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헤어질 결심>

2022 유럽여행 그림일기 6

by Lara 유현정


파리와 헤어질 때가 되었다.

파리를 만난 지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시차도 적응되고 파리의 공기에도 너무 익숙해져 이젠 파리가 일상이 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여행자의 옷을 벗고 파리지엥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는 딸아이가 진즉 검색해 둔 방브 벼룩시장엘 나가볼 참이었다. 평소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여행지에서는 시장이 주는 재미 더 쏠쏠하다. 현지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현장에서 만나는 생동감은, 언제나 레고 즐거운 경험이 되곤 한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차려먹고 너무 늦지 않게 집을 나섰다. 12시가 지나면 벌써 파장 분위기라 들었기에, 프리나우 택시를 타려고 렀는데 답이 없다. 단 걷기로 하고 막 구글맵을 켜는 순간 빈 택시가 지나갔다. 순식간에 도착한 장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셀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들은 집에서 쓰던 물건을 가지고 나와 가판에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알록달록하고 이국적인 문양의 옛날 물건들이었다. 가정에서 손때가 묻은 물건들은 집집마다 역사의 뒤안길서, 오랜만에 햇살을 쬐며 어느 집에선가 새로 쓰일 역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서로 물건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 언제 보아도 흐뭇했다.


딸아이와 나는 유독 그릇에 관심이 쏠렸다. 기념품은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여행지에서 만난 행복을 지속시키는 마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그릇은 다른 기념품에 비해서 유용한 편이다. 아침다 하루를 시작하며 커피를 담는 잔이나, 빵과 과일을 담는 접시, 어쩌다 기분을 내려고 꽃을 꼽는 화병에서도 새록새록 추억이 피어기에, 우리는 상에서도 갈의 그림처럼 행복의 순간로 날아오를 수 있다. 유리로 만든 화병과 와인잔이 눈에 띈 딸아이는 냉큼 계산을 했다. 나는 좀 더 둘러보고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했다.

시장은 거리를 따라 꽤 길게 이어졌다. 주말을 즐기러 나온 이웃들이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했다. 런데 시장 끝까지 가는 동안 아까 봐 둔 그릇이 집요하게 내 마음을 아당겼다. 오래된 접시였지만, 노란 꽃이 가득 피어난 나에 한 쌍의 파랑새가 정교하게 그려진 모습이 너무 예뻤던 것이다. 나는 파리 장터에서 민화의 화조도를 만난 느낌이었다. 다가 수공예 도자기 작품이라니! 짐을 늘리고 지는 않았지만, 딸아이도 예쁘다고 권유하니 득템 하는 것이 마땅해 보였다.


그런데 아뿔싸! 되돌아오는 길에서 그릇이 보이질 않았다. 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벌써 팔렸거나 아니면 셀러가 장사를 끝내고 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점 아쉬움이 커며 후회가 밀려다. 그래서 여행지에선 맘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바로 사야 한다는 고가 떠도는 것이다. 다시 그 물건을 만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기에, 여행 내내 심지어는 여행을 끝낸 후에도 오랫동안 미련이 남는다. 나는 처음 장소로 돌아와 다시 찬찬히 꼼꼼하게 더듬어 나갔다. 결국 그릇을 찾아냈고, 가격이 많이 비쌌지만 조금 깎아서 수중에 넣었다. 휴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육상으로 달리는 트램을 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중간에 메트로를 바꿔 타려니 환승이 되질 않았다. 파리의 교통체계는 육상과 지하를 구분하여 환승을 허용하고 있었다. 결국 택시비와 맞먹는 교통비를 쓰게 되었다. 역시 우리나라가 교통비도 싸고 환승체계 최고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눈여겨봐 둔 동네 맛집에서 인도 요리를 시켰다. 음식 맛에 이어 서비스까지 만점인 식당은 구글 평점을 더욱 신뢰하게 만들었다.


