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2022 유럽여행 그림일기 5

by Lara 유현정


여행에서 숙소는 얼마나 중요할까?

경비로 따지면 항공료 다음으로 숙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크다. 여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이 커지는 건 사실이다. 이쯤에서 는 보통 타협을 한다. 잠만 자는 곳이니까 깨끗하기만 하면 되지 뭐, 이렇게 자신을 달래며 숙소 사이트를 뒤적인다. 교통이 편하고 전망이 좋으면 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어차피 뚜벅이를 각오했으니, 크게 불편하만 않다면 오케이다. 가격도 적당하고 후기 점수까지 높으면 띠용! 하고 동공이 확대된다. 그 방은 곧 나의 차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좀 달랐다. 딸아이에겐 여행의 만족도를 책임질 숙소가 너무나 중요했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가 잠만 자는 나와는 달리, 낮에도 틈틈이 들락거리며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러니 공간이 예쁘고 전망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도심 속 센 강변의 호텔에 이어 이번에는 에펠탑 주변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옮겼다. 파리 15구역의 조용한 주택가 14층 아파트 꼭대기층에 위치한 펜트하우스, 에펠탑을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최고의 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토록 완벽한 전망은 프리미엄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많이.


새로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볼 일이 생긴 숙소 주인과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007 작전으로 집 열쇠를 획득하였다. 암호를 풀 듯이 1층 출입문을 통과하고, 마침내 꼭대기층에 도달하였다. 열쇠를 구멍에 넣고 이리저리 돌려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순간,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온 에펠탑 풍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시원하게 확보된 시야가 가슴을 뻥 뚫었다. 우리는 현관문 앞에 가방을 팽개치고 달려가 거실 창을 열어젖히고 테라스로 어 나갔다. 최고, 따봉, 완전 대박!! 에펠탑 뷰 숙소는 이번 파리 여행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었다.


숙소의 에펠탑 풍경




그런데 과연 에펠탑은 내게 어떤 존재였던가?

센 강을 개천에 비유한 전력이 있는 나는 솔직이 에펠탑을 그저 그런 철탑에 괜스레 호들갑을 떤다 생각하며, 서울의 남산타워 정도로 치부했다. 지난 파리 여행에서는 굳이 에펠탑을 가까이 보려고 시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멀리서 흘낏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영화 <에펠탑>을 보고야 말았다. 알면 보고 싶고, 보면 더 깊이 알게 되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만고불변 진리의 순환 고리에 올라타게 된 것이다.


에펠탑은 이 탑을 세운 프랑스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1889년 프랑스혁명 백 돐 기념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에펠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에 철골 구조물을 장착하여 세운 사람로, 단지 25개월 만에 에펠탑을 세운 뛰어난 공학도이자 예술가이다. 아직 여행이 보편화되지 않은 19세기 말, 그는 파리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어디서든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 볼 수 있는 구조물을 계획했다. 하지만 파리의 여론은 흉물스러운 철 구조물이 미학적으로 파리 시내의 건축물과 도무지 안 어울려, 우아한 도시의 이미지를 망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에펠은 그러한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직한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지금은 에펠탑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에펠탑은 이미 파리의 상징이자 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펠탑을 파리 지형 관련지어 해석 보았다. 센 강변에 발달한 도시 파리는 서울과는 다르게 산이 없는 평지 지형이다. 서울은 시내 한복판의 광화문 광장에서 눈만 들면 수려한 북악산과 인왕산의 봉우리가 시선을 잡아끈다. 하지만 파리는 7층 이하의 낮은 건물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 위로 잡아끄는 시선이 없다. 리하여 높이 300m 넘는 에펠탑 파리 시민의 선이 리며,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다.


에펠탑 효과


자주 보면 좋아지고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는 현상을 통칭하는 용어이다. 러나 에펠탑을 극도로 싫어한 모파상은 파리에서 에펠탑이 유일하게 보이지 않는 에펠탑 1층 식당에서만 식사를 고, 몽소 공원에 세워진 자신의 기념상까지 돌려세웠다고 한다. 예술가들의 극단적인 혐오를 받아 철거 직전까지 가게 된 에펠탑은 현실의 필요에 의해 철거가 연장되고, 그 사이 파리 시민들은 서서히 에펠탑에 익숙해졌다. 시민들 마음에 뿌리를 내린 에펠탑은 이제는 거목으로 성장하여 리 시내를 굽어본다. 에펠탑을 보러 전 세계인이 몰려들고, 들은 곧 파리 사랑 지곤 하는 이다.




