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를 다녀와서 잠시 지친 몸을 뉘었는데, 피곤이 가시질 않는다. 몸은 더 누워있고 싶고 마음은 어서 일어나라고 재촉을 한다. 저녁 6시에 문을 닫는 미술관을 돌려면 지금도 늦는다고, 딸아이가 서둘렀다. 나는 겨우 몸을 일으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센 강변의 오랑주리 미술관이 있는 파리 1구역은 호텔에서 다리만 건너면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택시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택시도 크게 보탬이 되질 못했다.기사가 튈르리 공원의 중간쯤에 우리를 내려주는 바람에, 공원을 가로질러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5시가 다 되었다. 늦은 시간이라 매표소 앞에 긴 줄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해서, 두 층으로 이루어진 전시 공간에 시간을 어떻게 안배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딸애와 의논했다. 먼저 1층의 수련 연작을 간단히 훑고, 지하로 내려가 다른 그림들을 섭렵한 뒤, 문을 닫을 때까지 다시 수련을 감상하기로 하였다.
내 마음 속 보물, 오랑주리 미술관
오랑주리는 이번 파리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남게 된 미술관이다. 규모는 다소 작은 편이지만,파리 도심의 휴식처인 튈르리 공원에 위치하고 있어서 더 애정 하게 된 곳이다. 미술관에선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인상주의 예술사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지하의 전시관은 방들이 계속 이어지며 마티스, 르느와르, 세잔, 루소,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나는 많은 그림들을 지나치며 특별히 눈에 띄는 그림 앞에서 시간을 할애했다.
앙리 마티스가 가장 먼저 발길을 잡아끌었다. 대담한 색채의 매력을 풍기며 누워 있는 오달리스크(터키 황제의 시중을 들던 여자)를 그린 <붉은 바지를 입은 여인>이었다. 마티스는 말년에 파리와 걱정거리로부터 도피할 공간, 휴식을 취할 공간으로서 햇살이 아름다운 니스를 선택했다. 그런 갈망이 오롯이 반영된 것이 바로 그의 동양적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오달리스크 연작이다. 시에스타 시간의 나른한 휴식과 햇빛 가득한 관능적인 분위기 아래 화려한 벽면과 바닥 장식이 도드라진다. 예술이 삶의 안식이자 쉼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이 그림과의 특별한 만남을 위해 나는 일부러 붉은 바지를 입고 나왔다.
폴 세잔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그림도 눈에 띄었다. 요즘 우리는 파리의 마트에 들를 때마다 단단하고 예쁘게 생긴 사과와 납작해서 못생겼지만 달콤한 복숭아를 사 와 맛있게 먹곤 했다. 세잔의 작품 <사과와 비스킷>에 있는 사과 중에는 모양이 납작하여 복숭아도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영원한 본질을 담아사과 하나로 파리를 정복하겠다던 세잔의 위대한 사과를 마주하니 감회가 깊었다. 그림에서 배경이 된 벽지와 바닥의 색감과 문양이 정물화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듯하였다.
르누아르의 <복숭아>는 구도와 색감은 말할 것도 없고, 특유의 부드러운 터치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그림이다. 길고 짧은 터치를 번갈아 사용하며 구현해낸 양감으로 복숭아가 얼마나 싱싱하고 먹음직스럽던지, 손으로 만져 입에 한입 베어 물고 싶을 정도였다. 복숭아와 대조를 이루는 흰색 식탁보의 부드러운 음영과 배경이 되고 있는 벽지의 거친 터치는 지루할 수 있는 정물에 생동감을 부여하였다. 또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색채의 연금술이압권이었다.
마티스, 세잔, 르누아르의 그림들
오랑주리 미술관은 원래 루브르 궁의 튈르리 정원에 있는 오렌지 나무를 위한 겨울 온실이었다고 한다. 1914년 모네가 수련 연작을 기증하면서 공간설계에 들어갔고, 1921년 모던 갤러리로 지정되었다. 그 후 두 번의 보수를 통해 2006년 재개관되었다. 지난 파리 방문 때는 미술관이 보수 중이라 수련 연작을 볼 수 없었다. 재개관 후 들려오는 수련 소식은 내 가슴을 쓰리게 했다. 하여 수련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하였다.
공간은 그림의 크기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커다란 2개의 타원형 전시실은 오로지 모네의 수련 작품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둘레가 100여 m에 달하는 벽을 따라 수련이 가득한 연못에 하늘과 구름이 녹아들고, 버드나무 가지가 드리운 풍경이 펼쳐졌다. 벽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온통 하얗고, 천정에선 자연광이 쏟아지고 있었다. 모네가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쉼이 되길 바라며 생전에 계획한 그대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8개의 작품은 모두 같은 연못을 그렸지만,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계절과 날씨, 일출과 일몰 등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연못의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모네의 정원 그림 320점 중에 수련이 250점이라고 하니, 모네는 말년에 지베르니의 연못에 푹 빠져 살았던 것이다. 백내장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일군 역작들이었다.
"나의 정원에는 내가 평생 추구하던 물과 빛과 색이 있네. 내가 그토록 여행을 하고 야외로 나갔던 이유기도 하지.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네. 나의 정원에 다 있으니"
- 클로드 모네 -
나는 두 번째 방에 있는 수련 그림 앞에 섰다. 지베르니의 연못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버드나무가 길게 늘어진 연못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수면에 비치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캔버스에 색칠을 하고 또 다른 색상을 겹쳐 바르며 물결과 연꽃, 버드나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자연의 무한함을 드러낸다. 그림이 주는 위안을 가득 품은 전시실은 번잡한 파리의 도심에서 가장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쉼과 휴식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폐관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전시실 중앙에 놓인 긴 타원형의 의자로 다가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 자리를 잡았다. 폭이 10m가 넘는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오랑주리안으로 지베르니가살그마니 걸어들어 왔다. 나는 연못의 벤치에 앉아 있는 듯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버드나무 가지가 살랑거리며 작은 웃음소리를 냈다. 수련도 기지개를 켜며 얼굴을 내밀었다. 물살이 일면서 그림자는 점점 깊어졌고, 나는 거대한 연못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서히 시원한 기쁨이 차올랐다.
관람객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큰 방이 우리 독차지가 되었다. 이제 맘껏 감상할 시간에 흥분이 고조될 찰나, 고요한 침묵을 깨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계를 보니 5시 45분. 벌써 무슨 일일까 싶었는데, 바로 직원이 들어와서 나가란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담. 파리지앵의 6시 칼퇴근을 위해 관람객을 15분이나 일찍 퇴실시키는 것이 옳단 말인가. 그러나 어쩌겠나. 파리에선 파리의 법을 따를 수밖에. 우우, 어찌나 아쉽던지.
모네의 수련 연작
결국 나는 오랑주리를 다시 찾았다.
튈르리 공원 근처 식당에서 딸아이의 친구 부부를 만나던 날, 함께 점심을 먹고 그들이 공원에서 노는 동안 나는 혼자 모네의 수련 연작을 만나러 갔다. 이번에는 지하 전시장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폐관할 때까지 1층에서만 계속 머물렀다. 날씨가 맑아서 자연광 아래 밝고 부드러운 수련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두 방을 오가며 가까이서 또 멀찍이 떨어져서 가끔은 앉아서 보고 또 보았다. 충분히, 흡족하게, 마음을 적실 때까지,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