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몽마르트르를 가고 싶은데, 딸아이는 호텔 주변의 라탱 지구 골목을 돌겠단다. 쇼핑을 하다가 카페에서 런치를 즐기고, 셰익스피어 헌 책방에서 그림책을 사고 싶어 했다. 순간, 벌써 찢어지는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어제저녁의 분위기가 이어진 거라 생각하면,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어젯밤 딸아이는 대뜸 내게 한 마디 쏘아붙인 것이다.
"엄마는 장보는 게 싫어?"
"어? ‥‥"
나는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이미 감정이 상한 걸 아는데, 서로 오해를 풀려는 노력이 오히려 감정의 실타래를 더 꼬이게 만들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시간이 약이다. 스스로 기분을 누그러뜨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샤워를 하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필름을 되돌려 보았다.그러니까 지베르니의 일정을 잘 마무리하고 파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베르농 역에서 완행을 잘못 타는 바람에 잠시 당황했지만, 딸아이의 기지로 바로 다음 역에서 급행으로 갈아타고 쌩라자르 역으로 되돌아왔을 때였다.
역사에는 제법 큰 슈퍼마켓이 있었다. 우리는 아침에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야채와 샐러드, 샌드위치가 눈에 띄게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좋아 보인다고 다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여행 중이었다. 남는 것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기는 싫었다. 결국 딸아이는 모두 쓰레기통으로 던질 것이 뻔했기에, 나는 가능한 한 최소한만 살 요량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많은 딸아이는 구경할 게 많아 신이 났고, 이것저것 사서 맛도 보고 싶어 했다. 나는 간단하게 요구르트와 샐러드만 챙기며 가자고 서둘렀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서로 어긋난 것일 게다.
여행자의 시간은 유한하다.
젊은 딸아이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더 그렇다. 앞으로 파리에 다시 올 기회가 적으므로 계획했던 곳은 다 둘러봐야 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함께 여행을 간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르거나 감정이 어긋나면 난감해진다. 의견을 조율한답시고 실랑이를 하며 허비할 시간도 없다. 이럴 때는 잠시 헤어지는 게 답이다. 매번 같이 다닐 필요는 없다. 쿨하게 각자의 시간을 가지면 된다. 그러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때, 다시 상대를 인정하며 받아들일 여유가 생겨난다. 그래야 서로에게 큰 불만이 남지 않는다.
나는 전날 사둔 티켓(까르네, 10장묶음)을 들고 구글맵이 안내하는 길을 나섰다. 퐁네프를 건너고 도로를 따라 걸어서 85번 버스 시간에 맞춰 여유 있게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구글맵은 신이 아니었다. 경로는 잘 맞췄는데 버스의 배차시간은 오차가 컸다. 버스가 방금 떠난 듯,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난감했다. 이제 와서 지하철을 타러 갈 수도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구글맵도 아직은 한계가 있으니, 맹신은 금물이다.
몽(언덕)마르트르(순교자)에 우뚝 솟은 사크레 쾨르(성심) 대성당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 구글맵이 추천한 경로는 걷는 거리가 짧고, 경사도 완만해서 그나마 용서가 되었다. 내가 들어선 골목은 천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서울 광장시장의 포목점이 길가에 죽 늘어선 느낌이다. 곧이어 회전목마가 있는 작은 공원이 나타났고, 성당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넓고 가파른 계단에 모여 앉아서 파리 시내를 감상하고 있었다. 잔뜩 흐린 하늘이 시내를 뒤덮었지만, 평탄한 지형과 야트막한 스카이라인이 시야를 넓게 확장시켰다. 고작 130m의 언덕이 꽤나 높게 느껴졌다.
보불전쟁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성당을 향해 계단을올랐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팝송이 들려왔다. 성당 바로 앞 계단에서 흑인 가수가 기타를 메고 흥겹게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성당의 왼쪽 문으로 입장하여 내부를 구경하고, 잠시 긴 의자에 앉아 묵상을 하다가 오른쪽 문으로 나올 때까지도, 그의 노래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한 백인 여성이 그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으려 하자, 노래를 부르며 다가가서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어주기도 했다. 팬서비스가 만점인 그에게 나는 지갑의 동전을 모두 털어서 바구니 안에 넣어 주었다.
