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느리게 걷기

2022 유럽여행 그림일기 7

by Lara 유현정


이제 바르셀로나로 떠나볼까나.

우리는 오전에 파리의 오를리 공항을 출발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바르셀로나 공항 크고도 번잡해서 수화물을 찾느라 잠시 허둥댔. 하지만 곧 을 찾아 공항버스 A1을 타고 호텔까지 가는 동안 스페인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 중해 해변의 도시 바르셀로나는 태양 열했다. 35도를 훌쩍 넘는 기온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마음의 그늘을 모두 거둔 것처럼, 거리가 밝고 쾌활해 보였다. 파리가 옛것을 너무 좋아해서 고풍스럽다면, 바르셀로나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활짝 열려 있 것 같았다. 우리가 묵을 호텔의 인테리어저 현대적이고 세련미가 넘쳤다.


엄마,
나 방금 스페인과 사랑에 빠졌어!


잠시 바르셀로나의 열기를 피해 호텔에서 쉬고 있던 나는, 달뜬 목소리에 눈을 떴다. 딸아이 혼자 새로운 거리를 쏘다니고 들어오더니 표정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그리곤 무슨 일이고 묻도 전에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다. 스페인 사람들이 너무너무 친절데, 호텔 옆의 슈퍼마켓 주인아저씨는 어느 나라에서 왔냐며 수박 껌을 덤으로 주더란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작은 친절은 도시의 이미지를 한껏 부풀리며 달큰한 환상을 키우는 게 분명다.




나는 솔직이 바르셀로나 관광을 앞에 두고, 얼른 과제를 마치고 싶었다. 여기서 과제란 가우디를 말한다. 더도 덜도 고 오로지 가우디를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왔으니까. 그러나 딸아이는 시 나의 애간장을 태웠다. 어려서부터 남들 따라 하는 법이 없던 아이였다. 딸애는 나처럼 숙제를 하러 온 것이 아닌 것이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그저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이름 없는 골목을 헤매다가 마주치는 예쁜 풍경에 설레고, 시장을 구경하다 이것저것 현지의 미각을 즐긴 후, 거리에서 쇼핑을 하면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문득 딸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때가 떠올랐다. 학교에서는 매일 시험지를 풀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교사는 백점을 받으면 스티커를 주고, 개수를 채우면 상을 주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독려했을 것이다. 나는 여느 부모들처럼 딸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숙제를 엄마가 봐주겠다고 했다. 스티커를 하나라도 더 모아서 아이를 앞줄에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노심초사 맨 앞줄에 서려고 노력하는 것은 젊은 날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요?"

그러나 딸아이는 단칼에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것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언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번개가 스쳤다. 아! 이 아이는 공부에 욕심이 없구나! 나는 스티커에 아무런 흥미가 없는 아이를 책상 앞에 앉히려는 욕심을 내려놓았다. 신 딸아이에게는 다른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딸애가 다섯 살 때였다. 언니와 여섯 살 먹은 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간 날 밤이었다. 아이는 한숨을 푹푹 쉬며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을 끄며 이제 자자고 토닥거리는 내게 딸아이가 심각하게 물었다.


"엄마! 나도 여섯 살이 되면, 언니처럼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을까?"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온 마음을 다해 다독였다. 그럼! 그렇지! 물론이야! 너도 잘 그릴 수 있어. 암! 내 말을 듣고 안심이 된 아이는 그제야 두 눈을 감았다. 나는 그때 이미 직감했다. 딸아이는 나중에 커서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라는 걸. 아이는 다음 날부터 하루 종일 그림을 그렸다.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기자 나를 그리며 배 안에 아기를 그려주었고, 연필과 지우개가 들어간 자신의 필통을 그리고는 `필통 속에 있는 것들의 슬픔이라는 제목을 붙이며 상상력을 키웠다.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숙제부터 챙기느라 늘 바심을 내던 가 맛볼 수 없었던 일상의 기쁨을 미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와 나는 생도 여행 그 빛깔 달랐다. 쯤에서 하루쯤 구태의연한 숙제의 부담에서 벗어나 그냥 가볍게 발이 가는 대로 즐겨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도통 숙제가 없는 딸아이를 따라 느리게 걷다 보면, 여행의 세계를 볼 수 을지도 모니까.


