠하고 연못이 나타났다. 나룻배를 타고 다닐 정도로 규모가 큰 연못을 둘러싸고 산책로에는 각종 나무와 꽃이 만발했다. 쭉쭉빵빵 위로 솟구친 미루나무가 먼저 눈길을 잡아끌었다. 큼직한 백일홍이 툭 튀어 오른 자리엔 털이 수북한 꿀벌이 날아와 안기기도 하였다. 물 위에 가볍게 동글동글 자리를 깐 수련은 때를 맞춰 붉거나 하얀 연꽃을 피워내며 연못의 주인공 역할을 해냈다. 꽃의 정원은 봄이 절정이었겠지만, 물의 정원은 연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여름이 절정일 터. 나는 지베르니를 두 번 다 여름에 방문하였으니, 도저히 이 수련 연못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일본식 다리가 있는 반대편으로 연못을 가장 멋지게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다다랐다. 20년 전 작은 딸과 앉았던 그 벤치에 큰 딸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았다.곁에는 수령이 오래된 굵은 버드나무가 가는 가지를 길게 물가로 늘어뜨리고 연꽃과 소곤거리고 있었다. 살살 바람이 불어오자, 살랑살랑 그네를 타며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나는물의 정원에서 버드나무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주연인 연꽃보다 더 비중이 큰 조연이라고나 할까. 버드나무 그늘이 없는 모네의 연못은 그림자가 없는 인간처럼 상상할 수가 없다.
날이 쾌청하다 못해 오후의 햇살이 따가웠다. 청명한 하늘 높이 뭉게구름이 두둥실 놀러 나왔다. 물의 표면으로 녹아든 자연은 시시각각 장관을 연출하며 아름다운 빛을 뿜어냈다. 나무와 꽃, 하늘과 구름, 햇살과 열기, 관광객들의 탄성과 모네의 영혼마저 녹아들었다. 잔잔한 호수 수면의 물결을 따라 평화와 고요가 번져나갔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물아일체가 되는 벅찬 순간이었다. 정원을 손질하다 시간이 날 때면, 하염없이 연못의 향연을 즐겼을 모네가 한없이 부러워졌다. 이토록 완벽한 아름다움을 화폭에 옮기지 않고는 그 열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으리라.
지베르니, 물의 정원
지베르니는 나의 이상향이다. 나의 영혼이 쉴 곳을 찾아 헤매는 바로 그런 곳 말이다. 자연과 예술이 함께 성장하고 꽃을 피우는 곳,자신이 기거하는 집이 바로 그런 곳이라니, 내가 화가 중에서 모네의 삶을 가장 동경하는 이유다. 양로원에서 온 듯한 미국의 노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아쉬운 마음에 연못을 한 바퀴 더 돌아보았다. 그리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내 마음의 한 조각을 떼어 그 벤치 위에 살짝 올려놓았다. 불현듯 지베르니가 그리운 날에, 그 작은 마음을 불러내어 함께 추억을 즐기리라!
지베르니의 마지막 여정은 마을 초입 카페에서의 정찬이었다. 어디서나 달려드는 꿀벌 때문에 사과 한 입도 콜라 한 잔도 마음 놓고 마실 수는 없었다. 사실 지베르니 정원의 숨은 공신은 꿀벌들이니 용서를 해야 했다. 우리는 병째로 콜라를 내어주고 서둘러 이른 저녁을 마무리했다. 하루 종일 따가운 햇살이 딸아이의 하얀 피부를 익히며 고통도 안겨주었다. 하지만 같은 추억을 안고 철로를 달리는 귀로는, 지친 다리를 끌며 달콤한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문 듯한 나른한 행복감으로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