몽마르트르 아래의 파리 시내 전경
오늘 나의 최종 목적지는 화가들의 거리인 테르트르 광장이다. 하얀 돔과 파리의 시가지를 뒤로 하고, 성당에서 왼편으로 돌아가자 광장이 나왔다. 초입엔 지베르니에서도 보았던 꼬마기차가 사람들을 태우고 잠시 정차해 있었다. 카페와 기념품점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인파를 헤치고 들어서자, 스퀘어 모양의 광장이 나타났다. 그림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화가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모델은 대부분 아이들이었다. 자녀를 데리고 여행을 나선 부모들이 특별한 추억을 기록하며 애정을 건네고 싶은 마음은 동서양이 똑같아 보였다.
요즘 초상화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잡아내 부각하는 캐리커처가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얼굴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을 포착하는 재미는 있지만,도통 깊이가 없어서 나는 정통 인물화를 선호한다. 초상화는 얼굴에서 그 사람의 내면을 포착하는 것이 관건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목구비의 특징 너머로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성격이나 인품, 거기에 맑고 순수한 영혼까지 읽어낸다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길어낸 깊은 통찰과 표현의 기술을 겸비해야 하는 고도의 차원일 테지만.
몽마르트르에선 역시 초상화가들의 인기가 제일 좋았다. 어딘가 슬픈 눈망울을 간직한 소녀는 화폭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성숙하게 변신하였다. 먼저 모델을 끝낸 개구쟁이 소녀는 점잖은 오빠가 모델을 서는 동안,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키득거리고 있었다. 가끔은 풍경화를 내건 화가에게 관광객이 몰리기도 하였다.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니 유독 에펠탑 그림이 많았다. 다양한 계절과 날씨를 배경으로 우뚝 솟은 에펠탑은 늘 파리의 상징이었다. 나는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화풍을 담은 개성 있는 그림들이 보기 좋았다.가격도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파리 시청에서 자격을 통과한 화가들이다. 영화 <몽마르뜨 파파>의 주인공도 그 과정을 거치고 몽마르트르의 화가가 되었다.다시 광장을 돌고 성당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나는 보았다. 길 양쪽에 늘어선 카페의 지붕들 사이로 얼굴을 내민 성당의 하얀 돔을. 몽마르뜨 파파가 비가 오락가락하는 짓궂은 날씨에도 이젤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림을 완성해 나가던 장면이었다. 현실에서 영화 속 한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은 반갑고 설렌다. 나는 잠시 인파 속에 서서 미소를 지었다.
영화 <몽마르뜨 파파> 속 한 장면
파리가 달라졌어요
가장 파리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몽마르트르를 뒤로 하고, 나는 아까 오르던 길을 되짚으며 내려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은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라웠다. 과거파리의 지하철은 더럽고 악취도 진동했는데, 그때 비하면 엄청 깨끗해진 것이다. 이 정도면 앞으로는 지하철을 타도 괜찮을 듯싶었다. 나는 전철을 기다리는 청년에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를 확인하였다. 다행히도 요즘 젊은이는 프랑스어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20년 전에는 개선문 앞에서 지하철 역의 위치를 물어봤다가, 프랑스어로 말해야만 알려준다는 황당한 답을 들은 적이 있다. 젊은이가 자국어를 사랑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밤중에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여자에게 그건 문화적 폭력이고 졸렬한 갑질이었다.
암튼 다행이라 생각하며 전철을 안심하고 탔는데, 어째 좀 이상했다. 정거하는 역들이 내가 진행하며 가야 할 이름이 아니었다. 서너 정거장 더 가니까 이번에는 승객들이 모두 내리는 게 아닌가. 어라? 이게 뭐지? 몹시 당황해서 나도 따라 내렸다. 그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 가보니 제복을 입은 역무원이 보였다. 확인한 결과 노선을 반대로 탄 것이다. 에휴! 파리의 중년 신사들은 친절했는데, 젊은이는 예나 지금이나 믿을 수가 없네. 뭐, 나의 경험이 그렇다는 거다.
예상보다 늦게 다소 지친 몸으로 호텔에 돌아가 보니, 딸애는 벌써 들어와 쉬고 있었다. 혼자만의 여정이 만족스러웠는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먹구름은 깨끗이 걷히고, 새털구름 한 점 없이 완전히 맑음이다. 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모른 척 맞장구를 치며 나의 몽마르트르행을 늘어놓았다. 이렇게 잠시 쉬다가 느지막이 뛸르리 공원으로 나가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기로 합의를 봤다. 여행은 확실히따로 또 같이를 잘 조율할 때,위기도 극복하고 만족도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