방브 벼룩시장의 전리품들




이윽고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내일은 바르셀로나로 떠나야 한다. 우리는 짐을 꾸리고 어두워진 거리로 나섰다. 파리의 마지막을 어디서 어떻게 보낼지는 이미 결정이 되었다. 우리는 전날 숙소 근처에서 극장을 하나 발견했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간 딸아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랑스 영화 사이에 우리나라 영화 포스터가 당당하게 붙어 있었다. 어라? <헤어질 결심>이네. 아직 못 봤는데, 볼까? 그럼! 봐야지. 깐느 영화제 감독상 작품을 파리에서 보다니, 그것도 우리나라 영화를. 이런 영광이!


낮에 딸아이가 예매해 둔 표를 들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장은 파리 시내에서도 몇 안 되는 독립영화관이다. 딸아이와는 서울에서도 함께 영화를 본 기억이 거의 없는데, 낯선 도시 파리에서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것이 모두 한류의 덕이 아니고 무엇이랴! 감회가 새로웠다. 친구네 부부를 만나고 돌아온 오후의 일정으로 몸은 고단했지만,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갔다. 여우가 사람을 홀리듯 서서히 탕웨이의 력과 박해일의 실한 연에 빠져들다.


처음엔 관객이 별로 없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상영시간이 다가올수록 하나 둘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꽤 많은 파리지엥이 자국이 인정한 외국영화에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의 한 복판에서 한국말이 울려 퍼지고, 우리는 자막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이런 통쾌함은 영화 중반 탕웨이가 중국말을 할 때 아차 싶었다. 불어로만 자막이 제공되어 영화의 맥을 끊어 놓았다. 아, 이런 함정이 있었군. 국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서울로 돌아가 다시 볼 결심다.


파리의 극장과 영화 포스터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은 새로운 사랑의 형태, 즉 품격 있는 형사와 굴곡진 삶을 살아온 살인 용의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풀어냈다. 사랑은 운명이라고 한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을 운명이라고 한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그러할진대, 안타깝게도 현실에선 도저히 다다기 어려운 사랑이다. 이런 위험한 사랑은 형사로서의 자부심을 붕괴시킬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불행이 예고된 사랑은 파국의 끝자락으로 치달으며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더욱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도 한다. 자신이 붕괴되면서까지 서래를 지켜준 해준의 사랑이 막을 내리는 순간, 서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서래가 사건을 미결로 남기며 극적으로 사라지는 순간에, 해준은 자신의 사랑을 뒤늦게 닫고 울부짖는다. 요즘 꽃무릇이라고 하는 상사화가 제 철이다. 스님과 여인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꽃과 잎이 한평생 만나지 못한다. 렇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 자꾸 나의 마음을 사무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다른 남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그래서 결혼했습니다."

"해준 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 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 마디라도 하려면 살인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넘볼 수 없는 해준을 향한 사랑에 자기를 파괴하면서까지 도달하려고 하는 탕웨이의 눈빛과 미소, 그녀의 억양과 문장이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머릿속에 여운을 겼다. 해준의 붕괴된 마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재수사하라는 서래의 마음은 진정한 사랑이다. 사건을 미결로 남 해준의 마음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도 사랑이다. 렇게 서래는 자신의 삶을 끝냄으로써 마·침·내 해준의 사랑을 얻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정훈희와 송창식의 <안개> 노래가 흘러나왔다. 벅찬 감동을 안고 랑스럽게 나도 따라서 흥얼거렸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부르는 노래였다. 엄마도 아는 노래냐고, 딸아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알고 말고! 안개는 영화의 주요 모티브다. 엔딩씬은 이루지 못한 사랑 앞에서 앞으로 영원히 헤맬 해준의 삶처럼 바다 안개가 자욱했다. 클로즈 업된 박해일의 표정 연기가 압권이었다. 안타깝고 적막하고 먹먹하고 절절하면서도, 깊게 가슴을 후벼 파는 애절한 감정이 온몸을 덮쳐왔다.


이동진 평론가의 평처럼

파란색으로도 보이고 녹색으로도 보이는 그 옷처럼, 미결과 영원 사이에서 사무치도록.


<그림> 점점 서래의 옆 얼굴이 되어가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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