람블라다 거리의 행위예술(위)과 시장(아래)




우리는 람블라다 거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먼저 세일을 하고 있는 옷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딸아이는 마네킹이 입고 있는 원피스가 맘에 들었다. 마, 들어갈까? 아무렴! 우리는 쿵작이 맞았다. 신나게 안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물건이 다양했다. 나 원피스와 스카프를 고르고, 딸아이는 핫핑크색 비치백을 곁들었다. 리는 햇살이 살갗을 델 것처럼 뜨거운데 다행히 그늘은 시원했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 여름 날씨였다. 길가의 가로수마다 둥치를 보호하는 테두리 안의 흙이 움푹 패어 있었다. 문득 빗물을 모으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에선 비 예보가 있었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목이 타고 있을 나무들이 안쓰러웠다.


어느새 발길이 라 보케리아(시장)에 다다랐다. 우리는 안을 가득 메운 관광객과 신선한 과일, 허공에 매단 하몽과 선물용 올리브와 오일의 틈바구니에서 들뜬 발걸음을 옮기다가, 느 포장마차 자리를 았다. 잘생긴 가게 주인이 웃으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기분이 좋아진 딸아이가 해산물 요리를 겠다고 하였다. 신선한 요리와 반주로 곁들인 맥주의 맛이 일품이었다. 다시 나온 람블라다 거리 몇 사람이 행위예술을 했다. 아무도 못 말리는 예술에 대한 열정이 그들을 땡볕의 거리로 나서게 했으리라.


딸아이가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한 것은 실로 기특 결정이었다. 나는 미술관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우리가 많이 다르다 해도 이렇게 닮은 석을 발견할 때면 반갑기가 그지없다. 고딕 지구에 위치한 피카소 미술관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라 고풍스러웠다. 피카소는 청년기를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고 한다. 전시장 초입에 스케치와 그림을 담은 엽서들이 커다란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피카소가 어떻게 대가가 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감상의 진도를 나가다가 같이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다시 만났다. 피카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연구하고 분석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그린 그림들을 모아놓은 방이었다. 58점의 오마주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흑백으로 그린 시녀들>도 있었다. 명암과 채도의 대비로 커다란 공간을 분할하고, 형태의 변형을 일으키며 입체적인 시각으로 개성 있게 그린 멋진 그림이다. 단순화된 선과 원색으로 큐비즘을 표현한 마르가리타도 너무나 귀여웠다. 잠시 서로의 감성이 만난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흑백으로 그린 시녀들>


다시 골목으로 들어섰다. 거리 곳곳에서 타일로 장식한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가우디의 후예다웠다. 옆면에 층층이 고양이를 그려 넣은 건물도 보였다. 중간중간 작은 공원이 나타나고 벤치 주변의 나무에 분홍 꽃이 피었다. 나무 그늘이 에어컨을 대신하며 여유와 낭만을 선사하는 길거리 카페도 안락해 보였다. 가끔은 야자수가 남국의 태양을 가려주기도 하였다. 길을 헤매다가 마주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미치도록 파랬다. 원근감이 절묘한 거리의 소실점에 교회의 둥근 지붕이 하얗게 얼굴을 내밀었다. 딸아이는 이토록 이름 없는 골목의 작은 이벤트에도 마냥 행복해했다.


걷다 보니 바다가 코 앞이었다. 콜럼버스 동상이 높게 세워진 포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요트가 정박하고 있었다. 뜨거운 지중해 날씨를 즐기는 그들의 여유있는 삶이 부러웠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스카프로 햇빛을 가리고 바닷가 카페에 도달했다. 벨 포트에서 몬주익 언덕으로 떠나는 빨간색 케이블카가 바다 위로 허공을 가르 수시로 들락거렸다. 우리는 얼음과 레몬 조각을 곁들인 시원한 콜라를 들이켜며, 곁으로 다가온 갈매기와 함께 짙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다 위로 윤슬이 가득 쏟아졌다.


두 사람은 그렇게 침묵 속에 사원 앞에 서서 구름과 태양과 바람이 한순간 산들과 어울려 노니는 것을 바라보았다. 꾸뻬는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것보다 새로운 배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 <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클로르 -


<그림> 바르셀로나의 골목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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