우리는 걸어서 마르스 광장로 나갔다.

마르스는 에펠탑을 관람하기에 가장 좋다는 사요 궁의 반대편에 있는 광장이다. 숙소에서 몇 개의 도로를 건너고, 예쁜 골목들을 지나 도착한 광장은 꽤나 넓었다. 에펠탑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인파가 넘쳐났다.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 너른 풀밭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파리지엥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연인이나 친구끼리 아니면 가족 단위로 놀러 나와 파리를 즐기는 모습은 평화로웠다. 커다란 개를 데리고 나온 젊은 커플이 겹겹이 누워 팔다리로 껴안고 단잠에 빠져 있는 모습까지.


우리도 그늘에 자리를 깔았다. 딸아이는 드려 책을 펴 들었고, 나는 스케치북을 꺼냈다. 이제야 그림을 그릴 짬이 것이다. 가까이서 마주한 에펠탑은 웅장했다. 탑의 크기와 함께 단단한 철골 구조가 주는 견고함에, 부드러운 A자 곡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각도가 벌어지면서 안정감을 더며, 실루엣이 아름답게 완성되었다. 나는 연필로 에펠탑을 스케치하며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광장 주변의 나무를 사각형으로 조경한 것도 특이했다. 인간의 기술과 감성으로 창조해낸 공간에도 안락함은 가득했다.


<그림 1> 한가로운 에펠탑 풍경


저녁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왔다. 편안하게 에펠탑을 바라보 식사하고 숙소의 테라스에 식탁을 차렸다. 집주인이 선물한 와인을 잔에 따르고, 서울서 공수해 간 된장을 끓이고, 프랑스산 소고기를 노릇하게 굽고, 구운 양송이와 흰색 아스파라거스 곁들였다. 정찬을 즐기는 시간은 막 하루 해가 저물녘이었다. 열기구가 둥둥 떠있는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울기 시작하며 사방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알코올 도수가 식도를 통과해 위벽을 간질이고, 입안에선 고기가 살살 녹았다.


어둠이 사위를 조여오기 시작하는 시각 9시, 갑자기 에펠탑에 조명이 켜졌다. 꺄악! 우리들의 환호성을 들은 걸까. 에펠탑이 황금 드레스를 갈아입고 레이저를 쏘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춤 동작은 바로 온몸을 열렬히 흔들어대는 벨리댄스였다. 5분간 격정의 댄스타임이 끝났다. 밤이 되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게 변신한 에펠탑은 매시 정각마다 그렇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되자, 이번에는 은빛 드레스를 갈아입조용히 마지막 춤을 추었다. 너무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고도 행복한 잠에 빠져들었다.


황금색 드레스를 걸친 에펠탑 풍경


그러고 보니 에펠탑만 춤을 춘 건 아니었다. 딸아이는 파리의 아침을 맞으며 테라스에서 에펠탑과 마주하고 몸을 푸는 발레를 했다. 에펠탑과 깊은 교감을 누는 듯, 딸아이의 동작이 평소보다 더 우아하다. 나도 전날 딸아이의 요청에 따라 일몰을 배경으로 이름도 애매한 춤을 추었다. 어느새 우리에게도 에펠탑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나 보다. 아니 사실은 에펠탑과 진즉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해야겠다.


에펠의 그토록 간절한 마음이 전해진 걸까.

에펠탑은 생명력이 강여행자의 마음에도 굳건히 뿌리를 내렸다. 낮에는 파리를 거니는 누구나의 시선을 잡아끌고, 밤에는 조명과 함께 화려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재주를 겸비했기에, 모두가 곤히 잠드는 새벽시간을 제외하고 파리 시민과 여행자의 마음을 하나로 단단히 묶어주는 강력하고도 근한 힘을 간직한다. 는 진심 어린 마음 담아 속삭였다. 펠탑이여, 영원하라!


<그림 2> 에펠탑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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